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지큐레이터 Jun 28. 2021

이름 없는 이를 기억하는 편지

편지로 읽는 신앙9

  


1860년 7월 27일, 한 청년이 프랑스를 떠나 조선으로 출발합니다. 그곳이 ‘죽음의 땅’인줄 알면서도 더 없이 기쁜 마음으로 조선으로 향한 그는 펠릭스 클레르 리델이었습니다. 훗날 조선교구의 제6대 교구장이 되는 리델 주교였지요. 홍콩을 거쳐 1861년 3월 21일, 칼레 신부, 조안노 신부, 랑드르 신부와 함께 조선에 도착한 그는 사목활동을 시작합니다.     


리델 신부가 조선에 도착했을 때는 조선교회가 숨통을 틔우던 시기였습니다. 조선이 여러 가지 국제적인 상황 때문에 선교사들의 활동을 묵인하던 때였거든요. 당시 조선교구의 주교였던 베르뇌 주교와 다블뤼 부주교는 고향에서 온 동료 사제들을 기꺼운 마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조안노 신부와 랑드르 신부가 병사하고 맙니다. 리델 신부는 그들의 몫까지 최선을 다해 사목합니다. 하룻밤에도 수십 km를 걸어 다니며 신자들에게 성사를 베풀었지요.  덕분에 신자들은 날로 늘어났고, 조선에 신앙의 자유가 찾아 올 거라는 희망도 보였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바람은 절망 속에 사라져버리고 말지요.     


1866년 병인박해로 베르뇌 주교와 사제들이 순교하고, 이어 다블뤼 주교마저 하느님의 품에 안깁니다. 남은 선교사는 리델 신부와 페롱 신부, 칼레 신부 뿐 이였지요. 이들은 가난한 신자의 집에서 숨어 지내며 조선의 참상을 알리자는데 의견을 모읍니다. 세 명 중에 한 명이 중국으로 가 도움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들은 리델 신부를 중국으로 보내기로 결정합니다. 리델 신부는 몇 몇 신자들과 함께 작은 배를 타고 중국으로 출발합니다. 그는 위험하고 험난한 과정 끝에 중국에 도착했지만 다시 조선으로 들어오기까지 10년이라는 세월을 견뎌야했습니다.      


1869년 6월 25일, 조선의 제6대 교구장으로 임명된 리델 주교는 1877년이 되어서야 다시 조선으로 들어 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의 상황은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 동안의 모든 박해들 중에서 가장 혹독한 박해가 휘몰아쳐 수천 명의 신자가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지요. 리델주교는 다시 만난 조선의 참상을 편지에 적어 보냅니다. 고문을 당하거나, 참수당하거나, 그 밖의 다른 방법으로 죽어간 신자들이 많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편지에는 열 두 살난 여자아이가 눈앞에서 부모를 잃고, 여덟살 동생과 함께 피신을 했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지쳐 어느 나무 밑에서 걸음을 멈추었고, 결국 누나가 동생을 안고 함께 얼어 죽었다는 내용이었지요.     


이름 없는 신자들을 기억하는 리델 주교의 편지를 읽으며, 해미순교성지를 떠올렸습니다. 그 곳에 그들을 기리는 ‘순교탑’이 있거든요. 해미순교성지 근처에서 하느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천 명이 넘습니다. 그들은 손과 발이 묶여 산채로 물속에 던져지거나, 땅 속에 생매장 되었지요. 생매장 된 유해의 대부분은 홍수로 유실되고 1935년이 되어서야 몇 구의 유해를 수습 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리델 주교가 애통해했던 ‘이름 없는 신자들’이었습니다.        


다시 조선으로 돌아와 사목활동을 펼치던 리델 주교는 4개월 만에 잠입 사실이 발각되어 포도청에 갇히고 맙니다. 그는 5개월 후 감옥에서 석방되지만 중국으로 추방되어 다시는 조선으로 돌아올 수 없었지요. 그러나 리델 주교는 조선에서 다시 선교할 날을 기다리며 문법서와 3만 개의 조선어가 수록된 한불사전을 편찬합니다. 꼬박 10년의 세월을 바쳐 만든 결과물이었습니다. 북경과 일본을 오가며 조선으로 돌아올 기회를 엿보던 리델 주교는 중풍에 걸려 프랑스로 돌아가, 1884년 6월 20일, 이름 없이 죽어간 신자들이 기다리는 하늘로 떠났습니다.      


- 2020년 9월 20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

                                                                     서울대교구 청소년 주보 <하늘마음>에 실린 글 - 

서울대교구 종로 성당 포도청(옥터) 순교자 현양관 내부 모습 / 리델주교와 리델주교의 서한  (출처:가톨릭굿뉴스)


매거진의 이전글 길 위에서 쓴 편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