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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큐레이터 May 12. 2021

프랑스 선교사의 편지

편지로 읽는 신앙5


1831년 9월 9일 조선 대목구가 설정되고 초대 대목구장으로 브뤼기에르 주교가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프랑스 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로 조선 신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가장 먼저 미지의 땅으로 갈 것을 선택한 인물이었지요. 그가 “저를 보내주십시오!”, “제가 가겠습니다!” 한 덕분에 조선 교회는 자발적으로 신앙을 갖기 시작한지 47년 만에 가톨릭교회 안에 포함되어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조선 대목구장으로 발령을 받고 조선으로 들어오려 3년 동안이나 노력했지만, 조선을 지척에 두고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게 됩니다. 마음에 품은 조선 땅을 밟지 못하고 선종하게 된 것이지요.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프랑스 외방전교회 소속의 또 다른 사제들을 조선으로 보내주셨습니다.      


노고산성지 순교자 현양비 _ 앵베르 주교

신학생 때부터 조선 선교에 열망을 갖고 있던 앵베르는 중국에서 선교를 하던 1833년에 브뤼기에르 주교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자신도 조선에 가고 싶다는 내용이었지요. 조선에 가서 선교를 할 생각으로 3년 전부터 준비해왔다며 자신도 조선의 선교사로 파견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리고 수도회의 장상에게도 편지를 보내 조선 선교를 허락해줄 것을 간청합니다. 1836년, 드디어 로랑 조제프 마리 앵베르는 조선 대목구의 부주교로 임명되어 주교 서품을 받습니다. 그리고 1837년 12월에 정하상, 조신철 등과 함께 그렇게 원하던 조선에 도착하게 되지요.     


조선에 입국한 앵베르 주교는 먼저 조선에서 사목하고 있던 모방, 샤스탕 신부와 함께 지역을 나눠 신자들을 돌봅니다. 경기도를 맡게 된 앵베르 주교는 교우촌을 방문해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드리고 성사를 집전합니다. 그리고 1838년 11월 24일에 파리외방전교회에 편지를 쓰지요. 자신이 중국에서 조선까지 어떻게 도착했는지, 다른 선교사들이 조선에 들어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적으며 지난 1년 동안 조선에서 자신이 겪은 이야기들을 기록합니다. 1836년 1월에 4천명에 불과하던 신자들이 9천명으로 늘었다는 소식과 대세의 중요성에 대해 알린 결과 154명의 어린이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앵베르 주교가 조선교회에 관해 남긴 편지 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편지는 프랑스외방전교회를 후원하는 회원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중국에 있던 앵베르 주교가 조선으로 출발하기 전에 쓴 편지인데, 금전적인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하며 이제는 영적인 지원, 기도를 바쳐달라고 부탁하는 편지였습니다. 이 편지를 읽는데 180년 전, 조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앵베르 주교가 보낸 편지를 읽고 두 손을 모아 기도했을 프랑스 신자들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어쩌면 프랑스 시골마을의 어떤 할머니의 기도가 하늘에 닿아 우리 교회가 이어지고 있겠구나 싶어서, 많은 이들의 기도로 이어 내려온 가톨릭 신앙을 지금 내가 믿고 있는 거구나 싶어서 마음이 울컥거렸습니다.       


조선을 너무 사랑했던 앵베르 주교는 조선 사람들에게 조선의 사제가 있어야 하고, 조선말로 된 기도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신학생을 양성하고, 우리말로 된 기도서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순교자들의 자료를 기록으로 남겼지요. 1841년 <기해일기>로 엮인 순교자들의 기록이 앵베르 주교의 기록에서 시작된 자료입니다.     


1839년, 앵베르 주교는 배교자의 밀고로 발각될 위기에 처하자 신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직접 관아로 나가 순교합니다. 그와 함께 조선의 땅을 누비며 선교했던 모방, 샤스탕 신부와 함께 하느님의 품에 안기지요. 죽을 것을 알면서도 조선에 들어와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던 프랑스 선교사들. 그들의 헌신을 기억하며, 오늘은 프랑스 교회와 신자들을 위해서 기도를 바칩니다.                    


         - 2020년 5월 17일 부활 제6주일 서울대교구 청소년 주보 <하늘마음>에 실린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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