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이혼이 하고 싶어요.
'이혼'이란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린 이후부터 참 많은 콘텐츠들 들여다봤던 것 같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 다양한 심리학 강의, 소통 강의, 부부상담 등등 등...
그중에서 곽정은 씨의 '思(사)생활'의 한 동영상에서 좋은 팁을 얻게 되었다. 그녀가 힘들 때 했던 방법이라고 소개해주었는데 '글쓰기, 명상, 산책'이 그 방법이었다.
실은 '부캐'라는 말이 유행을 하고 '브런치'라는 것을 알게 된 몇 달 전부터 글을 쓰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종종 해오곤 했었다. 몇 개의 글을 쓰고 첫 번째 브런치 도전을 했을 때 한 번의 고배를 맛보았다.
그러고는 생각을 좀 더 해봐야겠다며 깊은 산속에 있는 명상센터를 찾았다.
첫날 저녁 요가 명상시간,,, 각자의 소개를 하는데 그녀는 몇 달 전 받았던 수술로 인해 많이 힘들다며 눈물을 보였다. 그동안 그녀는 자신의 몸에 대해 너무 무관심한 것이 후회된다고 말했다. 딸과 함께 온 그녀를 보니 왠지 남편과의 사이가 좋지는 않은가 보다는 막연한 느낌이 들었었다.
다음날 아침 첫 명상시간, 이른 아침 7시 명상 장소에 도착한 사람은 그녀와 나 단 둘 뿐이었다. 그렇게 그녀와 나는 서로에게 눈인사를 시작으로 서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원래 하루 일정으로 찾아간 곳에서 나는 하루를 더 머물고 싶다고 하자 그들도 하루를 더 연장했다면서 정보를 공유하여 주었고 그녀와 딸, 나 이렇게 세 명은 2박 3일의 일정을 함께 하게 되었다.
마지막 날, 그들이 참여했던 프로그램이 지역관광공사에서 지원을 한 것이라 지역 활성화를 위해 관광지를 방문해야 하는 일정이 잡혀있었다. 삼일을 함께 보내고 어쩌다 보니 같은 분야에 종사를 하는 동종업계 사람임을 알게 된 그녀와 딸과 나는 셋이 함께 이동하기로 결정하였고 드립 커피가 맛나다는 커피숍으로 향했다.
실내 인테리어가 돋보였던 그곳을 두리번거리며 사진을 찍고 주문한 커피가 나오고 그렇게 우리는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나이가 있지만 결혼한 티(?)가 별로 나지 않았는지 그녀는 나에게 결혼을 안 한 거 같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그때 나는 이미 이혼에 관한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을 하던 중이었어서 그녀에게 당당히 말했다.
"저는 이혼했고 얼마 안 되었어요. 아마도 아이가 없다 보니 결혼했던 티가 잘 안 나나 봐요. 하하하"
멋쩍은 웃음도 함께 선 보였다.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도 이혼하고 싶어요." 옆에 딸이 앉아 있는데도 그녀는 주저 없이 나에게 그녀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런 것이 여행지에서 만난 타인에게 하는 편한 고백이었을까?
50대 중반인 그녀는 몇 달 전 자궁암 수술을 받았다. 결혼을 한지는 20년이 좀 넘었고 큰 딸과 아들 한 명이 있는데 얼마 전 이혼이나 졸혼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수술로 인해 직장을 그만두면서 너무 힘들었고 그동안 애들 키우고 집안일에 직장까지 다니면서도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었다.
수술을 받고 나서도 힘이 드니 집에서 힐링을 하고 싶었는데 눈치 없는 남편은 그녀와 상의도 없이 시댁에 가서 시어머니 생일을 하기로 약속을 해서 그녀를 더 속상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그동안 쌓였던 설움에 북받쳤다. 결혼하고 명절엔 시누이들 시중드느냐고 친정을 가보지도 못했고 시어머니와 남편은 친정에 가라고 보내주지도 않았다. 그렇게 10여 년이 흐른 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그녀는 친정에 가기로 결정했고 남편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친정에 같이 간 적이 없었다. 아이들이 크면서부터는 아이들과 함께 친정에 같이 다녔고 그렇게 지내면서 이혼을 생각했었다.
그녀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그렇게 살아왔고 그건 마치 복잡하고 무거운 긴 터널을 건넌 것과 같이 느껴졌다. 그녀가 그렇게 살 수 있었던 건 아이들인 그녀 삶의 원천적인 원동력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제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의 시어머니는 90세의 나이에 힘들다면서도 계속 제사를 지낸다. 그녀는 제사를 시어머니가 정리하고 그녀에게 넘겨주지 않길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남편도 제사를 지내고 싶어 하지만, 그녀는 앞으로 혼자서 제사를 지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설거지만이라도 남자들에게 해달라고 부탁도 해보았지만, 그녀의 시어머니는 그때마다 "그만둬라, 내가 하마"하며 나섰고 결국 모든 것은 여자들의 차지가 되었다.
하물며 아들에게 전이라도 부치게 하면 딸은 전을 부치고 있어도 가만히 두면서 시어머니는 손주를 부엌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래서 그녀는 "어머님, 어머님 아들은 어머님이 교육시키세요. 제 아들은 제가 교육시킬게요. 요즘 전하나도 못 부치면 제 며느리한테 저 나중에 욕먹어요."라고 말했다.
아마도 2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으니 이제야 이런 말도 목구멍을 넘어왔으리라...
'여자들이 아들 교육을 잘 시켜야 한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이번 생은 망했다며 내 세계를 찾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그녀에게 딸이 있는 것이 친구 같아서 좋고, 요즘은 세상이 달라졌으니까 우리 딸은 나 같은 일 안 겪겠지 싶으면서도 한편으로 결혼을 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이런 인생을 선택한 것은 나의 실수이며 나의 오만이었다고 생각했다. 가족들의 반대에도 지금의 남편을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이며 내가 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아주 큰 착각이었다고 생각했다.
'좋은 에너지를 보내면 다가오겠지. ' 란 착각으로 인해 외로운 인생을 살았다고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다.'란 말이 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찍 알았다면 그녀도 나와 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들, 딸이 커가는 요즘 자식들 결혼을 생각하면 양 부모가 다 있는 게 낫지 않겠냐며 이혼보다는 '각거(各居)'를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 나는 괜찮은데 나로 인해 가족들이 가슴 아파할까 봐'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그녀가 들려준 다른 이야기는 그녀의 동생에 관한 이야기였다.
2살 아래인 동생은 시누이가 6명이나 되다 보니 친정에 올 수가 없었고 몇 해 전부터는 '나 왜 이렇게 살고 있지...'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남편이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며 제사를 없앴고, 이제 제사가 없으니 이제부터 친정에 가겠다 선언한 그녀의 동생은 그렇게 결혼 후 20년 만에야 친정에 올 수 있었다.
또 친구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입사동기였던 그녀는 딸 둘을 두었다고 한다. 딸 둘이면 엄청 큰 축복인데도 시어머니랑 같이 살고 있던 그녀는 20년 동안 아들 낳으라는 성화에 전국 방방 곳곳 안 다닌 곳이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제사도 혼자 다 지내야 했고.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갑상선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수술 후 입원해 있던 그녀에게 시어머니가 찾아와서 한 말이란.
"너 언제 퇴원하니? 우리 김장 언제 할까?" 였다고 한다.
이 말은 들은 그녀는 드디어 폭발하여 남편에게 어머니와 같이 못 산다고 선언했고 그렇게 그녀의 시어머니는 딸 집으로 가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한 시간 가량 그녀는 자신과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이 이야기들을 들으며 왜 이 같은 일들이 반복될까?
어머니 세대들도 이모뻘 세대들도 그때만 해도 이혼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선택이었단 생각이 든다.
그녀에게 허락을 받고 메모를 하던 도중 난 그녀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이렇게 많은 며느리들이 힘들어하고 암에 걸리고 시어머니와 남편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는데, 이런 문제들은 왜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세요?"
잠시 생각을 한 그녀가 대답했다.
" 아마도 가족사이기 때문인 것 같아. 문제 만들기가 싫기도 하고. 그냥 내가 한번 참으면 돼지. 난 잘 참는 편이었어 "
그렇게 많은 아내들과 며느리들이 참아가며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있었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그 결과가 화병 또는 '암'이라는 건 참 가슴이 아픈 일이었다. 이혼을 생각하며 조언을 구했을 때 나에게도 같은 이야기를 해주신 분이 계셨다.
"참고 살면 화병 나고 그런 시부모들이랑 살면 결국 '암'생겨. 잘 결정한 거야. 요즘 누가 참고 살아."
그녀는 이 말을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혼만이 정답은 아니다. 그녀처럼 자식들을 위해 '각거'를 고민해 볼 수 도 있다.
하지만, 참고 살아 암이 생길 지경이라면 이제 당당히 할 말은 해야 하지 않을까?
아이가 없어 이혼이 쉬웠던 거 같다며 나를 부러워하던 그녀가 잊히지 않는다. 우연한 장소에서 만나 한 편의 인생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나누어 주었던 그녀는 나에게 이름 석자를 알려주고 나에게 글이 기대된다는 말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아픈 몸으로도 결국 시어머니의 생일에 참석하기 위해 서둘러 자리를 떠난 그녀와 그녀의 딸을 보내고 나는 다시 한번 결심을 했다.
'다시 글을 써서 브런치에 도전해 봐야겠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도 꼭 써줘야겠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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