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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암환자와 보호자가 됐다.

by 롸잇테리언







아빠는 꽤 좋은 사람이었고

성실했지만,

본인의 건강을 전혀

돌보지 않았다는 점에서

가장으로서는

낙제점이라고 생각한다.




하늘에 계신

아빠가 보고 슬퍼한대도

어쩔 수 없다.




그럼, 엄마는 어땠냐고?




엄마는 아빠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을 기울였다.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누구보다 늦게 잠들 정도로

바쁘게 살았고,


몸의 작은 신호도 놓치지 않으며


무엇보다

아스팔트 뚫고 핀 민들레처럼

매사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런 우리 엄마가 왜?



심지어 신장만큼 큰

6cm의 종괴라...

아주 오래 전부터

서서히 커졌을 거라니.



매년 검사했었는데

건강검진센터에서는

아무말 없었는데요, 하니



의사쌤 왈,


"네...아쉽지만 그럴 수 있죠..."



제기랄.

뭐가 이렇게 무책임하단 말인가.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네...잘 부탁드립니다. 외엔 없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

병원 몇 군데를 찾아다닌 후

우리는 강남성모병원에서

수술을 받기로 했다.



워낙 평이 자자한 명의가

계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부분절제로 신장을

살려주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수술방법은 로봇수술.

회복도 빠르고

손떨림 방지도 된다고 하고

단점은 비용 뿐이었다.




보험 하나 없이 몸져누워

결국 집까지 팔아야 했던

아빠를 보며, 엄마는

본인의 보험도 제법 탄탄하게

준비해 두셨었다.


오래 살고 싶어서? 아니.

너희한테 부담주기 싫어서...


빠듯한 형편에 보험료를

꼬박꼬박 밀어넣던

엄마의 말이

아기를 낳고서야

비로소 이해가 됐다.




수술 전에는 해야할 검사가 많았다.




"9호선 타고 한번에 가서 좋네."



떨리는 마음을 누르기 위해

우리는 별 시덥잖은 수다를

주고받으며

지하철에 올랐다.



강남성모병원.



남편이 쓰러졌던 트라우마가

아직 남아있어

대학병원만 보면

손이 벌벌 떨리는 나다.



엄마가 옆에 있어

최대한 괜찮은 척 하며

서류에 적힌 순서대로

가이드를 착착 해나갔다.



그리고 대망의 입원일.



시어머니께서 올라오셨다.

아이들 밥을 해주기 위해.



어머니 역시 10년 전

대장암 수술을 하신 경험이 있어

누구보다 떨리는 마음을

잘 알았을 터.


우리 엄마에게

별 거 아니라고,

신장암은 착한 암이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셨다.




착한 암이 어딨어.

암이 없는 게 착한거지.




아이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떨리는 마음으로

입원수속을 밟았다.



아이들은 할머니가 배가 아파

병원에 갔다는 설명을 듣고


"할머니 배 아파서 병원에 갔어요~"

"안 울고 기다릴거예요~" 하며

기특하게 매일 밤을 견뎠다고 한다.



신장암은 수술을 해서

조직검사를 해봐야

몇 기 인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산 넘어 산이구나.






KakaoTalk_20251204_222013957_05.jpg?type=w773 운좋게 창가자리 배정






정신없이 입원수속을 밟고

짐을 풀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엄마를 보니

불안한 마음이 훅 밀려왔다.



금식 주의문을 받고,

제모를 돕고,

멍 때리며 앉아있으니

엄마가 하는 말.




"내려가서 밥 먹고 와."



됐어, 쿨하게 말하고 싶은데

와중에 왜 배는 고프냐고.




슬그머니 나와

지하편의점에서 컵라면과 고구마를

먹었다.



문득, 몇해 전

돌도 되지 않은 딸과 함께

코로나 격리병실에

입원했던 일이 생각났다.



아기가 아프니 식음을 전폐하고

아침에 남편이 배달해주는

아이스라떼 한잔과

초코파이 두개로

거의 하루를 버텼었다.



자식이 코로나에 걸렸을 땐

목구멍으로 밥도 못 넘겼으면서,


엄마가 암이라는데

라면국물까지 들이키고 있다니.



이래서 자식이 부모를 생각하는 건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것의

반도 따라갈 수 없다는

말이 있나보다.




그리고 그날 새벽...


엄마도, 나도

불 꺼진 병실에서

분명 눈을 감고 있었지만

둘 다 한숨도 못잤다.




KakaoTalk_20251204_222013957_03.jpg?type=w773 책 보면서 딴 생각에 잠기려 애씀



KakaoTalk_20251204_222013957_04.jpg?type=w773 엄마, 괜찮을거지...?





우리에게 닥쳐올 내일이

어떤 모습일지, 두려워하면서...



그렇게 서로에게

차마 아무말도 못 건넨 채로

등을 돌리고

마음만 기댄 채

지새운... 밤이었다.




참으로 길고 길었던 밤.






KakaoTalk_20251204_222013957_02.jpg?type=w773 내 곁에 오래 있어줘,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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