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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큐레이터 Jan 20. 2022

로맨티스트 정조의 편지? 아니 전략가 정조의 편지!

- 전략가 정조의 편지들

  

장안의 화제! <옷소매 붉은 끝동>을 이제야 알게 됐습니다. 드라마의 주인공이 정조라는 사실도 이제야 알았지요. 그래서 드라마를 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헛! 넷플릭스에는 없는 드라마네요. 어떻게 할까하다 작품의 원작이 소설이라는 걸 알게됐습니다. 인터넷 서점으로 달려가 주문을 하려보니 아이고! 품절이네요. 드라마의 성공으로 원작 소설까지 불티나게 팔리는 중인가봅니다. 기존에 나왔던 책이 품절되고 새로 찍는 동안 시간이 걸리는지 여러날을 기다려야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책을 기다리는 동안 정조의 편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정조임금편지> 국립중앙박물관

 

정조는 조선의 22대 왕입니다. 여러 가지 개혁과 탕평정책 등을 통해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 저는 정조가 이런 평가를 받는데 ‘편지’가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왜냐고요? 정조가 편지 쓰는데 ‘선수’였기 때문입니다.       


정조는 어릴 때부터 편지 쓰기를 즐겨했습니다. 세자로 책봉되기 전인 원손 시절에도 어른들에게 문안 편지를 보냈지요. 이 시절에 쓴 편지 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큰 외숙모 ‘여흥 민씨’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편지는 ‘상풍의 긔후평안하오신 문안아옵고져...’로 시작합니다. ‘서릿바람에 기후 평안하신지 문안 알고자 합니다’라는 뜻입니다. 화선지 안에 한글로 쓴 삐뚤빼뚤한 글씨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예닐곱살의 어린 ‘산’이의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훗날 왕이 된 정조는 시집간 여동생에게도 한글로 된 편지를 보냅니다. 잘 지내고 있는지 안부를 묻고 오랫동안 보지 못해 섭섭하다는 인사를 건네기도 하지요. 또, 외삼촌인 홍낙임에게 보낸 편지도 여러 통 남아 있습니다. 삼촌의 건강을 어찌나 염려하는지 이렇게 애틋한 조카가 또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정조가 편지쓰기 ‘선수’였음을 만천하에 알린 편지는 ‘밀서’입니다. ‘사랑꾼 정조’가 쓴 연애편지가 아니라 ‘통치가 정조’가 쓴 전략적인 편지였지요. 이 편지들은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되는 편지들입니다. 정조가 이 편지를 보내면서 '세초'하거나, '찢어버리'거나, '태워버리'라고 했던 편지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편지를 받은 사람은 정조의 말을 듣지 않고 편지에 받은 날짜와 시간까지 꼼꼼하게 기록해서 남겨 두었습니다. 덕분에 우리가 그 시대에 있었던 일들을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지만요.      


정조가 쓴 '비밀편지'에 관한 책들 . <정조어찰첩>, <정조의 비밀어찰, 정조가 그의 시대를 말하다ㅣ, <정조의 비밀 편지>


2009년 2월 9일, 성균관대학교에서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정조가 쓴 297통의 편지가 세상에 나오는 순간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왕의 편지가 이처럼 무더기로 발견된 적은 없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300여 통에 가까운 편지를 받은 ‘수신인’이 한 사람이라는 사실이었지요. 정조의 편지 폭탄(?)을 받은 사람은 심환지였습니다. 심환지는 조선의 사관들이 정조와 대립각을 세웠다고 기록한 노론의 수장이었습니다.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는  이날 밝혀진 편지와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36통의 편지, 전국에 흩어져 있는 다른 편지를 합쳐 모두 350여 통에 이릅니다. 그렇다면 정조는 심환지에게 왜 이렇게 많은 편지를 썼을까요?     


당시 심환지는 정조에게 실력을 인정받아 조정의 핵심 요직에 있었습니다. 정조의 편지가 집중적으로 몰린 1796년 무렵, 심환지는 이조판서와 좌의정에 오르는가 하면, 호위대장을 맡은 중요한 인물이었지요. 정조는 심환지에게 편지를 써 정치적인 현안을 논의하는가 하면, 인사 문제도 상의하고, 자신에게 올라온 상소문 등에 관해서도 함께 나누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개인 안부를 물으며 먹거리와 부채 등을 하사기도 했고, 자신의 성격에 대해서도 허물없이 이야기 합니다. 둘 사이가 얼마나 허물이 없었는지 국가기밀이었던 자신의 건강에 대해서도 발설할 정도였습니다.      


편지만 보면 둘은 더 없이 깊은 사이었던 같습니다. 그런데 왜 역사는 정조와 심환지를 대립가을 세운 사이로 기록했을까요? 그 비밀도 편지에 담겨있습니다. 정조는 대단한 전략가였습니다. 자신의 생각대로 정치를 하기위해서 심환지를 이용했지요. 정조는 심환지에게 편지를 보내 여러 가지를 지시합니다. 어떤 날은 대소신료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신의 의견에 강하게 반대하는 행동을 하라고 시키고, 또 어떤 날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기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러니까 심환지에게 ‘너의 생각인 것처럼 말하라’고 지시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심환지는 신하들이 있는 자리에서 정조가 시키는대로 행동을 합니다. 어떤 때는 심환지가 임금에게 올릴 상소문의 초안을 정조가 써주는 일도 있었습니다. 자기가 받을 상소를 자기가 쓰는 상황이었지요.     


이 모든 것들이 정조와 심환지가 미리 짠 판인 줄도 모르고 사관들은 자신들이 보고 들은대로열심히 기록합니다. 그러니 실록의 기록을 살피면 정조와 심환지가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밖에요. 정조는 ‘막후 정치’에 대한 증거물이 될지도 모르는 이 편지들을 읽는 즉시 없애버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심환지는 어명!을 어기며 이 편지들을 모아둡니다. 아마도 자신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이 편지들이 자신을 구해줄 동아줄이 되리라 믿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정조가 쓴 편지들은 심환지 비밀편지 외에도 '채제공에게 보낸 편지'를 비롯해, 다수의 편지가 존재합니다. 정조의 편지는 국립고궁박물관, 삼성리움박물관, 수원화성박물관, 경기도 박물관 등에 있다고 합니다. 기회가 되면 정조의 편지도 살펴보시면 좋겠네요.     


그나저나 제가 <옷소매 붉은 끝동>을 아직 보지 못해서 정조가 편지를 쓰는 장면이 나오는지 모르겠는데요, 이렇게 수많은 편지를 쓴 정조라면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에게 ‘연서’를 보내지 않았을까요? 정치에 이용된 ‘비밀편지’말고 정조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쓴 ‘은밀한 편지’가 언젠가 나타나주었으면 좋겠네요. 이런 소식이 들리면 저에게도 꼭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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