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건 식단보다 음식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냐다.
새로운 대상에 관심을 갖게 되면 안 해본 일도 시도하고 싶어지는 법. 채식을 시작한 후로 꼭 해보고 싶은 게 있었으니 바로 쿠킹 클래스를 듣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가볍게 내가 좋아하는 디저트를 만들어보는 비건 베이킹 클래스에 참여했다. 제과제빵 클래스 수강 경험이 있는 나에게 베이킹 방법은 특이할 게 없었지만, 유제품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 거라 예상했던 케이크나 스콘을 비정제당, 아몬드 가루, 두유 등의 재료를 사용해 맛깔나게 구워내는 걸 보니 비건엔 역시 성역 따위 없구나 하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끝나면 아쉽잖아요? 더 할 수 있는 게 뭘까를 찾다 발견한 여기. 바로 사찰음식 클래스 되시겠습니다.
혹시 하는 노파심에 말하자면 나는 무교로, 불교를 근간으로 한 대학에 다니며 필수 교양으로 불교 수업을 듣긴 했지만 그 이상의 관심은 없다. 다만 다른 종교보다는 불교의 사상이 좀 더 친숙하고, 관광지에 가면 절에 들러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즐기기도 한다. 근데 뭐, 무교인 일반인에게 이 정도의 관심은 자그마한 흥미 수준 아닐까. 내가 사찰음식에 대해 알고 있는 내용도 불교에서 살생을 금지하기에 스님들도 철저히 육식을 금한다 정도였으니. 찾아보니 종로에 위치한 사찰음식 교육관에서 상당히 체계적으로 쿠킹 클래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기에, 그중 더 궁금한 메뉴를 선택해 예약했다지요.
당일 교육장에 가보니 4050대 여성분들이 주로 클래스를 들으러 오셨다. 내가 고른 메뉴는 가지 초밥과 오이 초밥, 고사리 애호박 매운탕 그리고 두부 버섯 강정. 오이 초밥이나 두부 버섯 강정은 집에서도 자주 해 먹던 메뉴였지만 고사리 애호박 매운탕이라는 메뉴가 너무 궁금했다. 수업은 스님께서 메뉴를 한 개씩 시연하시고 조를 이룬 구성원끼리 시도해 보고 다음 메뉴로 넘어가 동일한 과정을 반복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나를 포함한 4명의 조원이 만들어낸 매운탕과 초밥, 두부 버섯 강정은 완성도 있는 때깔을 내긴 했지만 그전에 워낙 자극적인 음식을 먹어서였나 간장, 고춧가루 등 기본양념만으로 간을 한 음식은 원체 심심하게 먹는 내게도 꽤 싱겁게 느껴졌다.
오히려 내가 관심이 끌렸던 건 맛이 아닌 '음식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마음가짐이었다. 수업 전 스님들이 식사 전 읊는다는 오관게를 따라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음식은 어디에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는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을 버리고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깨달음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처음 오관게를 따라 읽었을 땐 세상과는 영 동떨어져있다고, 이건 지극히 수양하는 이들의 마음이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곱씹어보면 곱씹어볼수록 비단 수양하는 사람들만 가질 마음은 아니었다. 뻣뻣한 고사리 대를 꺾어가며 먹을 수 없는 부분에 아쉬움을 가지고, 소스나 자극적인 재료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오이와 가지에서 나온 물기로 밥을 뭉쳐 초밥을 만드는 모든 과정에서 이 음식들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손으로 감각하고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또 남은 음식을 버리거나 억지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소중한 음식이라 여기고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지를 연구한다는 스님의 말을 통해 나는 내게 주어진 음식을 관성처럼 받아들였을 뿐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특히 직접 일군 재료를 손질해서 조리하는 것이 아닌, 공장형 목장에서 도축된 고기를 레스토랑에서 조리해 결과물만 받아먹게 되는 현대인들에게 이런 시간은 '먹는 행위'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 쿠킹 클래스는 의도한 대로 '역시 채식이 맛있어' 혹은 '채식만으로도 충분하니 고기는 필요 없어'라는 생각을 갖게 하지 않았다. 하지만 더 큰 관점에서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는 왜 우리에게 중요한가'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만들었다. 앞선 글에서 수없이 말한 '우리는 우리가 먹는 음식으로 대표된다'는 명제는 아직 내게 유효하지만 이젠 거기에 하나의 표현이 더 붙을 것 같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무엇을 먹는지로 대표된다'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