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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큐레이터 Jul 05. 2021

전쟁의 상처를 기록한 편지

편지로 읽는 신앙11

한국이 격동하는 시기에도 복음선포를 멈추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교우들이 겪는 현실적인 고통을 함께 감내하며 곁을 지켜준 이들이었습니다. ‘파란 눈의 사람들’이라 불렸던 외국 선교사들, 오늘은 그들이 한국전쟁 때 남긴 편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한국에 해외 수도회가 진출한 것은 조선시대였습니다. 파리외방전교회의 선교사들이 가장 먼저 들어와 이 땅에 내린 신앙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이들은 본당사목과 신학생 양성은 물론 신자들의 교육과 사회복지에도 힘쓰며 ‘복음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 후, 1909년에 베네딕도회가 진출해 숭공학교와 숭신학교를 설립하면서 신자들은 다양한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숭공학교는 혜화동에 세운 직업학교로 학생들은 학교 안에 있는 철공소와 목공소에서 목공예를 비롯해 자물쇠를 제작하거나, 양철제품을 제작하는 기능을 배웠습니다. 물론 제도나 일본어, 수학, 교리 등의 이론 수업도 있었지요. 베네딕도회는 교육과 함께 수많은 출판물을 보급해 신자들이 전례와 교리를 다양하고 풍부하게 배울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1919년, 일본이 베네딕도회가 설립한 학교를 독일인이 운영한다는 이유로 몰수하려했고, 수도회는 학교의 경영권을 서울교구를 운영하고 있던 프랑스 선교단측에 넘깁니다. 그리고 1921년에 수도원을 덕원으로 옮깁니다.     


1923년, 평안도 지역에는 메리놀 외방전교회가 진출해 ‘가톨릭운동’을 전개하며 평신도들의 참여를 이끌었습니다. 이들의 노력 덕분에 한국 신부와 수녀들이 배출되었고, 신자수도 늘어 풍성한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1933년에 진출한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는 섬과 오지가 많은 전라남도와 제주도, 강원도에서 활동하며 신자 뿐 아니라 지역주민들과 함께 터전을 이루고 삶을 나누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해방 후 남과 북이 갈라지면서 교회는 위기를 맞이합니다. 북한 지역에 들어선 북한 정권이 교회를 탄압했기 때문입니다.     


전쟁을 준비하던 북한은 북한 지역에 있던 수도회를 강제 해산시키고 본당을 폐쇄합니다. 그리고 성직자와 수도자들을 체포합니다. 그들은 수단 대신 죄수복을 입고 더럽고 차가운 감옥에 감금됩니다. 독방에 갇힌 사람도 있고, 비좁은 감옥에 함께 수감된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감옥 속에도 기도하며 예수님의 모습으로 살아가려고 애씁니다. 특히 베네딕도회 원장이었던 루치오 신부의 모습은 간수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덕분에 그가 쓴 비밀 쪽지가 교화소 밖으로 전달될 수 있었습니다. 루치오 신부는 동료의 질병을 알리고 약을 구해달라는 쪽지를 쓰기도 하고, ‘감옥에서 대화 할 수 없’으며, ‘책도 성무일도서도 없지만 기도는 많이 한다’는 내용의 비밀 편지를 쓰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동료들의 생사를 궁금해 할 사람들을 위해서 누구와 함께 있는지, 누가 다른 교화소로 옮겨갔는지, 동료들의 건강 상태는 어떠한지를 기록해 바깥세상으로 소식을 전합니다.     

그런가하면 남한에 있던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선교사들은 한국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편지를 씁니다. 동료 사제가 북한군에게 총살되었다는 소식과 남한지역에서 실종된 선교사들의 이름, 전쟁 중에 살해되고 투옥된 신자들과 사제들의 소식을 종이 위에 기록합니다. 이들이 전쟁의 한 가운데서 남긴 편지는 오랜 시간을 건너와 지금의 우리에게 당시의 상황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순교자들을 떠올릴 때마다 조선시대에 박해받던 이들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한국전쟁 시기에도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로 박해받고 죽어간 이들이 있었음을, 전쟁 이후에 폐허가된 나라에서 신자들의 곁을 지키며 무너진 한국 사람들의 삶을 함께 일으켜 세운 선교사들이 있었음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 2020년 11월 15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청소년 주보 <하늘마음>에 실린 글 - 


                     

                                하느님의 종 덕원순교자 38위 (출처: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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