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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 Jun 30. 2021

지현씨, 생각해보니까 내가 그 날 좋았나봐요.

왜 행복은 한 템포 지나서야 나에게 잠깐 찾아왔었다는걸 알게 될까?




아직(?) 마약을 안해봐서 모르겠지만

(물론 앞으로도  생각이 없다.

 나의 자제력을 믿을  없기 때문)

이미지출처: 게티이미지코리아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대치의 쾌락이 마약이라던데,

현재, 당장  자리에서 실시간으로 강력하게 느낄  있는 행복은 오히려 가짜 행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느낄 수 있는 마약 다음에의 행복감은

좋아하는 사람과 교재를 성공했을때라고 인터넷에서 주워 들었다.

물론 개개인이 느끼는 행복도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있는 도구가 아직까지는 정확하지 않다보니 

물론 추정에 불과하겠지만


뇌의 도파민을 직접 인공적으로 자극하는 것이 마약이라면, 그것이 아닌 다음에야 

인간이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것,

그러니까 재화가 될 수도 있고

그것이 인간이 될 수도 있는데,

 눈에 보이고   내것으로 구청에 신고하고 나면 사기당하는 일이 없는  영원히 내것으로 안정적이게 지킬  있는부동산을 빼면


언제 어느 부분에서 변할지 모르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야말로 가장

짜릿하고 행복한 순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이를 낳고 보니,

아이와 하는 외출은 소리없는 전쟁이며

생각만 해도 피곤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이

아이와 내 가족구성원이 크게 다치지만 않으면

성공적인 외출이었다고 자부해도 될 만큼

정신적인 평화가  챙겨지지가 않는 반면에,





이제는

아이 없이 하는 외출은

뭔가 허전하기도 하고,

내 눈 앞에 조그맣고 계속 움직이는 에너제틱 꼬마가 보이지 않아 불안감도 증식될때도 있고,

(믿을만한 부양육자가 함께 있는 순간이 

아니고서야)몸은 편하지만 마음은 

아이가 없을때서야 비로소 온전히 챙길 수 있는

아이 관련 온갖 부속품(?)들의 재고여부를 머릿속으로 따지며 배송일자를 계산하며 창고에 차곡차곡 들여넣을 생각을 하기가 일쑤다.




지난 주말에는 쌍둥이 아가 자매들을 보러 다녀왔는데 나와는 그렇게 가깝지도, 그렇다고 많이 어색하지는 않은 애매한 사이였기에 가기 전에는 수도 없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이들을 보러 가는 것이 옳은가 그른가 하는 영양가 없는 고민을 계속했고,

또 역시 같이 있으면서도 대화를 한다기보다

함께 다른 년생들의 아기를 키우며 느낄  있는 고충만을 나누고  느낌이라 

너무도 피곤했단말이지?

이미지출처: https://wonderfulmind.co.kr/co-parenting-new-model-raising-children/



그렇지만

지금, 계속  순간의 공감하고 위로받고 하던

생각이 난다.



눈도 따갑고, 허리도 아프고

내 집도 아니어서 답답하고

분위기를 맞춰야 해서 즐겁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머릿속에서 최대한 끄집어냈던 그 순간들이


계속해서 즐거운 기억으로 조작되고 있음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다.








혹시,

혹시나





이미지출처: http://www.aynuri.co.kr/news/article.html?no=23564

카페인 과다로 내 뇌가 필요 이상의 도파민을 뿜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실 투샷을 내려 마시기는 했는데 지금 2시간 이상이 지났고, 디카페인으로 내려마셔서 지금은

카페인의 역량을 벗어났단 말이지.






시간이 지나고 이성적인 모드로 생각했을때

즐거운 기억이 많다면

객관적으로 이것이 행복이 맞구나 하고

자위해야 함을 인정하기로 했다.



한때,

순간 짜릿하고 미칠  처럼 행복한 감정만이 찐행복으로 인정해줘야   같다는 생각이  때가 있었는데 이제 그런 행복들은 오히려 나를 위험하게 만드는  같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나서야

생각나는 순간이 있다면

그게 내가 정말 느꼈던 행복이 아닐까 싶고,

행복에의 정의를 그렇게

바꿔도 될 것 같기도 하고.





+

'공동육아'를 검색어로 이미지 찾다보니

내가 원하는 분위기를 가진 한국 이미지는 모두 다 보육시설(어린이집, 유치원 등)

에서의 공동육아로만 국한이 되서 살짝 마음이 아쉽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는 공동육아를 시설에서 주로 도맡아한다고 의식하는 현실이

반영된 탓이라  마음이 렇기도 했다.

국가에서 정한 시설, 정한 직업군만이 공동육아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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