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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혜경 Jan 20. 2022

계족산과 좋은 생각, 엄마의 책장

<작가 구혜경의 일상에세이> #2

대전에 계족산이라는 산이 하나 있다. 내가 십 대 시절을 떠올릴 때 반드시 함께 상기하는 곳이다. 빠뜨릴 수 없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종종 계족산을 탔다. 계족산의 약수는 내 성장에 일조했다. 가끔 그 약수터에서 배드민턴도 치고, 내킬 때는 중턱에 있는 산성까지 오르기도 했다. 초등학교 같은 반 친구와 텃밭에서 새끼 무 서리를 한 적도 있고(죄송합니다...) 친구들과 저수지에서 헤엄을 치고 논 기억도 있다.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나는 90년대 생이다.)


열세 살 때의 일이다. 등굣길에 불현듯 학교에 가기가 싫었다. 이유가 있었는데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학교 가던 걸음을 돌려 계족산으로 향했다. 겨울이었다. 평일, 한적한 동네 뒷산에는 아직 녹지 않은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었다. 나는 넓적한 바위 끝의 눈을 털어내고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그 설경을 한참 바라보았다. 사람은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아 흡사 세상에 나만 남은 기분이었는데, 졸업을 앞둔 초딩(!)의 감성으로는 그게 어떤 걸 의미하는지까지 헤아리긴 어려웠다. 나는 그저 책가방을 열고 노트를 꺼낸 다음 그 순간 느끼는 걸 글로 썼다.


그 시간에 엄마는 학교에서 "어머님, 혜경이가 학교에 안 왔는데요"로 시작하는 연락을 받았다. 엄마에게는 진부할 정도로 보편적인 자식의 비행쯤으로 들렸을 것이다. 아니, 이렇게 올 것이 오다니... 정도였으려나.


아무튼 엄마는 비행을 단행한 십 대 청소년이 갈 만한 곳을 쥐잡듯이 뒤졌다(고 했다). 피시방이니 오락실이니 뭐 그런 곳.


그리고 나는 글을 마무리한 뒤 눈 쌓인 풍경을 또 한참 보다가 차분히 산을 내려와 집으로 돌아갔다.


그 시간에 거기 있으면 안 되는 내 또래 아이들 여럿을 훑고 훑고 훑다 지쳐 귀가한 엄마는 벙찐 얼굴을 했다. 내 기억에 혼났던 것 같지는 않다. 엄마의 대처는 꽤 쿨했는데, 내가 산에서 쓴 글을 보고는 잡지 '좋은 생각'에 그 글을 응모했다. 이 다음이 하이라이트다. 그 글은 그 해 '좋은 생각' 겨울호에 실렸다. 나는 내 글이 실린 해당 호와 시계판에 '좋은 생각' 글씨가 각인된 가죽 손목시계를 받았다. 엄마는 그 '좋은 생각'을 한동안 책장에 잘 보이게 꽂아두었다.


이 일화를 아는 주변 사람은 몇 안 되고, 들으면 약간 골 때린다는 듯 웃는데 나는 그런 반응을 좋아한다. 내가 생각해도 그때의 나는 어딘가 좀 이상한 애 같다. 내게는 이 비슷한 일화가 중학교를 다니던 때,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에도 하나씩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일화들을 떠올릴 때마다 기억 어디서도 엄마의 화난 얼굴을 찾을 수가 없다. 내가 드라마에서 그리는 형태의 비행 청소년이 아니었듯 엄마도 그 비행에 드라마처럼 대처하는 부모는 아니었다. 그때의 나는 엄마에게 항상 서운했던 것 같다.


지금의 나는 글을 써서 먹고살고 있다. 엄마는 어릴 적 내게 풍족하게 살기를 바란다면 글을 쓰는 건 좋은 꿈이 아니라고 했다. 그 말에는 서운하지 않았다. 엄마라면 응당 할 수 있는 말이겠거니 했다.


나는 다만 이 글을 쓰며 '좋은 생각'을 책장에 꽂던 엄마를 생각한다. 엄마의 책장에 꽂혀 있는 무수히 많은 내 일기장들을 떠올린다. 초등학교 일학년 때부터 육학년 때까지 빠지지 않고 썼던 일기장들. 책등이 다 까져 하얗게 드러난 일기장의 뼈를.


그럼 내가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글을 쓰는 이유를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구혜경, 202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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