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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문 Oct 08. 2023

어디 아이스 홍시만 귀한 감?!

바닥에 떨어진 감들은 어떤 꿈을 담고 있었을까?

어렸을 적, 우리 집 마당에 감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가을이 되면 주황색 감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옅은 주황색부터 짙은 주황색까지 주렁주렁 열린 감들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도 풍요로워졌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아버지가 만드신 긴 대나무 장 대로 감을 땄다. 대나무 장대 끝에 매달린 빨간색 양파 망 안이 감을 감싸고, 쏙 들어갈 때의 그 희열이란! 감은 종종 망 안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또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하루는 친구들이 놀러 와서 감 따기 시합을 했다. "좋았어! 이제 어떻게 하는지 알았어!" 친구가 소리쳤다. 저마다 감을 빨리 딴다고, 더 많이 딴다고, 또 더 높은 곳에 있는 감을 딴다고 소리쳤다.


"난 벌써 9개나 땄어! 죽이지?"

"난 저기 높은 곳에 있는 것도 딸 수 있어! 저기 제일 높은 곳에 빨간 홍시 보이지?"


"에~ 저건 너무 높아서 못 딸걸?"

"내가 보여줄 테니 잘 보라고!"


친구는 순간 점프를 뛰어서 감 따개로 감을 건드렸다. 감은 "툭" 하는 소리와 함께 꼭지가 떨어졌고 홍시가 내 얼굴로 날아들었다. "퍽"


내 얼굴은 붉은색 투성이가 되었다. 친구들은 깜짝 놀랐지만 이내, 붉은색 액체가 피가 아닌 감인 것을 눈치챈 순간 배꼽을 잡고 웃었다. "ㅎㅎㅎㅎ"


지금 돌아보면 누가 가장 많이 감을 땄는지, 누가 빨리 감을 땄는지, 또 누가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감을 땄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런 것들은 그냥 감 따기를 즐기기 위한 순간의 놀이였을 뿐이었다.


기억에 남은 것은 우리가 감을 함께 땄다는 사실과  끝없이 푸른 가을 하늘이었다.



그렇게 감나무는 여러 해 우리 가족과 함께 했다. 하지만 골칫거리가 있었다.


달린 감이 저절로 바구니에 얹어지지거나 우리 집 상 위에 올라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감을 따다가 내가 떨어뜨린 감만 해도 여럿이 되었다. 문제는 그 감들이 바닥에 떨어지고 나면, 바닥에 군데군데 감 터진 자국이 생겼고, 끈적거릴뿐더러 잘 지워지지도 않았다.


어머니와 나는 감 자국을 닦아야 했다. 때로는 까치나 까마귀들이 날아와 그 감을 먹기도 했다. 또 나무 위에 달린 싱싱한 감을 먹다가 그 자국이 되기도 했다. 그때는 그 감 자국 청소가 어찌나 싫었던지 차라리 감이 달리지 않았으면 했던 적도 있었다.



삼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감 자국에 대한 기억은 흐려지기는커녕, 더욱 선명해졌다. 하지만 그 자국들을 바라보는 생각은 좀 달라졌다. 나는 이제껏 바닥에 떨어진 그 감들을 안타까워했다.


"먹지 못하게 되어 아쉽네"

"쓸모없게 돼버렸으니"


여러 해 전부터 등장한 아이스 홍시를 처음 맛보았을 때가 기억난다. 세상에.. 이런 일 이. 아이스 홍시는 단연 맛이 최고였다. "감으로 태어났다면 아이스 홍시로 고귀하게 성장하면 좋으련만"이라는 생각


그리고 3년 전에는 청도에 사는 지인의 부모님께서 만드신 감말랭이를 먹고 나는 그만 반하고 말았다.  쫀득쫀득한 식감에 아직 남아있는 부드러운 속살은 나의 미각을 자극했다. "감은 상품성이 있어야 돼"라는 생각


뭔가 상품이 되어야지만, 고귀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떨어진 감들이 언제나 골칫거리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바닥에 떨어진 감들은 어떤 꿈이 있었을까?"


바닥에 떨어져 터져 버린 감들은 어떤 꿈을 담고 있었을까?

감나무가 그린 그림을 하늘이 내려본 모습(저작권 : 저자)

나는 그 감 자국들을 지우느라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사실 그 감들은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하늘에서 내려다본 그 그림은 얼마나 아름다웠을지, 땅에 두 발이 붙어 있던 내 짧은 시야로는 보지 못했다.


지금은 그 집도, 그 감나무도, 함께 웃었던 친구도, 어머니도 곁에 있지 않다. 하지만 그 추억만큼은 내 가슴속에 선명히 남아있다.  굳이 값 비싼 차 안에서, 서너 시간을 앉아서 가을 여행길에 오르지 않더라도 부자가 되었다.


산책을 하며 이렇게 풍성한 추억거리를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시간과 이야기가 있다. 그것만큼은 모두에게 평등하다.

가을을 추억할 게 많다면,
당신은 이미 부자다


주렁주렁 매달린 저 감마다 담고 있는 이야기가 꿈이 기대된다. 오늘 본 감나무에 열린 감도 내 것이 아니고, 마트에서 마주쳤던 홍시도 내 것이 아니지만, 감과 함께 한 추억은 온전히 내 것이었다.


"대감 이 팔이 누구 것이 옵니까?" 라며 문지방을 뚫고 손을 내민 오성. 그리하여 수백 년을 전해져 내려온 오성과 한음의 감나무 이야기처럼.


쓰고 싶은 글을 못쓸 만큼 바쁜 요즘, 문득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한 산책을 하며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가족들과 제철 과일을 함께 먹으며 즐길 수 있는 놀이가 있다면 그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요? 추억 만들기는 멀리 있지 않다는 사실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브런치 동료작가분들, 자주 못 놀러 와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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