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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May 22. 2024

나도 '내 거실'을 갖고 싶어.

생각지도 못한 거실의 용도.

최근 들어 별다른 일이 없었는데도 자취 욕구가 샘솟고 있다. 부모님과 사이가 멀어진 것도 아니고, 집에 무슨 일이 생긴 것도 아닌데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 계속 생각해 본다. 자취를 한다면 침대는 이렇게 놔야지, 옷은 정리해서 옷장은 최대한 작게 만들 거고 책상은 이렇게 꾸밀 거야 하는 생각들. 다른 사람들이 자취하면 좋다고 귀에 못이 박힐 듯 이야기해도 눈 깜빡 안 하던 내가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다니, 드디어 떠날 때가 온 것인가!


사실 아무 일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최근 만난 지인이 결혼을 하며 부모님 집에서 독립을 했는데, 가구를 마련할 때 본인 친구가 이런 충고를 해줬단다. 바로 '쇼파를 사는데 공을 들이라'는 것. 그 이유는 거실에 나와있을 일들이, 시간이 이전보다 훨씬 많아지기 때문에 쇼파가 정말 중요해진다는 이야기였다. 얘기를 전해 들은 내 반응처럼 내 지인도 처음엔 '쇼파? 쇼파가 그렇게 중요한가?' 했지만 나와보니 깨닫게 됐단다. 부모님 집에 있을 때는 본인 방에 박혀있기 일쑤였는데 '내 집 거실'이라는 게 생기니까 얘기도 하고 누워있기도 하고 온갖 일들을 다 거실에서 하게 됐다고. 이 언니도 나처럼 부모님과 사이가 안 좋거나 불편한 사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부모님 집과 내 집은 천지 차이야!"라는 말을 우렁차게 했다. 그러니까 이게 시발점이었던 걸까.


예전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나도 엄마, 아빠가 외출을 해야 그제서 거실로 슬금슬금 나와 내가 하고 싶은 걸 즐기곤 했다. 티비도 보고 넷플릭스도 보고 과자도 까득까득 씹어먹다가 엄마가 올 때쯤이면 바닥을 청소하고 리모콘을 정리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길 반복했다. 누가 보면 부모님을 마주치면 안 되는 사람인가? 싶겠지만 모르겠다. 정말 부모님이 집에 있으면, 부모님과 같이 있으면 내가 편하게 행동할 수 없는 걸까? 그렇다기엔 난 엄마아빠 앞에서 코도 잘 파고 방귀도 잘 뀌고.. 엣헴. 하여튼 불편하다면 이런 행동을 할 수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왜 나는, 우리는 거실로 쉬이 나가질 못하는가.


더욱 희한한 건 내가 침대에 누워 몽상했던 꿈속의 '내 집'에서 거실이 가장 컸다는 것이다. 내가 꿈꾸는 집은 투룸과 거실, 부엌, 그리고 널찍한 마당이 있는 발코니가 딸린 집인데 어차피 침실은 잠만 자는 공간이니 아늑했으면 좋겠고 서재로 사용할 방은 너무 넓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거실은 컸으면 했다. 그래야 편히 앉을 1인용 쇼파도 놓고 티비도 놓고 내가 집어 읽을 수 있는 최애 책들이 가득한 책장도 놓고 아침과 저녁의 무드를 확확 바꿔줄 턴테이블도 놓을 수 있지. 편안함과 여가를 책임지는 것들은 다 거실에 배치할 모양새다. 거실이야말로 내 모든 것을 드러내고 그 안에서 편안함을 향유하는 공간이었구나. 가장 개인적인 공간은 숨기고 싶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가장 공개된 구조인 거실에 그 역할을 바라고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과거 유명 연예인의 딸이 '내 방 거실'이라는 말을 사용해서 대중들이 '방에 어떻게 거실이 있을 수 있느냐' 설왕설래가 오고 갔는데, 한남동이든 강남구든 비싸기로 유명한 집들에는 층마다 거실이 있다고 하지. 예전엔 그냥 집이 엄청 넓구나 하며 부러워했는데 이제는 왜 층마다 거실이 따로 존재해야 하는지를 좀 알 것 같은 기분이다. 내가 깨닫기 훨씬 전부터 사람들은 거실의 가치를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신경을 썼는지도 모르지. 갑자기 부러움이 배가 되네요. 내 방 거실이 됐든, 내 집 거실이 됐든 뭐 하나라도 걸려라 싶은 심정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독립된 거실에 누워 배를 긁으며 편히 누워있는 게 지금은 가장 큰 소원이라네요. 현실의 나야, 열심히 살자... 그래야겠다...


*시리즈 '나도 캥거루족이긴 싫은데'가 브런치 시리즈 연재 수를 가득 채워 오늘은 단편으로 나가게 되었어요!

추후 발행되는 관련 연재물은 하나로 묶어 시리즈 2탄으로 선보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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