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엄마처럼 참고 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아

by HeeSoo
글쓰기를 마음먹고 작가의 꿈을 품고 부모님에게 작가의 꿈이 생겼다고 말씀드렸다.
그때 엄마는 '그럼 엄마 이야기도 써줄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솔직히 거기까지 생각을 해본건 아니었지만, 그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우리 어머니 세대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언젠가 지인이 예의 없는 시집 식구들에 대해 '천민 근성'이란 표현을 사용한 적이 있다.

조선시대에 며느리를 한 명의 일꾼으로 들인 것을 빗대어 한 표현이었다.

우리 어머니 시대 때만 해도 그랬다.


가난했던 집에선 아들을 낳기 위해 낳은 딸은 음식만 축내는 식충이 취급을 당하기 일쑤였다. 어린 남동생을 등에 업고 보살펴야 했으며, 국민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입을 덜기 위해 남의 식모로 보내졌다. 딸들에게는 고등교육을 시키지 않는 것은 당연시되었고, 20대 중반이 되면 선 본 남자의 집안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은 채 시집을 보내버렸다.

가진 것 없이 시집살이를 시작한 그녀에겐 요즘처럼 남편과의 알콩달콩 신혼생활이 기다려지는 '결혼'이 아니라 '시집살이'의 시작이었다. 아침 새벽이 되면 시어머니는 방문 앞에와 헛기침을 하여 그녀를 깨웠다. 곤로가 없어 연탄불에 밥상을 차려내고 남편 동생들의 도시락이며 교복, 운동화등 빨래, 모든 뒤치다꺼리를 해가며 부업으로 돈을 보태면서도 제대로 된 쌀밥 한 번 먹지 못하고, 일 년에 12번의 제사상을 차려내며 살아왔다.


수 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남편은 시모와 시누이의 횡포를 알게 되고, 차츰 아내의 마음을 알아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남편은 시어미니와 시누이의 고자질과 횡포 속에서 큰 아들이라는 무거운 굴레 속에서 그녀와 탈출을 결정했다.

이제 그녀는 오롯이 남편과 아이들, 그녀만의 가족이 생긴 것이다. 7년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이런 그녀의 삶에 대해 누구도 그녀를 탓할 수는 없다.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게 당연한 거였고,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그랬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우주 정거장이 생기고 우주선 관광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지금 21세기에도 여전히 그녀들에게 40년 전과 같은 요구를 하는 시집식구들이 있다는 걸 알았다.

결혼도 하기 전 찾아간 남자 친구의 집에서 예비 시어머니와 시누이의 행동은 마치 그녀를 종 부리듯 이것저것 요구했고 마지막 설거지까지 모두 그녀의 몫이었다. 그날 이후 그녀는 남자 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녀의 선택이 빠르고 현명했다. 이건 다분히 내 개인적인 의견이다.


그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후에야 사랑해서 둘이 함께 하고 싶어 결혼을 선택하였는데, 여전히 시집 식구들로 인해 고통받는 그녀들이 참 많다는 걸 알아챘다.

'여자가 참아야 된다. 그래야 집안이 평안하다.'며 자신의 힘들었던 삶을 며느리에게 강요 아닌 강요를 하면서, 그것들을 답습할 수밖에 없는 건 무슨 이유일까?


나는 나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솔직히 나에게 페미니즘이 뭐냐고 물어보면, 대답을 하기가 어렵다.

나는 단지 우리 집에 시집온 며느리라는 이유로 (어쩌면 여자라는 이유로) 자유와 표현의 권리를 빼앗는 건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벙어리 삼 년, 귀머거리 삼 년' 이 말을 요즘 며느리들에게 요구하는 건 어리석은 착각이지 않을까?


현 시대의 여자아이들은 더 이상 우리 어머니 세대처럼 키워지지 않는다. 똑같이 대학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각자의 커리어를 쌓아 어엿한 한 명의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시대이다. 치솟는 집값에 집 장만하려면 같이 벌어야지 하면서 맞벌이를 원하고, 집안에서는 시부모와 남편을 돌보는 지고지순한 말 잘 듣는 조선시대 며느리를 원하는 건 이율배반적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카카오 드라마 '며느라기' - 신지수 작가

얼마 전 지인이 신지수 작가의 '며느라기'라는 웹툰이 드라마로 제작되어 나온다고 알려주었다.

그녀의 추천을 받은 뒤 책도 사서 읽어보고 드라마도 빼놓지 않고 시청했다.

앞치마를 선물 받고 난감해하는 시린 이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보았다. 명절을 앞두고 앞치마를 사놓았다는 시어머니의 말에 순간 멍해졌던 나 자신을 말이다. 하나하나 현실에서 내가 겪은 내용과 너무 닮아있었다.

또한 이런 드라마가 공영방송에서 왜 하지 않는 거냐고 말하는 주변 사람들도 많았다.









왜 이런 며느라기들의 고충들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지 않을까?

어느 날 내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야, 그녀들은 자신의 고충을 이야기했고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다들 이렇게 힘들게 고통을 참아내며 살아오고 있었구나..'


아내와 시부모와의 갈등 사이에서 무능력을 선보이는 남편, 아직 아들을 놓지 못한 시어머니, 독립된 가정임을 인정하지 못하는 시부모의 간섭, 아침저녁으로 안부전화를 요구하는 시아버지 등등..


어느 누구도 가정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많은 불합리한 일들에 대해 적나라하게 밝혀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내 결론이었다. 서로의 익명성이 지켜지는 SNS상의 하소연 정도로만 다뤄지는 주제가 아닌가 싶다.

아니면 결국엔 대부분의 아내들이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 아이들 때문에 나를 죽이고 희생을 감내하면서 살아가는 길을 선택하는 게 아닌가 싶다. 실제로 '내 아이들 때문에 참고 사는 거야'라고 한 지인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강압적인 가부장제로부터의 탈출을 고민할 때 엄마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참고 살아봤는데 우리 딸에게 참고 살라고 말하고 싶진 않아.
너 인생이니까 네가 충분히 생각해 보고 결정해.
엄마랑 다르게 너는 직업도 있고 운전도 할 줄 알고 여행도 좋아하고 충분히 혼자 살 수 있어.
그렇지만 엄마는 못 그랬잖아.
엄마는 우리 딸이 혼자가 되는 게 좋은 건 아니지만, 그 집에서 네가 큰며느리로 살아가는 것도 그렇게 좋진 않아.
오히려 네가 다시 살겠다고 할까 봐 엄마는 그게 더 걱정이야..."

어쩌면 무수히 많은 동영상 강의와 지인들의 조언, 책 속에서 찾아 헤매던 내 대답을 엄마의 말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참고 살아야 할 이유와 가치가 있을까를 고민하고 마침내 나는 이혼 아니, 탈혼을 결정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가부장제 안에서 그렇게 길러진 사람의 가치관은 쉽게 바뀌기 어렵고,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라는 말을 새삼 깨달았다.

나처럼 또는 작가 곽정은 씨처럼 소수의 그녀들은 다른 선택을 하기도 한다. 또 이렇게 글로써 내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사회적 차별을 없애자 또는 양성평등을 울부짖으면서도 아직도 가족이란 집단 속에서 가부장제라는 분위기 속에서 여전히 여성들에게 며느리란 이유로 차별과 부당한 요구 및 대우가 지속되고 있다.

누군가는 이것을 참아내는 걸 배려라 하고 누군가는 몇 년이 흘러야 너의 지분이 생기고 너의 위치가 정해지고 발언권이 생기는 거야라고 말한다. 하지만 왜 친정에 가면 오히려 친정식구들이 사위의 눈치를 보며 대접하는데 어찌해서 며느리는 '결혼하면 대접받을 줄 알았어'이런 식의 말을 들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는 걸까? 단지 시부모에게 내 의견에 대해 목소리를 냈단 이유만으로..


이런 질문들에 대한 고민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어떤 선택이 옳고 그르다 말할 수 없다. 인생은 각자의 몫이며 누구도 그 사람의 인생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 수많은 조언들 속에서 나 자신도 내 입맛에 맞는 말들을 골라 합리화하며 나에게 맞는 해답을 찾아나가려 했기 때문이다.


단지 그때의 상황에 따라 나 자신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뿐이다.


아마도 세월이 훌쩍 지난 후에,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어.'



Cover photo from https://www.ajunews.com/view/20180406172523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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