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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Dec 19. 2023

12월 19일 모닝페이지. 행복의 상자를 열어보았다.

2023년 연말정산, 이렇게 해보심이 어떨지.

기상 시간 8시. 추위에 저절로 굼떠지는 몸이지만 일으켜야 해.


이제 끽해야 2024년도 2주가 안 남은 시점, 다들 연말정산을 어떻게 하고 계신지요. 여기에서 연말정산은 국세청에 신고해야 하는 신용카드 지불 내역 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2023년의 '삶'을 어떻게 정리할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맘때쯤이면 SNS에도 '2023년 정리 키워드' 혹은 '2023년 연말 질문'등이 올라오는데, '올해의 영화', '올해의 기쁨' 등을 정리하며 한해의 작은 일면을 반추할 수 있게 하는 요긴한 도구라 참 마음에 든다.


나 역시 위의 질문에 답하는 것도 좋아하나 개인적으로 하는 연말정산 방법이 따로 있다. 아래 키워드로 2023년의 순간들을 정리해 보는 것. 

1. 도전한 것

2. 이룬 것

3. 아쉬운 것

4. 개선할 점

5. 해피 모먼트 


들어가는 내용은 목에 힘을 줄 만큼 거창한 것이 아니다. 일례로 2023년 도전한 것에 이름을 올린 것은 '그래놀라 만들기', 이룬 것에는 '인간은 항상 변하고, 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모두를 이해하게 된 것'이 있다. 아주 마음에 드는 성과다. 이것 외에도 내 연말정산에는 특이한 점이 있는데, 해피 모먼트라는 항목이다. 해피 모먼트는 트위터에서 발견한 'Happy Jar(행복의 상자로 의역해보겠다)'를 이용한 것이다. 매해 행복한 순간이 있을 때 그것을 메모해 유리병 같은 곳에 보관해 두고 연말이 되었을 때 열어보는 것으로, 나의 행복의 상자에 들어간 메모들을 적어둔 것이 바로 해피 모먼트다.


아마존에서는 이런 happy jar를 따로 팔기도 한다!


이걸 삶에 처음 도입했을 때는 작년이었다. 당시 연말 정산을 하며 꺼내본 해피 모먼트는 다음과 같았다.

제주도에서 운전을 처음 해봤다. 황야와 오름을 지나며 달리고 있으니 해방감이 엄청났다. 이렇게 나의 로망을 또 실현했다!

재택근무로 일하고 심리학 강의 듣고 스트레칭도 하고 6시 이후 단식도 하고 해야 하는 모든 걸 해치우고 경쾌하게 맞이하는 소중한 밤의 기쁨.

날이 너-무 좋아서 한 시간 빠르게 걷고 와서 마시는 차가운 페퍼민트 티. (내 기분은 내가 보호해!)

조카의 귓가에 사랑한다고 속삭이니 눈 맞추고 웃어줬다. 사랑해 정말 많이.


올해의 해피 모먼트는 다음과 같았다.

안성팜랜드에 같이 간 조카가 육성으로 한 말 “이모 사랑해” ps. “흥!”하고 코 풀라 했더니 힘주느라 방귀까지 뿡한 울 조카.

운동을 통해 내 모든 노력과 시간은 결국 어떻게든 남는다는 걸 깨달은 날. 이 기억으로 앞으로의 막연함을 좀 더 견딜 수 있을 듯해 행복한 날.

내가 행복해질 수 있도록 하는 것들. 좋은 날씨. 해는 강하고 하늘은 맑고 바람은 서늘한 가을. 재즈 음악. 조용한 분위기. 그걸 즐길 수 있는 내 마음 가짐, 마음의 여유. 여기에 따뜻한 커피나 핫초코 같은 거 곁들이면 최고지 뭐. 제일 행복하지.


나는 행복의 상자를 만들기 전까지 스스로 성취, 도전 등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2년 내리 해피 모먼트의 대부분을 차지한 건 가족과의 시간, 좋은 날씨와 여유로운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순간, 꾸준히 노력해서 하루를 잘 살아내고 그를 통해 쌓인 결과를 봤을 때 느낀 행복이었다. 이걸 보며 내가 어떤 점에 행복을 더 자주, 많이 느끼는지 알 수 있었고 좀 더 선택에 소신이 생겼다. 지금 당장은 저게 매력있어 보이지만 결국 내가 좋아할 것은, 오랜 기억으로 가져갈 것은 이거야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다가오는 2024년에도 어떤 순간들이 행복의 상자를 채워줄지 궁금하다. 아마 비슷한 결의 순간들이 공간을 메우겠지만 기대한 적 없는 새로운 것 역시 들어오겠지. 복닥복닥 살아가는 하루 속에서 마주한 행복의 찰나를 잘 움켜쥐고 소중히 보관해 둬야지. 내년 이맘때의 나는 그걸 보며 '아, 이때 진짜 좋았지'하며 웃고 있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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