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를 읽고
당신이 쓴 《노인과 바다》를 읽었습니다. 당신의 모습이 반영돼 있다는 자전적 소설, 노벨상 작가인 당신이 쓴 최후의 소설을요. 많은 사람들에게 《노인과 바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고기를 잡는 이야기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고기 잡는 이야기 속에 많은 것이 녹아 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생각할 거리가 많은 소설이라고요.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습니다.
저는 이 책을 ‘목요일의 작가들’과 매주 20페이지 정도씩을 끊어서 읽었습니다. 결코 긴 소설이 아니었지만, 글 쓰는 아이들과 함께 읽고 나누고 공감하기 위해서 페이지를 끊어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어떤 때는 지루했고, 어떤 때는 의아했고, 어떤 때는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같은 페이지를 함께 읽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반칙을 할 수가 없었어요. 때를 기다리며 조금씩 그렇게 당신의 이야기 속으로 빠졌습니다.
저는 ‘산티아고’라는 노인에게서 당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혼잣말을 하고, 옛날 일을 추억하며 살고, 지금도 옛날처럼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산티아고를 보면서, 언제나 사람들 속에 둘러 싸여 있었지만 늘 혼자였고, 생각이 그대로 글이 되었던 옛날을 추억하며 사는 당신이 보였습니다. 가난한 산티아고와 부자였던 당신을 비교하는 것이 부적절 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어쩌면 산티아고는 당신의 영혼을 투영한 사람이 아닌가 싶었어요. 그의 물질적인 가난이 당신의 정신적인 가난을 표현한 것일지도 모르지요. 세 번이나 결혼을 하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지만 당신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단 한 사람이 있었을까요? 산티아고에게 소년이 필요했던 것처럼 당신에게도 그런 사람이 필요했는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의 모든 것들과 대화하는 사람이었어요. 청새치와도 이야기를 나누고 하늘의 별과 달하고도 마음을 나누는 사람이었죠. 당신의 노인이 커플이었던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았을 때, 또 다른 한 마리가 끝까지 쫓아오다 사라지는 모습을 봤다고, 그래서 고기를 먹을 때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는 대목을 보면서 당신을 알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작은 것들에 연민을 느끼는 당신을요. 언제나 거대한 무엇과 싸우면서 동시에 모든 것에 연민을 품고 있는 당신이 나는 좋았습니다.
당신은 《노인과 바다》를 통해서 제게 ‘삶’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어요. 지나간 삶만큼이나 지금의 삶도 아름답다고. 그러니 너무 좌절하지 말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어요. 어쩌면 인생이 덧없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이 인생이라고요. 산티아고가 지나간 과거에 사로잡혀 사는 것처럼 보여도 그가 내딛고 있는 세상은 현재였어요. 그도 그걸 알고 있었죠. 그러나 지난 과거를 후회하지 않았어요. 열심히 살았던 삶을 자랑스러워했지요. 모든 것이 덧없어 보일지라도 그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열심히 살아내는 것, 그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산티아고는 말하고 있었어요. 저는 《노인과 바다》를 읽으면서 당신이 내게 그 말을 해주는 것 같았어요. 인생이 보잘 것 없어보여도 누구에게나 빛나는 시간이 있다고. 세월이 흐르고 흐른 뒤에야 그 시절이 아름다웠다는 걸 깨닫게 되겠지만 괜찮다고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간 후에 조용히 눈 감을 수 있다면, 눈 감는 순간 곁에 소중한 사람 한 명이 지켜보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 게 아닐까... 그런 이야기를 해주었지요.
삶의 모든 순간이 행복할 수는 없겠지요. 생각해보니 꼭 그럴 필요도 없는 거였어요. 어떤 때는 행복하고, 어떤 때는 우울하고, 어떤 때는 희망적이고, 어떤 때는 절망적이어도 괜찮은 거예요. 그런 순간들이 모여 내 인생이 되고, 내 삶이 되는 거니까요. 늙고 병들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지나간 그 날을 돌아보며 ‘참 잘 살았다’고 말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산티아고처럼요.
긴 꿈을 꾸고 있는 산티아고가, 사자와 싸우고 있는 산티아고가 이제는 좀 평안해졌으면 좋겠네요. 그를 계속해서 싸우게 만든 당신도 이제는 평안하기를. 모든 것을 놓고 제 자리로 돌아간 당신이 그곳에서는 평안하기를 바라고 또 바라봅니다.
안녕.
2020년 11월 26일, 당신의 이야기가 좋았던 H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