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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량 김창성 Jan 14. 2023

나를 기억해 둔 서랍을 열다

맛은 무엇으로 기억되는가!

기억 속에만 남은 아쉬움


 8살 아이가 묵직한 책가방을 메고 아침 일찍 잠에서 덜 깬 눈을 비비며 등교한다.

유난히 입이 짧은 아이는 병치레가 잦아 결석이 많았다. 봄 볕이 따스한 마루에 앉아 볕을 쬐고 있다.

얼굴도 노랗고 핏기 없는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아마도 그때의 일이었을 거라 생각을 더듬어 본다. 영문도 모르게 한참 동안 쏟은 코피였을 것이다. 보다 못한 엄마가 급히 요강을 갖다 덴다. 그리고 솜으로 막아도 계속 흐르는 피를 어쩔 수 없어 아이의 몸 만한 수건을 대고 울기 시작한다. 안고 뛰기 시작한다. 큰길까지 얼마나 멀었을까! 엄마는 지나가는 차를 향해 울부짖기 시작한다. 그때는 자동차도 많지 않았고 지금처럼 응급차를 부를 수 없던 시절이었다. 세상에는 그래도 수호신처럼 좋은 사람들도 많다. 지나가던 삼륜차 한대가 우리를 보고 세워준다. 병원까지 태워 준 그분이 나에겐  지금 누구보다도 고마운 천사다. 엄마는 아마 천금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는 너무 많은 피를 흘려 힘도 없고 겁에 질려 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입으로 넘어오는 코피를 뱉지 말고 밀어내라는 소리가 들린다. 입에 걸린 핏덩어리를 뱉자 피가 튀고 만다. 의사는 조금 신경질 적인 목소리로 뱉지 말라는 말을 반복했다. 지금 기억에도 피 묻은 하얀 가운이 떠오른다. 코 속에 긴 거즈를 아플 만큼 밀어 넣는다. 아이의 코는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며칠 후 괜찮아진 듯 코피가 잠잠해지더니 아주 많이는 아니지만 또 흐르기 시작했다. 그 의사는 아직 크고 있는 아이라 혈관이 약하고 더 튼튼해져야 좋아진다고 하더니 이상한 장비를 콧속으로 넣어 혈관을 열로 지져야 한단다. 아이는 이 묘한 느낌과 기분이 너무 싫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코에 충격을 받지 않는 이상 심하지는 않았다. 엄마는 코피가 잦은 아들을 위해 온갖 음식을 해 먹였다. 그 후 아이는 몇 년 동안은 고생을 많이 했다. 잦은 코피가 지금의 용어로 트라우마가 되었던 모양이다. 콧물만 흘러도 가슴이 쿵쾅거렸으니 말이다. 지금의 내가 가끔 어린 나를 만난다. 미안해서 자꾸 만나지는가 보다. 누구도 위로해 줄 수 없는 그 아이에게 나 스스로 잘 이겨냈다고 칭찬을 해 준다. 그래야 그 아이도 지금의 나도 힘을 낼 수 있으니...

 맑기만 했던 하늘과 따스한 봄볕을 쬐며... 다시 내게 올, 봄 같은 시간이 시작되길....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무겁던 책가방도 조금은 적응이 되고 가벼워졌다. 힘들지만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고 다시 내리막을 내려가면 학교가 보인다. 가끔 준비물도 빼먹고 선생님에게 꾸중도 듣고 제법 학생이 되어가는 나를 보았다. 학교는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서 간다고 생각했을까? 학교 앞 문방구 앞에 가던 발걸음을 멈춘다.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들의 목소리와 문방구 주인이 조용히 해라는 말소리가 뒤섞여 동네를 깨운다. 문방구 주인이 팬에 무언가를 열심히 볶는 모습이 보인다. 아이는 한참을 바라보다 묻는다. "이거 얼마예요?" 수줍게 들릴 듯 말 듯. 주인은 가격을 말하며 "맛있는데 줄까?"라고 말한다. 정확 지는 않지만 한 5원 정도였나??? 아이는 주머니 속에서 돈을 내민다. 계속 고수 같은 손놀림으로 볶던 것은 알사탕 크기 만한 통감자이다. 지금이야 감자칩 혹은 포테이토칩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그땐 뭐 부르는 이름, 메뉴 따윈 없었지 않았나 싶다. 간식이 흔하지 않은 시절에 엄마가 준 용돈으로 문방구 앞을 서성이다가 큰맘 먹고 사 먹은 나의 첫 간식이다. 특별한 소스는 없었다. 기름에 통째로 튀기다시피 한 감자에 소금만 찍어 먹어도 너무나 맛있는 간식이었다. 토마토케첩, 머스터드소스 그런 건 없었다. 한참 병치레를 하고 몸이 조금 좋아져서 인지 입이 짧은 아이는 비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특별한 맛이 없는 감자가 잘 맞았나 보다. 

 그때 그 맛이 안나! 그때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어! 이런 말 참 많이 한다. 왜 일까라는 생각을 해 보지만 이유를 말로 표현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다. 오래전 느낀 맛은 무엇으로 기억하는가?! 수없이 많은 먹거리와 음식을 먹고살면서 그때의 그 맛을 기억하는 것은 지나간 시간의 서랍 속에 숨겨 두었던 연애편지처럼 현실에는 없고 마음에만 남은 감정의 속삭임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값비싼 레스토랑의 고급 음식보다 화려한 조명을 받은 최고의 요리보다 그때 작은 손에 쥔 용돈으로 첫 거래를 성공한 기분도 그 맛을 함께 사서 먹고 남긴 것이다.

아직 그 맛과 똑같은 감자는 못 먹어 봤지만 감자과자, 감자튀김을 먹을 땐 아이의 기억의 맛과 함께 먹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이런 맛 이런 기억이 한 가지씩 정도는 있을 것이다. 기억의 서랍을 열면 추억의 향기가 난다. 지금 이 글을 적는 순간에도... 이 오래된 서럽 속 향기가 계속 남아 주길 바란다.

 아프면 어때! 나의 소중한 기억인데, 사랑하면 돼! 아픔도 나에게 남는 기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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