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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큐레이터 May 14. 2021

첫 번째 신부의 마지막 편지

편지로 읽는 신앙6

여기 유학길에 오른 세 명이 있습니다. 태어나 한 번도 고국을 떠난 적이 없는 세 사람은 두려움과 설렘을 안고 마카오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었습니다. 비행기는커녕, 배 한척도, 말 한 필도 없었지요. 세 사람은 오로지 걷고 또 걸어야만 했습니다. 추위에 갇힌 산길을 걷고, 수비대들이 지키고 서 있는 국경도 몰래 넘어야했지요. 이들의 출국이 불법이었기 때문입니다.      


모방 신부에 의해 신학생으로 선발된 최양업, 최방제, 김대건은 1836년 12월 3일에 서울을 출발해, 1837년 6월 7일에 마카오에 도착합니다. 혹독한 추위가 봄바람에 녹고, 뜨거운 여름이 되어가는 동안 중국 대륙을 횡단한 것이지요. 이들은 말레이시아에 있는 페낭 신학교로 가야했지만, 마카오에 임시로 설치된 신학교에서 공부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1838년 11월, 최방제가 건강 악화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최양업과 김대건은 동료를 잃었다는 슬픔에 크게 상심했지만 자신들의 사명에 충실할 것을 새롭게 다짐합니다.     


1842년 프랑스 정부가 중국에 군함 두 척을 파견하자, 김대건은 메스트르 신부와 함께 이 배를 이용해 조선입국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함장이 행선지를 변경해 배를 통한 입국에 실패하면서 다른 방법을 찾아 나섭니다. 이 과정에서 김대건은 오랫동안 끊어졌던 조선교회와 새로운 연락망을 구축합니다. 기적처럼 조선의 밀사를 만났기 때문이지요. 김대건은 이들의 도움을 받아 조선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을 다시 열게 됩니다. 1844년 12월, 부제품에 오른 김대건은 이듬해 1월 조선에 입국합니다. 그리고 페레올 주교의 바람처럼 배 한 척을 준비해 선교사들을 맞이하러 상해로 떠나지요. 1845년 8월 17일 사제서품을 받은 김대건은 자신이 타고 갔던 배 ‘라파엘호’에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주교를 모시고 조선으로 들어옵니다. 풍랑을 만난 라파엘호가 제주 인근에 불시착했지만, 얼마 후 황산포 나바위에 상륙해 꿈에 그리던 조선에서의 선교를 시작합니다.     


서울과 용인 일대에서 사목하던 김대건은 서해를 통해 선교사들이 입국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다 1846년 6월 5일에 체포됩니다. 조정에서는 유학을 통해 깊은 학식과 넓은 견문을 갖춘 김대건을 회유하기 위해 배교만 하면 벼슬을 내리겠다고 했지만, 그는 오히려 그들에게 천주님을 믿으라고 설교하다 9월 16일 새남터에서 순교합니다. 김대건은 사제가 되어 1년 6개월 밖에 사목하지 못했지만, 편지와 순교 보고서 등의 기록을 통해 조선천주교회의 성장 과정을 남겼습니다. 특히 그는 1842년 조선 입국을 시도했을 무렵부터 옥에 갇혀 순교하기 직전인 1846년까지 모두 스물 한 통의 편지를 남겼는데, 마지막 스물한 번째 편지가 유일하게 한글로 쓴 편지였습니다. 그가 감옥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며 쓴 이 편지는 조선교회의 신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였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서러워할 신자들에게 흔들림 없이 천주님을 믿고 따르라고 당부하는 편지였지요.


     

김대건은 신자들에게 말합니다. 태초에 세상을 만들고, 당신의 모상과 같이 사람을 만드신 분을 생각하라고. 주님의 제자임을 행동으로 보이며, 부디 서로 우애를 잊지 말고,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주님을 믿고 기다리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신자들에게 당부합니다. 하느님께서 나보다 더 착한 목자를 보내주실 것이니 서러워 말고, 주님을 섬기다가 천국에서 만나자고. 목숨을 건 유학길에 올라 어렵게 한국인 최초의 사제가 되었던 김대건 안드레아. 스물여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도 남겨질 신자들을 생각하며 쓴 첫 번째 신부의 편지를 읽으며 천국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그를 떠올려봅니다.        


         - 2020년 6월 21일  연중 제12주일 서울대교구 청소년 주보 <하늘마음>에 실린 글 -     


                                                        김대건 표착 기념 성당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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