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월 집중호우에

묵묵한 삶의 가치

by 청연

물은 유연하다.

水는 유연한 대처와 지혜 그리고 수렴을 의미한다.


물은 자연에서 지면의 바닥과 흙과 돌부리와 흙담의 공간을 따라 흐른다.

목적지를 향해 쉼 없이 그러나 숨 가쁘지 않게 흘러간다.

조용한 전력질주가 본업이다.


때로는 부드럽고 소박한 개울물에서,

깊은 심연을 품은 호수에 위풍당당 대호를 이루기도, 드넓은 평야를 양대 어깨로 두르고 조용히 진중하게 흘러가는 강물이기도,

어디서 다 그렇게 흘러와, 소금기 없던 밍밍하고 비릿하던 것이 그러함의 큰 바다를 이룬다.

물의 대지이다.


무한하게 품은 바다 생태계를 깊이 이룬다.

육지와 육지, 대륙과 대륙을 넘나들고 이어지고 가로막는다. 거대한 지구 생존과 의미로서의 대주주 존재이다.


작은 시냇물에서 대양을 이루는 속에 물은, 의지대로 흘러가고, 길 따라 막아지기도, 휘어지면 물길을 돌려 유연하게 그렇게 자연을 이룬다. 자연과 소통하고, 자연과 합의하며, 자연을 지배하고, 때로는 자연을 거스르며 결국은 자연의 순리대로 대양에로 귀결한다.

숨 막히게 깊고 어두운 심해를 이루며, 지구 생태계의 모태로서 존재와 역할이 대양의 이름만큼 크다.




오늘 새벽, 전국적 호우폭탄에 난리를 겪고 있는 칠월 집중호우 중의 한 날이다.

그 물의 한 단면 생수병에 담긴 유통기한이 흐르고 있을 물이 있다.

생명수의 본성에 그 기한은 인공이 만들어낸 모순을 안는다. 그 본성은 공간의 협소만큼 빛을 잃는다.


잃은 빛 탓일까. 그 안의 물은 예민하다.

고요한 새벽 눈앞에 물의 균열 흔들림.

미동도 않는데, 잔잔하게 느리게 흔들림이 있다. 찻잔을 들었다 놓음에 회오리이다.

노트북을 두드리니 흔들림은 더 크다.


저 물의 한 계보가 지금 어느 곳에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다. 가슴까지 차오르는 물에 재난민을 만들고, 그 괴력에 사람들은 망연자실이다. 며칠째 호우주의보와 경보를 오가며, 쏟아지다 개어지다를 반복하고 있다.


참 이채롭게도 생수병 안에 갇힌 물은 예민하게 떨고 있다. 밖에서 자유롭게 거침없이 흙벽을 휘두르며 흘러야 할 것이 안에 갇혀서 작은 진동에도 흠칫 놀라 떨고 있다.


지금 이곳은 양쪽 창가로 들리는 빗소리가 또닥또닥 정겹다.

멀리서는 괴력을 내는 거침도, 저 안의 물처럼 약한 생존도 있다. 제 다른 여정들은 한 곳을 공략하고 집어삼킬 듯 카리스마를 뿜으며 연일 존재감을 과시한다.




환경에 따라 그 물의 지혜와 유연함과 기세도 한낯 소심한 몸부림이다. 식수로서의 소용만이기도 하다.

그러나 식수로서의 소용은 가치롭다.


그 본성대로 흘러 강물과 바다를 이루는 것도 제 몫이고, 어디에서 흐르다 생수병에 담겨 인간 삶 근접에서 근간의 을 한다.

작열한 태양 아래 무더위 폭염의 물 한 모금은 천군만마이고, 사막에서 오아시스는 생명줄이다.




인간 삶도 그렇다.

어떤 환경에 놓임에 소인배 대인배도, 호인 악인도 된다. 나름의 기질과 역량이 있다 하더라도,

환경에 그 삶의 영향을 받는다.

'제 하기 나름'이라는 속언도 있지만, 타고난 환경에서 겪어내고 이겨내는 것도, 도태되어 양질이 되지 못하게 되는 것도,

그 의지조차 이미 환경의 타고남에 있을 수 있다.

같은 공간에서 자라나도 다른 성향과 삶의 과정을 지난다. 쌍둥이로 한날한시 몇 초 상간으로 태어나도 똑같은 삶을 살지는 않는다.


강물을 지나 대양을 만들어 지구 거대 환경을 지배하는 물이 있고, 그 기질을 펼치지는 못하나 생수병 작은 공간에 담겨 생명의 근간을 이루는 물도 있다.

있는 듯 마는 듯 보이지도 않는 공기가 늘 곁에서 인간의 생명을 좌우하듯, 페트병 작은 공간 안에 제 업을 담았지만 근접에서 생명의 고귀한 몫을 한다.

한 사람의 역사가 빛나는 뒤안길에는 평범한 일상을 받침 하는 무수한 작은 역할들이 있다. 드러나는 양지만큼 묵묵히 세상을 지탱하는 음지가 있다. 음지의 성실하고 고된 삶이 세상의 균형과 진보를 이뤄낸다.

작더라도 하찮아도 세상의 한 몫이고 값진 삶이다.


어느새 창밖은 삶의 터를 삼킬 듯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다.

빗줄기가 자아내는 홍수 더미 넘어 작지만 고요히 제 몫을 하는 물이 있다.

묵묵히 지나듯 그 안의 삶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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