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젊은 지원아.
편지가 늦어 미안해.
내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했을까 봐 마음이 쓰인다.
아무리 의료기술이 많이 발전했어도
할머니는 할머니인가봐.
갑자기 건강이 안좋아져
3주나 입원해 있었어.
이제는 다시 몸이 괜찮아졌으니
너무 걱정 말거라.
하지만 내 나이가 나이인 만큼
언제든 이 편지가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
젊은 지원아.
요양원에 계신 너의 할머니도 최근에
중환자실로 옮기셨지.
어렸을 적 너를
키워주다시피 한 할머니라
애틋한 마음도 있었지만
할머니의 유별난 성격 때문에
마음도 많이 상했었지.
늘 피해의식을 갖고계셔서
타인들을 의심하셨고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들면
빨갱이라 몰아부쳤고
정신이 오락가락하고부터는
온가족과 온동네를 들들 볶으셨지.
여기 2070년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단다.
내 주변에도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들을
하는 타인이 많아.
아무리 가족이라도
나 아닌 타인은 참
이해하기 어렵단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이해하지 못할만한 사람이 된’ 데는
원인이 있는 경우가 많다.
너의 할머니를 생각해보렴.
할머니가 어렸을 적,
할머니의 언니가 시집을 간 후
병이 나서 세상을 뜨고 말았지.
딸의 임종을 보지 못한
할머니의 어머니는
마음의 병을 앓다가
곧 뒤따라 하늘나라로 가셨어.
글로는 참 쉽게 쓰이지만…
당시 겨우 어린 아이였던 할머니가
겪어내기에는 너무 아픈 현실이었어.
80이 넘어서도 생각나는
할머니의 말이 있다.
“언니도, 엄마도 죽고
혼자 남은 방에 우두커니 앉아서
울었어…..”
직접 보지도 않았는데
어린 여자아이가 외로이 우는 모습이
머릿속에 생생하구나.
그 때 어린 소녀였던
할머니의 마음 속에 생긴
커다란 구멍을 누가 메꿔줄 수 있었겠니?
그 정도 일을 겪으면
마음이 옹졸해지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야.
나는 그렇게 할머니를 이해했단다.
***
젊은 지원아.
어떤 사람들은
네가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의
아픔을 겪고
지금 네 앞에 와 있다.
네가 겪는 아픔 역시
다른 사람들은
상상하지도 못하겠지.
그게 바로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다.
한 사람의 말과 행동양식에는
자신만의 역사가 담겨있기에
타인이 그것까지 헤아리기엔 어렵지.
그러니 도저히 이해 못할 사람이 있다면
너의 할머니를 한 번만 떠올리렴.
엄마와 언니를 잃고
혼자 울던 할머니를 생각하며
타인의 아픔 또한 짐작할 수 있는
지혜의 눈을 갖기를 바란다.
2070년 10월 22일
할머니가 된 지원이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