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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혜경 Jan 27. 2022

여기, 아홉 장의 색깔과 무늬의 순간

<작가 구혜경의 일상에세이> #3

지난주 금요일, 토요일. 대전에 다녀왔다. 나는 기억할 만한 순간들을 사진으로 찍는 습관이 있는데, 지난 주말에는 매 순간을 초조한 마음으로 쫓기 바빴다. 새로운 게 많았다.


그러다 문득 어떤 기억들은 강렬한 색깔이나 패턴, 결, 무늬로 남기도 한다는 사실이 떠올랐고, 그런 파편들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졌다.


이 혼자만의 작업(이라기에는 그저 소박한 기행)은 의외로 무척 즐거웠다. 나는 사진을 잘 못 찍는 편인데, 이렇게 찍으니 이 똥손도 좀 커버되는 것 같고. 순간을 바라보는 거리를 살짝 다르게 조정한 것만으로 그걸 바라보는 내 시선까지 달라지는 걸 느꼈는데 이 느낌이 순간들을 내 안에 좀 더 오래, 더 단단히 잡아두겠구나, 그런 예감이 스쳤다. 한편으론 내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이 사진들을 다시 봤을 때 이걸 알아볼까, 아니면 대체 이따위 사진은 왜 찍었느냐고 생각하진 않을까, 하는 나 자신을 향한 불신도 불쑥 치밀었다. 지금은 이마저도 순간들에 기억할 만한 색깔을 한 겹 더 입히는 작업이었다고, 그렇게 생각한다.


이게 어디였지. 왜 하필 이 부분을 찍었지. 이거 찍을 때 무슨 생각을 했었더라.


내가 드라이브에 저장된 예전 사진들을 볼 때 곧잘 하는 생각들이다. 다행히도, 혹은 불행히도 나는 사고하는 방식이 이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아서 조금만 생각하면 금세 답이 떠오르곤 한다. 여기 이 아홉 장의 사진, 그러니까 아홉 장의 순간들은 아직 내게 너무 선명해서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해 지금은 곧장 답을 할 수 있지만, 시간이 훨씬 더 많이 지나면 글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그건 사진이 가진 매력이다.


나는 여전히 길을 가다 뜬금없이 멈춰 서서 사진을 찍는다. 아무렇게나 찍은, 형편없는 사진들. 일상을 닮은, 일상을 담은 사진들. 갤러리를 훑으면 단박에 눈에 띄는 색깔이나 패턴, 결, 무늬 같은 게 없어서 어제의 사진이 오늘 같고 오늘의 사진이 어제 같을 때가 있는데 어떨 땐 그 단조로움이 참 좋다.



ⓒ구혜경, 2022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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