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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큐레이터 May 17. 2021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의 편지

편지로 읽는 신앙7


 

1845년 10월 12일, 전라도의 한 포구에 배가 도착합니다. 상해에서 출발해 제주의 작은 섬에 표착했다가 겨우 강경 포구 근처에 닿은 것이지요. 50여 일의 항해 끝에 조선의 바다 위에 정박한 배에는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 김대건 신부가 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함부로 뭍으로 내려올 수 없었습니다. 강경이 도착좌표가 아니었던 탓에 머물 곳을 알아봐야했거든요. 세 명의 신부는 배에 함께 타고 있던 신자 한 명이 근처에 살고 있는 신자의 집에 거처를 마련하고 나서야, 조선 땅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페레올 주교가 신자의 집에 머물기로 결정하면서, 다블뤼 신부는 교우촌으로 떠났습니다. 선교를 위해 신자들 속에서 조선말을 배우기로 한 것입니다. 교우촌으로 들어간 다블뤼 신부는 이름을 ‘안돈이’로 바꾸고 신자들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 관한 것들을 기록하고 또 기록했습니다. 그는 순교자들의 자료를 수집해 <비망록>을 작성하고, 자신의 눈에 비친 조선의 세상을 프랑스에 있는 동료 신부들은 물론 가족들에게도 편지로 전합니다.     


다블뤼 신부는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자신을 포함해 두 명의 사제와 세 명의 수녀가 있을 정도로 형제자매들의 신심이 깊은 집안이었지요. 그가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가족이 같은 신앙 안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총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조선에 도착한 다블뤼 신부는 부모님께 편지를 써 중국에서 출발해 어떤 여정을 거쳐 조선에 도착했는지, 중국과 조선은 무엇이 다른지, 조선의 풍경들은 어떤지 자세히 소개합니다. 그리고 며칠 후 보내는 두 번째 편지에 혹시나 자신의 목숨이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유언이 될 당부를 전합니다. 만약에 자신이 조선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거든 자신의 몫으로 남게 될 유산을 조선 선교지를 위해서 쓸 수 있도록 해달라고요. 그리고 혹시라도 부모님께서 아들의 순교의 은총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봉헌금을 보내시려면 그것은 중국 사천에 있는 비신자 가구 어린이들의 세례를 위해서 쓸 수 있도록 해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마치 유언장처럼 비장한 이야기를 전한 다블뤼 신부는 이런 이야기를 아무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것은 부모님의 신앙 덕분이라며,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으로 돌립니다.       


다블뤼 신부의 가족들이 하느님 안에서 얼마나 똘똘 뭉쳐있는지는 그가 동생 카롤린의 축일에 쓴 편지에도 드러납니다. 다블뤼 신부는 사제가 되면서 자신이 어디에 있든 가족들의 축일마다 미사를 드리기로 약속합니다. 그래서 동생 카롤린의 축일에도 약속을 지켰다는 편지를 쓴 것이지요. 그는 사정이 생겨서 당일에 미사를 드리지 못한 경우에는 나중에라도 잊지 않고 미사를 봉헌하며 가족들과의 약속을 지킵니다. 비록 몸은 떨어져 있지만 미사를 통해 가족들의 기쁜 날을 함께 기억하고, 축하한 것입니다.       


다블뤼 신부에게 가족은 하느님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공동체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누나에게 평신도들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가에 대해 전하기도 하고, 예수님과 성모님이 항상 우리 곁에 계시지만 종종 숨어계셔서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으니 기도를 해달라고 청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부모님께 성물을 보내달라고 부탁하기도 합니다. 교우들에게 나눠줄 수 있도록 성화가 부착된 스카폴라,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상, 십자고상, 묵주 등 필요한 성물을 자세히 부탁하지요.      


다블뤼 신부가 쓴 모든 편지의 첫 문장은 “예수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니!”로 시작합니다. 성녀 데레사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렇게 살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품고 모든 것을 소유했다고 말하던 다블뤼 신부는 1857년 3월 25일, 주교품을 받고 1년 후 조선대목구의 교구장이 됩니다. 그리고 1866년 3월 30일 갈매못에서 순교할 때까지 조선교회를 위해서 헌신합니다.      


마리 니콜라 앙투안 다블뤼, 오늘은 그가 쓴 편지를 읽으며 나 또한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임을 고백해봅니다. 


     - 2020년 7월 19일  연중 제16주일 서울대교구 청소년 주보 <하늘마음>에 실린 글 -     


마리 니콜라 앙투안 다블뤼 주교  (사진출처 : 가톨릭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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