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딸둥이네 이사 대작전

by 롸잇테리언






엄마는 파워 E,

나는 대문자 I다.






KakaoTalk_20251127_113646033_02.jpg?type=w773 예전 우리집, 꽃 하나는 끝내줬었다



8년 넘게 살았으면서도

앞집 할머니, 할아버지 빼곤

눈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않고

폰만 들여다보고 살기 바빴던 나보다


밝고 활달한 성격의 엄마가

더 빨리 아파트의 사정들을

캐치하기 시작했다.



14층 아저씨는 약사래,

11층 할머니는 좀 아파보여,

1층엔 애가 셋이던데?




아파트 단지 내에는

어린이집이 있었지만

이상하게, 아이들이 놀이터에 나와

노는 일은 드물었다.



어쩌다 한번, 놀이터에서 마주치면

원장님은 우리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라며

살갑게 인사했지만


아이들이 그닥 즐거워하는 것 같지 않아

어색한 웃음만 짓고 자리를 피했다.



친정엄마는 내게 말했다.



"저긴 가까워도 안 돼.

애들이 하나도 안 재밌어보여."



나도 동의하는 바였다.




KakaoTalk_20251127_113646033_03.jpg?type=w773


KakaoTalk_20251127_113646033_01.jpg?type=w773 서로가 서로에게 유일한 친구였다






생각해보면 이사에 대한 모든 힌트는

엄마가 줬다.




"근데, 이 아파트에는

애기가 너무 없네?"




정말이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원주민의 비율이 90%에 육박하고

임차인도 드물었다.


세대수가 워낙 적어서도 있지만

유독 아이가 없었다.



소아과를 가려면 좁은 길을

10분 정도 걸어야 하고,


가는 길에 길담배 하는 분들을

3팀 이상 꼭 마주쳤다.



우리는 유모차를 밀면서

한 손을 휘휘 저으며

항상 그 길을 지나다녔다.



언제까지 이 좁고

울퉁불퉁한 길을

노심초사하며 다녀야 할까.




"엄마, 나 이사가고 싶어."



엄마가 재빨리 대답했다.



"가면 좋지."




엄마는 대단한 투자자는 아니었지만

우리를 키우면서

신축에서 또 신축으로

재건축 아파트 몸테크를 해가며

작고 소중한 돈을

소소하게 불린 경험이 있는 분이다.



본인이 도와주지 못하는 게

미안할 뿐,

우리가 이사를 결심하자

내심 좋아하는 눈치였다.



시댁은 달랐다.



수년째 안 팔리는 지방 건물을

팔아서 보태줄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셨다.


나쁜 의도라기보다

대출 떠안고 어떻게 살거냐,

하는 걱정이 크셨던 건데...



친정엄마 생각은 확고했다.




"감당 가능하면 괜찮아.

집을 누가 돈 다 주고 사냐."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엄마의 말에 용기를 냈다.




어린이집은 내년 3월에나

입소가 가능하다 하고,

18개월부터 24개월까지

마의 구간이 겹친 바로 그때!




나는 서울 곳곳의 아파트를

내 눈으로 보겠다며 임장을 다니고,

강의도 들어보고,

동시에 집을 치우고, 보여주는 일을

끝없이 반복했다.





KakaoTalk_20251127_113646033_04.jpg?type=w773



KakaoTalk_20251127_113646033_13.jpg?type=w773


KakaoTalk_20251127_113646033_12.jpg?type=w773 추억으로 남은 집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돌아다니다

집에 돌아오면

엄마의 품에서 잠든

내 새꾸들이 있었다.


집을 알아보는 일도

부동산을 순회하는 일도,

짐을 정리하는 일도,

엄마가 없었다면 못 했겠지.





KakaoTalk_20251127_113646033_11.jpg?type=w773 온동네 부동산 모닝커피 배달부였다, 집 좀 팔아주세요





(강의 듣는 날이면

애들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시고,

누가 집 보러 온다고 하면

청소에 애들 머리까지 싹 빗겨서

모델하우스와 모델을

만들어 두시기도 했다.)




그렇게 하염없이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을 보내고 싶었던 원에

극적으로 자리가 생겨

OT에 참석하던 날,

우리의 첫 집이 팔렸다.




이상하게도 내가 보여주면

감감무소식이던 집이...


내가 출근한 사이

슬쩍 보고 간

중년부부의 맘에 들었던 것이다.


엄마 사주에 토 기운이 강하다더니

엄마의 힘인가?



어쨌든, 그렇게 우리는

또 하나의

큰 산을 넘었다.



(이 시기에 엄마의 낡은 아파트도

새 주인을 만났고

엄마는 쪼금 더 좋은 입지에

다시 내집마련을 하셨다.

바야흐로... 우리가족의 격동기.)







KakaoTalk_20251127_113646033_10.jpg?type=w773 옛날 엄마집도 덩달아 안녕





아이들을 붙잡고,


"우리 이사간대~"


"새 아파트로 간대~"



알아듣지도 못할 말들을

계속하는 엄마는

무척 즐거워보였다.




우리의 새 출발을

가장 열렬히 응원하는 사람,


간절하게 내가

좀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라는 사람,



항상 내 등을 떠밀어

올려주는 사람,




그건 바로 친정엄마였다.





keyword
이전 21화K-장녀의 말할 수 없는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