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의 세 손에서 나를 찾다.
너, 너무 빠른 거 아냐?
"그러면 내가 따라갈 수가 없잖아."
"여기야, 여기! 어서 날 따라와!"
나는 항상 빠르게 움직여. 늘 바쁘지. 어디든 순식간에 옮겨갈 수 있어. 인생은 순간이고, 찰나라고 하잖아. 우리 인생은 순간. 그 무엇도 아니야. 지금 이 순간 원하는 것을 하지 않으면, 모두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다고. 나는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삶의 다양한 색깔을 탐험하는 걸 좋아해.
나도 그런 순간을 즐기고 싶지. 그렇지만 나는 하루하루 일상의 소중함에 집중하고 싶어. 일상이 없다면 그 순간을 쫓는 것은 단순한 쾌락에 지나지 않아. 아침에 일어나면 갈 데가 있고, 저녁때 일을 마치면 돌아올 집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집에 늘 같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중요해. 그리고 거기서 즐거움을 찾는 거지. 소확행이라고나 할까?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일상의 재미 아니겠어?
난 그런 짧은 순간들에는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스타일이야. 좀 더 의미 있는 것을 원해. 목표와 비전 같은 것 있잖아. 일단 태어났으면 내가 뭔가를 이뤄야 하는 거지. 큰 방향을 설정하고, 성장하고, 발전하고. 그게 내가 바라는 거야. 좀 느리더라도 상관없어. 인생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여행(Journey)이니까. 천천히 움직이지만 꾸준히 쌓아가는 거야.
흥미, 재미, 그리고 의미
눈치가 빠른 분들은 알아채셨을까요? 첫 번째 에피소드의 제목 "삼미식당"은 삼(三), 미(味), 즉 3가지 맛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인생 맛집 삼미식당에는 3가지 맛이 있습니다. 바로 앞선 대화에서 소개드린 "흥미", "재미", 그리고 "의미"입니다.
흥미
우리는 매 순간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순간마다 드는 생각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끌리는 것에 마음을 주고, 곧이어 몸을 담고, 인생을 살아냅니다. 그 시작이 되는 것은 바로 "흥미"입니다. "어떤 일이, 누군가가 나를 가슴 뛰게 하는가? 설레게 하는가?"에 따라 우리는 순간의 아름다움에 매료됩니다. 그리고 마치 마법에 이끌린 것처럼, 혹은 무엇에 홀린 것처럼 따라가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의 흥미는 시시때때로 바뀝니다. 배가 고프면 맛있는 음식에 흥미를 가지고, 어느 날 만나 대화한 누군가에게 마음을 뺏기고, 순간 느낀 아름다움을 소유하기 위해 지갑을 엽니다. 흥미는 가장 빠르게 움직입니다.
심장을 뛰게 하는 그것을 쫓아가
재미
반면 재미는 좀 더 지속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언가에 재미를 느꼈다는 것은 그 일을 꽤나 이어가고 싶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나는 요가가 재미있어"라는 말은 요가에 흥미를 느끼고, 이제 재미를 붙여서 하루의 일부분 시간을 들이고 있다는 말입니다. 매일 아침을 깨워주는 것은 "재미"입니다. "오늘은 어떤 재밌는 일이 있을까?"라고 상상만 하는 것으로도 침대에서 일어나기가 수월해집니다. 반대로 늘 반복되는 일상, 지루한 회사생활이라고 생각하면서 일상의 재미를 잃게 되면 하루하루가 곤혹스럽습니다. "나는 무엇에 푹 빠졌다."라는 말처럼 재미는 하루와 일상을 웃게 만듭니다. 재미는 흥미보다는 느리지만 꽤나 이곳저곳 움직이는 속도가 빠릅니다.
나를 깨우는 일상의 재미는 무엇인가
의미
순간순간의 흥미, 하루하루 재미를 쫓는 인생도 지루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는 왜 사는가?",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좋아하는 물건을 사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재밌는 운동을 하고 여행을 다니면서도 떠나지 않는 물음이 있습니다."내 인생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100세까지 살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평생 살 것 같이 말합니다. 그리고 가까운 이들을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내가 인생의 의미를 찾기 전에 내 삶이 마지막 장에 다다를 수 있다고 말이죠. 의미는 순간이나 하루에는 느끼지 못할 만큼 천천히 나아갑니다.
내게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중학생 아이의 수학을 지도하다가 맞닥뜨린 문제입니다. 사실 이 문제 덕분에 며칠 동안 시계에 대해 수학적으로 그리고 철학적으로 사고하는 시간을 갖았습니다.
시침과 분침이 만나는 시각을 구하시오.
(예를 들면 4시와 5시 사이)
아날로그시계에는 3개의 바늘이 있습니다.
바로 초침, 분침, 시침입니다. 침(針)은 바늘이란 뜻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이것을 바늘이라고 표현하지만 영어는 좀 다릅니다. 영어로 시침은 The hour hand, 분침은 The minute hand, 그리고 초침은 The second hand입니다. 시계의 "손"이라는 표현인데요. 시계를 사람으로 보고 손이라는 표현을 쓴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이 손이 저마다 다른 곳을 가리키고, 다른 속도로 움직인 다는 것은 한번쯤 생각해 볼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시계에서 이 손들은 저마다 다른 속도로 움직입니다. 그런데 아이의 수학문제에서 처럼 분명히 만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12시 정각이 되면 시계의 세 손이 한데 만납니다. 언제 또 만날까요? 또 몇 번이나 만나게 될까요? 우리는 이것을 수학적으로 계산해 볼 수 있습니다만 결론적으로 하루에 22번 만나게 됩니다. 24번이 아니라는 사실이 더욱 흥미롭게 합니다.
우리 인생에서 앞서 말한 세 손이, 세 가지 아름다움이 한데 만나는 때가 있습니다. 흥미 있는 일을 찾아 재미를 붙이고, 그것에서 의미를 만들어가는 인생입니다. 그것들을 반드시 한 군데서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다양한 곳에서 내 마음이 흥미와 재미를 느끼고,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흥미와 재미와 의미가 있는 일을 찾으셨나요? 그렇다면 그것들이 한 데서 만나는 때는 언제인가요?
당신의 시계는 하루에 몇 번
세 손이 만나시나요?
우리는 얼마나 빨리 움직일 수 있을까요? 100m를 13초? 이건 중학교 때인 것 같고,, 실제로 온 힘을 다해 뛰어본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횡단보도에서 초록불이 깜빡거릴 때? 정도?) 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도 물리적 제한 속에서 일정속도 이상으로 빠르게 움직이기 어렵습니다.
반면 마음은 빠르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상상만 하면 멀리 동해안 바닷가도, 미국의 샌타모니카 해변도 단숨에 갈 수 있습니다. 마음은 늘 바쁘게 움직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지구가 돌고 있는 물리적 공간의 움직임을 느끼지 못합니다. 우리 존재에 비해 너무나도 거대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세상이 변하는 속도 또한 느끼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것들을 모두 느끼고 살다가는 미쳐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것이 바로 세상입니다.
가족들과 있을 때 휴대폰을 보고 있는 때도 많습니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면서 스마트폰에서 이럭저럭 것들을 검색해 봅니다. 아이와 더 나은 일정을 위해서, 더 재밌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라지만 어찌 되었든 그 시간은 아이가 아니라 나의 생각과 마음은 스마트폰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것은 회사에 있을 때도, 심지어 휴가지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내 마음이 내 몸과 일치하지 않은 순간입니다.
몸은 집에 있지만 마음은 넓은 백사장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가족들과 휴가를 꿈꿉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마음속의 그곳, 푸른 바다가 보이는 리조트 수영장 의자에 누워 시원한 망고주스를 마실 때. 바로 그 순간 행복하다 느낍니다. 푸른 바다, 바닷바람에 흔들리는 야자수 나무가 춤을 추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면 뭐든 아름답게 보이고, 행복이 샘솓습니다.
수처작주 입처개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종교적 색이 없이 본래 뜻이 "내가 서는 곳마다 주인이 된다"는 뜻입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가" 흩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비록 힘든 일이 있으시더라도, 또는 삶이 쳇바퀴 돌듯이 회전목마 같더라도, 나름의 중심과 초점을 맞춰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나의 세 손, 그리고 서로 바쁘게 사는 가족들과의 세 손, 네 손 함께 맞잡아 보시면 좋겠습니다. 저 또한 모처럼 연휴 가족들과 손을 잡고 다시 초점을 맞춰보며, 그리고 제 몸과 마음의 손을 잡아보며 에세이 글을 적어봅니다.
잠시 멈춰 당신 손을 잡습니다.
우리 함께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