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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Dec 13. 2023

12월 13일 모닝페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희망 걸어보기.

기상 시간 8시 2분. 몸이 찌뿌둥하고 찝찝하다.


어제부터 시작된 무기력이 온몸을 휘감는다. 나름대로 해야 할 것들을 잘 해내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해야 할 일들이 끝난 뒤 남는 시간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에서 오는 죄책감과 방만함이 뒤엉켜 어깨를 뻣뻣하게 굳게 만든다. 지금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게 맞나. 어쨌든 하루하루 성실히 해야 할 것들을 하고 있으니 나머지는 시간이 쌓여 해결해 주겠지라는, 오히려 게으름에 가까운 생각이 나의 성장을 더디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이마저도 도파민 중독으로 인해 더욱 급해진 성격 탓인가.


유튜브를 한창 돌아보다 그것도 지겨워 화면을 꺼버렸다. 사실은 지겹기보단 숨이 막히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건 해야 하고 저건 하면 안 되고, 이 시기는 이렇게 보내야 하고 이런 걸 하면 인생 망하는 지름길이고, 또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며 그런 얘기 들을 필요 없고 결국엔 자신의 뜻에 따라 살라고 하고. '하라는 것'과 '하지 말라는 것'들은 왜 그렇게나 많은지, 경험상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을 정리해 들려주는 것이겠지만 그들 역시 본인의 인생조차 다 살아보지 않고서 하는 말들을 나는 넙죽넙죽 진리인 양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게 쌓이면 '아니 뭐 어쩌라고?'라는 마인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나도 내 인생을 모르겠는데, 생판 본 적도 없는 남이 나를 어떻게 알고 도와준단 말인가. '자기 구원은 셀프'라는 문구가 떠오르는 때다.


유튜브를 전전하는 건 여러모로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서 최근에 산 책 중 한 권을 빼어 들고 읽기 시작했다. 실존주의 심리학자의 대표적 인물로 꼽히는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이다. 심리학을 공부할 당시 나치군에 의해 주변 가족들이 다 죽음을 당했음에도 삶의 의미를 계속 상기시키며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빅터 프랭클의 삶을 듣고 충격과 감동을 받았는데, 실제로 그가 수용소에서 겪은 일들과 실존주의 심리학을 창시하게 된 이론적 배경을 설명해 주는 책이라 궁금해서 구매해 봤다. 최인아 책방의 최인아 대표는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으로 이 책을 꼽으며 '정말 힘들 때 그 시절의 그만큼 힘든가?를 되묻는다'라고 했는데, 그러기엔 너무 극단적인 설정(!)인 것 같으면서도 요즘 하마스 분쟁 보면 이런 처지 또한 그리 비현실적이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아직 모든 부분을 다 읽진 못했지만 프랭클은 본인을 제일 힘들게 했던 것으로 물리적 폭력보다 본인의 존재 가치를 무너뜨리는 말들과 전쟁이 끝나리라는 희망이 자꾸만 무너지는 현실을 꼽는다. 발길에 걷어차이고 총의 개머리판으로 얻어맞는 것보다 마치 본인이 인간도 아닌 것처럼, 그 어떤 존재 가치도 없는 것처럼 침을 뱉는 나치군을 보며 더 큰 절망을 느꼈다는 그의 말은 겪어보지 않았음에도 무력감을 실감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모든 것이 벗겨지고 없어져버린 자신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지속적으로 상기시키며 처절한 삶을 지탱해 나간다. 나 또한 최인아 대표처럼 생각을 해본다. 나는 정말 그만큼 힘든가? 아니다. 단지 그에 비해 내가 하는 것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미래의 모습이 너무 다양하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것뿐이다.


오늘 아침에 알람 소리에 정신이 깼을 때, 솔직히 더 누워있고 싶었다. 하지만 '무얼 하더라도 일단 일어나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싹 퍼져서 정신을 퍼뜩 차리고 일어났다. 혼란스러운 건 아마 잠깐일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을 이어가는 건 내 의지이고 결국에 남는 건 노력한 결과물일 테다. 그러니까 일어나야지, 뭐라도 해야지, 미래에 희망을 걸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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