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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혜경 Feb 12. 2022

택배 배송완료, 기시감도 배송 완료

<작가 구혜경의 일상에세이> #4

가끔 새벽에 깨어있을 때 현관문 앞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부스럭, 부스럭 소리. 툭. 뭔가를 조심스럽게 내려놓는 소리. 숨죽이고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


그럼 나는 택배인가보다, 하는데 실제로 1분 정도 지나면 택배 배송 완료 문자가 온다. 이 인기척과 문자는 때를 크게 가리지 않는다. 자주 기억나는 시간대만 해도 새벽 한 시, 다섯 시. 이르다고 하기도, 늦다 하기도 이상한 시간.


이 시간에도 일하시네, 예사롭게 넘겨오다가 어느 순간 기시감을 느꼈다. 내가 택배 문자에서 기시감을 느낄 게 뭐 있나 하다가 불현듯 새벽 고속도로 풍경을 떠올렸다.


나는 새벽에 뭔가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린 경험이 꽤 있는데, 어느 시간대든 도로가 한산하다 느낀 적이 별로 없었다. 고속도로에는 어느 시간대에 가도 일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화물트럭들, 채소를 잔뜩 실은 트럭들, 신선식품을 배달하는 소위 '탑차'들, 기름을 수송하는 유조차들, 이른 시간대에 운영하는 고속버스들.


그때의 나는 무례하게도 그 트럭들 사이에서 묘한 위안을 느꼈다.


이 시간에도 깨어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세상이 멀쩡히 돌아가는구나. 이르게 깨어 어딘가로 부산히 간다는 게 크게 남다른 일은 아니구나.


그때는 퍽 감상적인 생각을 하네, 했는데 돌이켜보니 지쳐있었던 모양이다.


아직도 새벽, 고속도로, 트럭들, 온통 어두운 사위에서 점점이 멀어지고 흐려지고 가까워지던 붉은 빛들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지금 나는 침대에 누워있고, 주변은 무척 고요하다. 그래서 이 기시감은 꽤 반갑다. 기묘하게도 그 고속도로의 풍경을 힐끔힐끔 훔쳐보는 기분도 든다. 마시멜로를 아껴먹는 어린아이처럼.


ⓒ구혜경, 2022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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