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경문 Jan 20. 2021

너 조급해하는 것 같아

우리가 각자 빚을 수 있는 찰흙은 단 한 덩이

"남는 동기밖에 없어"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일을 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거니 받거니 한다. 서로를 협력하고 또 어떤 개념에서는 이용한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런 사회에서 같은 날 같은 회사에 들어와서 동시대를 살아온 '동기' 만큼은 친구 같은 삶의 동반자이다.
난 이런 동기들과의 점심식사가 다.


술을 동반한 저녁식사는 아내가 싫어하기 때문이라는 건 안 비밀. 심지어 아이들도 잔소리를 한다 ㅡ.ㅡ;;

직장생활이 10년을 훌쩍 넘어가고, 마흔 즈음이 되면 저마다 살아온 색깔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회사에서 승진 누락 없이 잘 나가는 동기부터,

오랜 기간 공부를 해서 공인자격을 취득한 동기,
가지고 있는 재능을 활용해서 유튜브로 유명해진 동기,
책을 쓰고 강의를 다니면서 회사 외에 커리어를 쌓는 동기, 운동을 좋아해서 철인 삼종경기를 하는 동기,
재테크를 잘해서 강남에 집을 장만한 동기 등등

난 어느 쪽도 아니었다.
난 성실히 일만 하고, 회사에 목숨 바치는 동기? 정도였다. 사실 그런 동기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동기들과 점심을 먹으면, 이런저런 사는 얘기도 하고 '멋진 동기' 들의 무용담도 하나의 화젯거리가 된다.

"이야 그 친구는 유튜브로 월 수입이 천만 원이래"
"이번에 기술사 시험에 합격했더라, 좋겠다 수당도 받고"

 "아파트 분양권 사서 피가 3억이래"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출발한 100여 명은 10년이 지난 지금 저마다 다른 색깔을 내고 있었다.

우리 창업해볼까? 기술사 공부를 해볼까? 유튜브 해보자. 이런저런 생각이 난무한다. 마치 풍선을 불다가 놓친 것처럼 생각의 풍선은 우리 머리 위에서 이쪽으로 날다가 저쪽으로 날다가 했다.


그리고는 남들이 이렇게 돈을 벌었다, 성공했다는 것을 들여다보느라 여념이 없다. 흉내도 내본다.
이내 나는 아니라며 다시 체념한다. 또 다른 것을 들여다본다. 중간에 포기한다.



넌 뭐 만들 거야?


짝꿍이 내게 물었다

동기들과 대화중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으로 들어와 버렸다.

여기가 어디지? 학교인 거 같아.


"주제는 자유, 지금부터 만들고 싶은 거 만들자"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찰흙을 한 덩이씩 가져와서 만들고 싶은 작품을 만드는 수업이었다. 저마다 만들고 싶은 형태를 만든다.  공룡, 탱크, 강아지, 사람, 집 다양한 작품이 만들어진다. 나를 비롯한 친구들은 뭔가 만들고 있는 친구들의 작품을 구경한다.


 "와 탱크 정말 멋지다! 나도 탱크 만들어야지"


 하지만 곧 다른 친구가 공룡을 멋지게 만들면

"아니야 난 공룡으로 바꿀래" 하며

탱크를 만들던 찰흙을 묵사발을 만든다.


공룡을 만들다 보니 탱크도 만들고 싶고

자동차도 만들고 싶어 졌다.


모두 다 만들었다.

근데 공룡도, 탱크도, 자동차도 모두 크기가 작다.

주목받을 만한 디테일은 시간이 없어서 챙기지 못했다.


 미술시간은 빠르게 흘러만 갔다.

 남들의 작품 구경을 하다가 시간에 쫓겨 뒤늦게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찾지만 크기도 디테일도 졸작이 되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문득 그때와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실감했다.


'아, 나도 좋아하는 것이 있는데..'
'왜 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밀고 나가지 못했을까?'
'어째서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일들에 시간을 쏟았을까?'

우리에게 주어진 찰흙의 양과 미술시간은 정해져 있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찰흙으로 무엇을 빚고 있는가?  

by the way 찰흙,, 아.. 올드하다.

요즘 아이들은 클레이를 쓴다.




조급해하지 말아요.
그냥 느낌 가는 데로 만들면 어때요?


우리가 각자 빚을 수 있는 찰흙은 단 한 덩이
이전 14화 사춘기 딸에게 몰래 남기는 타임캡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