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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문 Jan 19. 2021

Can't make everyone happy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 수는 없어

승객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곧 토론토 국제공항에 착륙합니다.
좌석벨트를 매어 주시고 좌석 등받이와 테이블을 원 위치로 해 주시기 바랍니다.


캐나다 토론토

24살 청년은 미주대륙 캐나다 동부에 위치한 도시, 토론토에 도착했다. 청년의 첫 비행경험이자, 16시간의 비행이었다.


 착륙 전에는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제발 비행기 추락 사고나 이런 것들로 젊은 날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다고. 모든 것이 새롭고 의지할 곳 없는 미지의 세계였다.


가지고 온 돈은 3,000불, 우리나라 돈으로 약 300만원 정도였다. 큰 돈 같지만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해외에서 먹고 자고, 공부하기에는 부족한 금액이었다.

단, 일을 할 수 있는 비자인 워킹비자가 있었다.

청년은 뭐든 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든든했다.


주머니에는 저렴한 유학원에서 배정해준 홈스테이 주소가 있었다.


문제는 그 '저렴한' 한국 유학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비행기에서 도착하면 그 유학원에서 마중을 나와 있기로 했다. 젊은 청년은 믿었다.

하지만 유학원에서는 픽업을 나오지 않았다.

큰 이민가방과 함께 도착한 미지의 세계에서 바로 국제미아가 되는 순간이었다.

메모에 적힌 번호로 전화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아, 망했다..

한국 영어 스터디를 통해 알게 된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까스로 연락이 닿아 공항에서 노숙은 간신히 면하게 되었다.


유학원이 배정해준 홈 스테이는 캐나다 아저씨와 일본 아주머니 부부 집이었다. 캐나다 아저씨는 일정한 직업이 없었다. 동네 주점에서 불규칙적으로 드럼을 친다고 했다.(현지인들은 gick이라고 불렀다)

그는 드럼 연주로 받은 돈과 유학생들 홈스테이 월세로 수입을 이어가고 있었다.


일본 아주머니는 집에 홈스테이로 10년 전에 유학을 왔다가 아저씨와 결혼을 했다고 했다. 메이라는 귀여운 3살짜리 아이도 있었다.


홈스테이 비용에는 식사 3끼 비용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정확한 금액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점심은 잠시 다닌 어학원에서 먹을 수 있도록 '샌드위치' 도시락을 주었다.


Heel Sandwiches

청년은 하얀 식빵을 놓고 베이컨, 상추, 토마토를 올리고 다시 식빵을 덮어 대각선으로 자른 것이 샌드위치라고 알고 었다. 하지만 청년의 샌드위치는 항상 식빵의 맨 끝부분(현지인은 heel이라고 부른다.)이 위아래로 붙어있었고,  속에는 땅콩 크림만 있거나 가끔 야채가 들어가 있었다.

식빵 끝부분이 어찌 그리 많을 수 있을까, 청년은 일주일에 2번 식빵 끝부분으로 만든 샌드위치를 먹었다.


식빵 끝부분은 언제나 청년의 몫이었다
.


청년은 항상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대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아주머니는 산후우울증이 있었다.

(사실 그것이 산후 우울증이라는 것은 청년이 훗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보고 알게 되었다.)


청년은 샌드위치와 식사에 대한 문제로 대화를 원했다. 학교에서는 그렇게 문제를 해결한다고 배웠다.

현실은 책과 달랐다. 갇혀있던 아주머니의 우울증은 청년으로 돌파구를 찾은 듯했다.


결국 청년은 그 집을 나올 수밖에 없게 되었다.

선불로 낸 홈스테이 비용은 절반도 돌려받지 못했다.


반면, 캐나다 아저씨는 사실 청년에게 무척이나 잘해주었다. 드럼도 가르쳐 주고자 했다. (아주머니의 반대로 계속되지 못했다) 마지막 날 아저씨로부터 소액의 환불만 받았고, 아저씨는 마지막 악수를 하며 이런 말을 건넸다.


You can't make everyone happy.
(모두를 행복하게 할 수는 없어.)

청년은 항상 웃으며 누구와도 잘 지내보려는 성격이었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람도 있는 것이었다.

특히 돈으로 맺어진 관계라면 더더욱 그랬다. 청년은 이민가방을 가지고 하룻밤에 12불짜리 게스트하우스 (dormitory 6인이 한 방을 쓰는 숙소)로 가야만 했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인생의 큰 교훈을 얻은 그 날,

토론토 young & bloor에서 파는 2달러짜리 눈물 젖은 핫도그를 먹으며 부모님께 전화를 했다.

잘 지내고 있노라고.. 목이 매였다.


물론 돈으로 관계를 맺은 현지 한국 유학원도 그 사건에 대해 모른 척했다. 돈으로 맺은 어른들의 세계는 그랬다.


청년은 빵 끄트머리로 인생을 배웠다.

그토록 진하게


모두를 기쁘게 하기보다
'내 마음'을 먼저 챙겨보면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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