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정을 지키고 싶었어
이혼을 하고 글을 쓰면서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그녀들의 이야기는 쉽게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알다시피 결혼이든 이혼이든 혼자서 하는 게 아닌지라 상대방의 입장을 자세히 들어 볼 수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래전에 이혼을 한 선배와 술자리를 갖게 되었다.
그동안은 묻지 않았던 질문을 던졌다.
"선배는 그런데 왜 이혼했어요? 와이프랑 사이가 나빠보이지도 않는데..."
그는 처음으로 그의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아내와 한 직장에 다니던 그는 거의 한 번에 이 여자가 내 여자임을 알아보았다. 그렇게 연애를 시작한 그들은 7개월 만에 결혼에 골인했다. 둘은 성향도 비슷했고 지금도 그는 신혼 때의 재미난 일들과 기억들을 이야기하곤 했다.
그러나 그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예를 들어, 결혼을 하고 나니 아버지가 갑자기 그와 그의 아내에게 매일 안부전화를 하라고 한 것이었다. 그는 결혼 전에 혼자일 때는 하지도 않았던 일들인데 결혼을 하고 난 후 이 갑작스런 요구에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가 아버지에게 왜 갑자기 이런 요구를 하냐고 되물었을 때 그의 아버지는 내가 아들 장가보내고 안부 전화 좀 받겠다는데 그게 머 어떠냐는 반응을 보이셨다고 했다. 물론 그건 어렵다며 그는 저항아닌 저항을 했다. 이런 자잘한 에피소드들이 이어지고 그들 부부에게도 아이가 생기고 결혼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게 되었다.
그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는 이제 간섭받을 일이 적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건 그의 착각이었다. 이제는 그의 어머니가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제사도 있던 집이라 명절 때면 근무를 해야 했던 그의 아내는 시어머니와 윗동서에게 눈의 가시였다고 한다.
아무리 그가 진짜 일하느냐고 못 오는 거라고 설명을 해도 그녀들은 믿지 않았고 그의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명절에 와서 일하지 않은 것에 대해 탓하고 괴롭혔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그 화살이 아내에게 날아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고 그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드디어 아내는 이혼을 원하다는 말과 함께 친정으로 가버렸다.
그는 자신의 가정을 지키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고 그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그들은 법원으로 향했다.
그들 부부의 법원에서의 풍경은 좀 달랐다. 그의 시점으로 볼 때 다들 서로 원수지간처럼 멀리 앉아있다가 호명하면 방으로 들어갔지만, 그들은 서로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방에 들어갈 때도 서로를 챙겨주었다.
이혼이 성립되고 나와서 근처 고깃집에 들어간 그들은 맥주를 시켜 한잔 마시고 울다가, 이야기를 하다가 울다가를 반복했다고 했다. 그는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아마도 주위에서 저 사람들은 다른 이혼한 부부랑은 다르다고 이상하게 생각했을 거라고 말했다.
그렇게 그들은 남남이 되었고, 그 이후에도 연락을 나누고 서로의 생일을 챙기고 딸과 함께 여행을 다니고 그렇게 그들만의 생활을 이어 갔다.
이미 십여 년이 지난 지금은 살림남이 다 되었고 이제 딸도 다 크고 바빠서 혼자있는 시간이 많아졌다며 웃음 짓는 그를 보며 마음이 찡 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처음 들었던 생각은 부모로부터의 간섭이나 명절, 제사 등과 얽힌 문제들이 결코 여자들만의 문제는 아니란 것이었다.
시부모와 아내, 그 사이의 남편도 어느 쪽으로든 영향을 받고 상처를 받는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는 가끔 자신의 가정이 깨어지게 한 어머니가 원망스럽다고도 했다. 지금 홀로 된 어머니를 보살펴야 하는 입장임에도 자신의 가정이 깨어지고 홀로 십여 년을 살아온 세월을 생각할 때 가끔은 어머니가 빨리 돌아가시고 이 모든 굴레의 짐을 벗고 싶단 생각도 든다고 했다.
아마도 가끔 연락하고 만나는 전 아내와 딸이지만 좋았었던 결혼생활을 떠올리며 가슴 아파했던 날들이 많았으리라. 지금도 '집사람'이라는 호칭으로 아내를 이야기하고 그녀의 음식 솜씨를 자랑하는 걸 보면 말이다.
한편으론 제사에 아랫 동서가 오지 않는다고 전화해 자신의 화풀이를 한 형수는 어떤 잘못이 있는 걸까?
수신지 작가의 며느라기에서 보면 첫째 며느리는 명절에 시집에 가지 않는다. 그리고 사린이에게 그건 자신이 미안해할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처음 그걸 보았을 때, 실은 좀 어리둥절해했었다.
나조차 가부장제 안에서 자랐기 때문에 명절 때 홀로 고생하는 엄마를 보면서 작은 엄마들을 원망했었으니 말이다.
그럼,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걸 그대로 닮아 행동한 어머니는 어떤 문제가 있는 걸까?
경험적 사고를 토대로 이야기하면 그 시대의 가부장제 안의 아버지들은 아마도 자신이 가족의 주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말한 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 옆에서 오랜 세월 살아온 어머니는 그 모습을 싫어하면서도 닮아갔을 것이다. 자신을 억누루던 강자가 사라졌으니 이제 그녀의 세상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어찌보면 그런 아버지세대들과 살았던 어머니 세대들이 요즘 황혼이혼이니 졸혼이니 이런 풍습을 만들어 낸건 아닌지... 아마 어머니 세대들 또한 '자식들도 시집장가 다 보냈으니 나도 더는 못 참아. 나 이제부터라도 자유롭게 살래.'를 외치고 있는 건 아닌지...
결국 가족이라는 굴레가 만든 지나친 요구와 간섭은 단란한 한 가정을 깨어버렸다.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이런 일들이 어디선가는 계속 일어나고 있을 거란 확신이 든다.
이 굴레를 벗어나는 방법은 없는 걸까?
한 가지 드는 생각은 부부가 합심하는 방법이다. 둘이 하나로 뭉쳐 유해한 가족을 멀리하고 (그렇다고 예의마저 저버리라는 건 아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방법밖에 없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제사도 마찬가지이다.
도대체 누굴 위한, 무엇을 위한 것인지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무엇보다 이미 하나의 가족을 꾸렸다면 특히 그 안에 사랑하는 아이가 있다면 더욱더 신중하게 고민하고 상의해서 내 가족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이혼을 하는 이유는 참 다양하다. 그리고 가정 폭력이나 아동폭력처럼 반드시 이혼을 하는 것이 정답인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녀와 그의 경우처럼 외부의 압력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Cover photo from https://www.koreatimes.net/ArticleViewer/Article/136751
본문 사진 출처 : http://pub.chosun.com/client/news/print.asp?cate=C03&mcate=M1003&nNewsNumb=20180428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