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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문 Apr 22. 2021

남자가 요가하면 생기는 일

몸과 마음수련에 남녀가 따로 있나요?

브로스 요가



'주민센터에 남자 요가 수업이 있던데, 한번 해볼래?'

아내가 제안했다


"무슨 옷을 어떻게 입고 가야 해? 남자 요가 옷이 따로 있나?"

"그냥 편안 옷을 입고가. 왜? 쫄쫄이 사줘? ㅎㅎㅎ"


남자가 요가 같은 걸 해도 되는 건지?

첫 요가 수업에 가는 날 아침은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수줍게 문을 열고 들어간 교실에 아내가 빌려준 요가매트를 주뼛주뼛 깔았다.

편안한 복장을 한 동네 아저씨들의 요가 합방이란.


씩씩한 여자 선생님의 '부장 가사나'와 같은 암구호와 함께 나의 첫 요가 수업은 시작되었다.



넌 요가가 필요해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화가 나는 시절이 있었다.


회사생활 10년이 넘어갈수록 부담은 늘어났고,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일이 줄기는커녕 늘어만 갔다.

회사 생활을 오래 할수록 논리적으로 말하거나 설득할 일이 잦아졌다. 자연스레 나의 말에는 힘이 들어갔다.


시간이 갈수록 고집만 늘고 융통성은 떨어졌다. 내가 무조건 옳다고 생각했다. 옳지 않은 것도 옳은 것처럼 포장하는데 능통해질 무렵이었다.


"힘 좀 빼고 살아"

아내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그랬던 내게 요가로 인해 서서히 변화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유연해진다. 몸뿐만 아니라 생각도


대부분 남자들은 가면을 쓰고 산다.  프로란 말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았다. 돈은 받고 하는 일이란 모름지기 깔끔하게 처리해야 한다. 그것이 직업정신이고 남자의 자존심이다.


사실 남자들은 강한 척을 한다. 아내 앞에서, 후배들 앞에서 결정을 잘 내리는 척을 한다.

거래처나 고객 앞에서는 전문가가 된다. 목에 힘을 주고 있지만 심장은 뛰고 있다. 긴장한다.


늘 입고 다니는 정장이나 비즈니스 캐주얼은 편안함보다는 깔끔함이나 전문적인 모습이 강조된다.

그렇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에 힘이 들어간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마음에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힘이 들어간다. 또 가족들은 부양(support)한다는 무의식도 더 몸과 마음을 굳게 만든다.


선생님 몸이 마음대로 안 움직여요


요가를 하면 제일 먼저 힘을 빼야 한다. 아니 빠지게 되어있다. (안 빼면 부러진다.@.@)

편안한 복장과 마음으로 심호흡을 하다 보면 심장은 편안함을 느낀다.


부장가 아사나, 고양이 자세 등을 통해 몸을 늘어뜨린다. 발가락을 쫙 펴고 발등을 바닥에 붙인다. 몸의 한 부분이 이완되고, 또 다른 부분이 수축되면서 서로 만난다.


그렇게 굳어졌던 아저씨 몸뚱이는 자연스레 차차 되살아난다. 발 끝부터 어깨, 등, 허리, 엉덩이까지 힘을 줬다, 뺐다를 반복한다.


근육이 유연해지니 마음도 누그러진다.

아내에게 늘 고집을 피웠나 보다.  "어, 맞아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생각보다 별일이 아니었다.

"괜찮아 얘들아 실수할 수 있지" 아이들과 후배들에게도 너그러워졌다.


유연함은 다른 운동에도 도움이 되었다. 안되던 접영은 자연스레 자세가 좋아졌고, 골프 스윙에 확실히 도움되었다. (즐기지는 않지만)


나의 몸과 마음에 참기름을 칠한 기분이랄까? 아, 고소하고 부드러운 이 느낌



두 번째, 복잡한 머릿속이 개운해진다.


성공한 사람들의 가장 큰 공통점을 연구한 결과를 책에서 봤다.

그들은 하나같이 "내 삶이 의지대로 된다.(My life is UNDER CONTROL)"라는 인식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긍정적인 믿음일 수도 있지만, 정신적 훈련에 보다 가깝다.


우리의 머릿속에는 순식간에 "천리를 달릴 수 있는 말" 이 있다. 주말에 아이들과 놀 때도 회사 업무 생각이 난다. 회사에서도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며 휴대폰은 보기 일쑤다.


말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타임머신과도 같다.

'그때 그 얘기는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오래전에 말실수한 일부터, '코로나가 끝나면 가족들과 유럽여행을 가겠어!' 미래에 일어나지 않은 일까지..



남자가 처음 요가를 하면 이 자세, 저 자세 제대로 되는 게 없다. 그러다 보니 근육이 당기고 아프고 아픈 것에 자연스레 정신이 쏠린다.


전사 자세('비라바드라 아사나')를 하다 보면 가랑이 사이 근육 부분이 아파온다. 내 몸의 한곳에 집중하게 되면서 자연히 내 몸을 느끼게 된다. '아, 여기도 나의 몸이고 나와 소통한 지 오래되었구나.'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숨을 깊게 들이쉰다. 그리고 내쉰다.

숨쉬기에 집중한다. 코끝을 스치는 공기가 내 폐로 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세상은 정지한다. 따지고 보면 세상이 복잡한 게 아니라 내 머리가 복잡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가 인터넷 기사를 정신없이 뒤지든, 지금 여기서 심호흡을 하며 요가를 하든 그 일들은 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나는 잡생각들에서 나온다.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찢어질 것 같은 나의 사타구니와 내 머릿속의 생각뿐이구나. 






세 번째,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된다.



한 발로 서서 합창하는 나무자세를 취한다. '브륵샤 아사나'.

(자꾸 아사나, 아사나 하는데 "자세"라는 뜻이다.)


한 발로 서면 처음에는 앞을 보고 있다가도 균형을 잡으려고 이리저리 발과 몸이 움직인다.

점점 돌아 뒤를 보게 되기도 한다.
혼자서 힘들게 버티고 의지하지 않으려는 것은 좋지만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문득 두 발로 설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깨닫는다.

건강한 나의 몸에 감사한다. 건강은 모든 것에 앞서는 축복이었다.


한 발로 설 때처럼 방향을 잃지 않고, 쉽게 넘어지지도 않는다.



넘어지려고 하려면 그때마다
나머지 한 발이 영웅처럼 나타나서 날 구해주었다.



생각해보니 배우자가, 또는 가족이 나머지 한 발이었다.

내가 인지하지 못했던 나의 영웅이자 인생의 버팀목이었다.


이 세상에 함께 해준 가족들의 감사함을 느낀다.

가족들에게 긍정의 기운을 선사한다.


한 발로 선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그동안은 알지 못했다.
두 발로 설 수 있음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음에 오늘 하루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 좋은걸 왜 이제 알려줬어!


아직도 첫 요가 클래스를 끝냈을 때의 느낌을 기억한다.
남자도 요가를 한다. 요가는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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