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세라핀이 그만둔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우울해져서 업무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여러 가지 이슈들이 있었고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만두는 이유에 대해서 한마디로 얘기했는데 나는 그동안의 모든 사건들이 생각나서 이해할 수 있었다. 세라핀은 베트남 오피스랑 일도 같이 했었고 우리는 주기적으로 계속 연락을 했었다. 그래서 그녀의 퇴사 소식이 나에게는 더 크게 와닿은 것 같다.
나: 앞으로 뭐할 거야?
세라핀: 글쎄. 좀 쉬면서 생각해볼래.
세라핀은 싱가포르인이고 싱가포르 정부는 싱가포르인들을 위한 교육이나 보장제도를 잘해놓았으니까.. 조금 쉬다가 다시 시작하면 되겠지. 하지만 세라핀이 정말 많이 그리울 거다. 회사에서 내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는데.. 이젠 누구한테 얘기를 해야 하지..?
나: 앞으로 더 좋은 회사에 가고 더 재밌는 일들을 하게 되길 바래.
세라핀: Thank you for the blessing.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우리는 정말 모를 테니까.. 더 좋은 일이 생기려고 그만두게 된 걸지도 모른다. 나도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내 회사가 아니니까. 그럼 나는 어떻게 할까? 바로 짐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될까?
사실 이사하고 우울했다. 집은 마음에 들고 다 좋은데.. 아마 지난 몇 번의 이사가 지쳤던 것 같다. 집을 꾸미면서도, 이렇게 꾸며서 뭐하나. 어차피 다시 이사 가거나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다 버리겠지, 이런 생각도 들고...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잘 살아가고 있는 친구들과 비교하면서 나는 너무 불안정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집을 꾸미고 쇼피에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사면서도, 나는 한 치 앞 일도 모르겠는데 언제 한국에 돌아가게 될지도 모르는데, 12월 크리스마스까지 나는 과연 베트남에 계속 있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들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앞일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건 예상치 못한 더 좋은 일들이 생길 수도 있는 거고.. 마음을 내려놓고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기로..! 만약에 또 이사하게 된다면 그때는 이삿짐센터를 불러서 물건 다 가져가기로 했다. (얼마나 머물지 모르겠지만 있는 동안 집 꾸미고 싶은 대로 꾸며야지..) 앞일에 대해서 너무 걱정하거나 불안해하지 말자. 한국에 살든 베트남에 살든 어느 나라에 살든 항상 언제라도 어떤 일이 생길 수 있으니까. 베트남에 산다고 해서 불안한 게 아닐 거다. 한국에서 살더라도 가끔 불안함을 느끼겠지..
엄마랑 오후에 오랜만에 전화로 수다 떨어서 좋았다. 이사 온 집 좋고 한국 음식 배달도 잘 돼서 너무 좋다고 자랑했더니 ㅋㅋ 엄마가 이사 잘했다고 했다. 빨리 쇼피에서 크리스마스 트리 배달 왔으면 좋겠다. 그럼 연말 분위기 물씬 날듯.. (미리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