편지로 읽는신앙 1
거리에 ‘Into the unknown’이라는 노래가 흐릅니다. ‘숨겨진 세상’ 혹은 ‘미지의 세계’라는 뜻을 가진 노래지요. 저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200 여 년 전, ‘숨겨진 세상’이라고 말하던 곳에서 편지를 쓰던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선교사들 사이에서는 누구도 가 본적이 없어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어떤 풍경을 가진 나라인지 아무도 몰랐던 세상, ‘조선’에서 몰래 편지를 쓰던 사람들을요.
1700년대 조선은 세계에 알려진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중국과 일본에만 겨우 알려졌을 뿐, 유럽에는 알려진 정보가 없는 나라였지요. 중국에서 선교를 하던 프랑스 선교사들에게도 조선은 낯선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1790년, 북경의 성당에 한 청년이 들어섭니다. ‘미지의 세계’라고 불리는 조선에서 온 사람이었지요. 윤유일 바오로, 조선에서 사신의 행렬을 따라 북경에 도착한 그는 그라몽 신부를 찾았습니다. 1784년, 조선인이었던 이승훈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베푼 사제였지요. 그러나 그라몽 신부는 그 곳에 없었습니다. 교황청의 명령으로 예수회 소속이었던 그라몽 신부가 떠나고 북당에는 라자로회 로(Raux) 신부가 있었습니다. 로 신부와 마주앉은 윤유일은 겉옷의 솔기를 뜯었습니다. 그리고 검문을 피하기 위해 옷자락에 꿰매 감춰온 편지를 로 신부에게 전합니다.
편지를 쓴 사람은 이승훈 베드로였습니다. 사신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 왔다가 북당에서 세례를 받은 조선의 첫 신자였지요. 이승훈은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후, 조선으로 돌아와 수많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자신과 동료들이 사제가 되어 미사를 집전했다는 것도 알립니다. 그러나 사제서품을 받지 않고 미사와 성사를 베푼 것이 큰 죄임을 알게 되었다며, 이 죄를 어떻게 용서 받아야 할지,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그리고 조선에 신앙의 뿌리가 단단하게 내릴 수 있도록 사제를 보내달라고 부탁합니다. 편지를 읽은 로 신부는 깜짝 놀랍니다. 단 한 명의 선교사도 파견된 적이 없는 조선에서 가톨릭 신앙이 자라고 있다니! 그는 누구도 관심 갖지 않았던 조선에서 기적이 일어나고 있음에 감격합니다.
변방이라고 불리던 조용한 나라, 조선에서 피어난 복음의 씨앗은 북경의 구베아 주교에게 전해지고, 그는 사목교서를 내립니다. 이승훈을 비롯한 여러 명이 시행한 임시성직제도는 잘못된 것이며, 조선의 젊은이를 북경으로 보내면 교육을 통해 사제가 되는 길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의 상황은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조선 교회에서 사제가 될 젊은이를 선발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천주교를 믿는다는 이유만으로도 관아에 끌려가 취조를 당하고, 곤장을 맞고, 유배를 가게 되는 상황은 조선의 신자들을 위축하게 만들었습니다.
여러 날을 고민한 끝에 조선의 신자들은 다시 한 번 윤유일을 북경으로 파견합니다. 그리고 그의 옷깃에 한 통의 편지를 꿰매어 숨깁니다. 부디 조선에 신부님 한 명을 파견해 줄 것을 간곡하게 부탁하는 편지였습니다. 이 편지를 받은 구베아 주교는 조선에 선교사 한 명을 파견할 것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조선에 복음의 씨앗이 자라고 있음을 교황청에 전달하면서 선교사들에게 조선 교회가 알려집니다. 1790년, 조선에 사제를 보내달라며 눈물로 쓴 신자들의 편지가 ‘Into the unknown’이었던 조선을 세상 밖으로 드러나게 한 것입니다.
2020년 1월 19일 연중 제2주일 서울대교구 청소년 주보 <하늘마음>에 실린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