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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Dec 20. 2023

12월 20일 모닝페이지. 더 이상의 덕질은 노모어..

왠지 이제 진짜 이모팬이라고 해야 할 것 같잖아.

기상 시간 10시. 오랜만에 대형 지각!!!!!


브런치에서 언급한 적 있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덕후였다. 아니, 덕후다. 누구를 혹은 무엇을 덕질했냐? 고 물으면 묻는 시점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겠다. 인물로 이야기하면 순서대로 권상우, 빅뱅, 인피니트, 엑소, 티모시 샬라메. 작품으로 이야기하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일부' 에세이, 양귀자의 소설, 홍광호의 뮤지컬, 영화 캐롤, 티모시 샬라메의 영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구병모의 소설, 영화 스타이즈본, 서머싯 몸의 소설, 헤르만 헤세의 소설. 음악은 재즈를 주로 덕질하는데 빌 에반스와 그레고리 포터의 LP를 모은다. 나열해 보니 꽤 많구먼.


덕질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처음에 어떤 인물 혹은 작품을 우연히 만난다. 이 대상이 마음에 든다. 그 대상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다 뒤지기 시작한다. 배우라면 그전에 출연한 작품들을 다 보고, 아이돌이라면 무대 영상과 팬싸 후기, 입출국 사진, 인터뷰 등을 다 본다. 작가나 음악가의 경우도 배우와 비슷하다. 한 작품이 마음에 들면 그전 혹은 이후 작품들을 죄다 사서 몇 주 혹은 몇 달간 그 사람의 작품만 계속 본다. 나중엔 레퍼토리가 읽혀서 싫증이 날 때까지 말이다. 


주변 지인들과는 이런 성향을 '덕후 유전자'라고 부른다. 이 덕후 유전자는 신기하게도 있는 사람만 있는데 이 말인즉슨, 덕후 유전자가 없는 일반인들은 특정 대상을 이만큼 '들고 파지' 않는다는 얘기다. 사람에 대한 이해가 얕고 좁았을 때는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좋아하고 사랑하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에 놀라기도 했지만 이젠 안다. 이건 덕후 유전자를 가진 사람의 특혜이자 페인 포인트라는 것을... 순수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열정적으로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좋지만 그 사랑이 나를 파멸로 이끌고 갈 수도 있다. 일례로 나는 영화 '콜미 바이 유어 네임'에 지독하게 빠져있을 때가 있었는데(이게 티모시를 덕질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주인공 아미 해머의 성추문으로 콜바넴 시퀄이 무산된 이후 그를 보면 욕쟁이 할머니처럼 저주를 퍼붓는 병에 걸리게 되었다.


최근에는 근 12년간 사랑해 온 최애의 덕질이 다소 시들해졌었다. 덕질의 치명적인 단점 중 하나는 덕질 대상이 없으면 삶이 별로 재미가 없어지는 것인데, 그렇다고 일부러 입덕하려 기를 써봤자 결국 '덕통사고'에 이르기 전엔 별 소용이 없다. 그러던 차에 내 눈에 잡힌 누군가. 바로 (구) 윤상 아드님이자 (현) 아이돌 라이즈의 멤버 엔톤으로 활동하고 있는 찬영군이 그 주인공 되시겠다. 아이돌 덕질 경력이 있는 만큼 신인 아이돌이 나오면 혹시나 하고 들여다보긴 했지만 누구도 이만큼 마음을 끈 적이 없었다. 어쩌면 직전 최애 역시 SM 소속이었기에 이 귀신같은 사람들이 또 내 취향을 데려다 놓았을 수 있겠지만.. 지독한 사람들. 사랑한다는 얘기예요.


뜻하지 않게 마주한 최애의 과거.. 너무 풋풋하고 귀엽구나.
어떻게 이렇게 잘 클 수가 있는 거죠....


사실 요즘 아이돌을 보는 내 마음은 마치 학부모가 자식을 보는 그것과도 같다. 예전에 어떤 음악 관련 종사자에게 뉴진스 멤버 이쁘지 않냐고 물었더니, "나는 그냥 이 친구가 내 딸이었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요즘 친구들은 어쩜 그리 팔다리도 길쭉길쭉하고 머리는 콩알만 하고 근데 또 머리숱은 그렇게 많은지. 그 작은 얼굴에 이목구비가 다 박혀있다는 게 놀라운데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는 건 차치하고 한 세대 건너 태어난 아이들이 다 그렇다는 게 그저 생물학적 진화인가 신기할 따름이다. 찬영군 역시 (왜 자꾸 '군'이라는, 연식 넘쳐 보이는 호칭을 쓰는지 모르겠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요..) 조막만한 얼굴에 키는 엄청 크고 말투는 어쩜 그리 상냥하고 귀여운지... 아냐 정신 차리자. 


제일 띠용스러웠던 건 아무래도 그의 나이였겠지. 이제껏 덕질해 온 사람들은 다 나보다 나이가 많았거나 최소 동갑이기라도 했는데(티미는 조금 어리지만 미국은 나이 관계없이 친구 먹는 나라니까 그러려니 하자) 찬영군은 무려 띠동갑이다. 훙냥냥거리는 그의 말투를 보고 '어리겠군' 생각했는데 정말 어렸다, 아니 내가 나이가 많은 것일 수도. 어쨌든 그를 볼 때마다 왠지 모를 배덕감에 애써 시선을 돌리게 된다. 순수한 마음으로 좋아하는 것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 싶지만 그게 또 마음 같지 않은지라. 그래도 찬영이는 너무 귀엽다. 귀엽다는 말이 나오면 끝이라고 했는데.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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