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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Feb 08. 2024

내 소원은 오로지 건치미소, 건치미소 하나요

나도 저렇게 활짝 웃고 싶다.

'만약에'라는 게임이 있다. 일어나지 않을 상황을 가정해 어떻게 행동할 건지를 선택하는 건데, 누군가 '만약에 너가'라는 말로 서두를 띄우면 그때부턴 온갖 신나는 상상이 펼쳐진다. 만약에 네가 로또 1등이 되면 뭐부터 살래? 만약에 네가 일을 하던 중에 사무실로 좀비가 뛰어 들어오면 어떻게 할래? 여기에서 저도 한번 여쭤보도록 하지요. 만약에 당신의 육체 중 한 부분을 다시 태어날 수 있게 해 준다면 어떤 부분을 선택하시겠어요?


주 5일 동안 사무실 의자와 집 소파에서 구겨져있던 척추, 어떤 화장품을 발라도 다 뱉어내는 여드름 피부, 다리 한쪽을 꼬고 있던 습관 때문에 필라테스로도 교정이 힘든 골반 등.. 생활에서 불편함을 느꼈던 부분이건 미용의 목적으로건 다들 꼽는 게 하나쯤은 있으실 테지만... 내게 물어본다면 내 대답은 무조건 1순위도 치아요, 2순위도 치아요, 신체의 모든 부위를 다 뜯어봐도 치아라고 말할 것이다.


옛 어르신들 말씀에 치아는 타고나는 오복 중 하나라 하였거늘, 그 오복을 나는 아슬하게 비껴갔나 보다. 내 치아로 말할 것 같으면... 일단 매우 잘 썩는다. 오죽하면 어렸을 때 초콜릿을 먹고 있으면 이빨이 썩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콜릿, 누가 크래커, 새콤달콤, 오징어 땅콩 등 치아에 안 좋은 군것질에 충실한 결과 내 치아는 멀쩡한 곳이 별로 없고 때워지거나 씌워진 몰골이다. 둘째로 잇몸이 약하다. 스케일링 한 번 하면 여기저기서 화산 터지듯 출혈이 생겨 침을 뱉을 때마다 피가 줄줄 나온다. 셋째로, 잘 깨진다. 최근에는 혀로 이를 훑다가 쎄한 느낌이 발끝부터 싹 퍼져오길래 치과로 달려갔더니 어금니가 다 깨져있단다. 분명 뭘 먹다가 그런 것 같은데 원래 몇 톤도 지탱한다는 게 사람 치아 아니었나요.. 마지막으로 변색이 잘된다. 커피는 안 마셔도 초콜릿과 홍차를 즐겼던 사람이라 그런가 치아가 비단 염색하듯 색을 아주 잘 머금었다. 미용의 이유로 미백을 하려 해도 앞선 여러 가지 이유로 치아가 더 상할까 봐 할 수 없었고 상당히 꾸질해진 치아로 살아가는 중이다. 삐쭉빼쭉한 아랫니는 덤. 이 역시 교정을 알아봤는데 치아 몇 개를 빼고 구조를 재배치해야 한다길래 있는 치아마저 약해질까 봐 포기.


써놓고 보니 '치아 얘도 그럴 만도 했네...'라는 양심의 가책이 삐쭉 고개를 들지만 그래도 나는 억울한 면이 없지 않다. 아니, 다른 사람들은 오징어도 맨날 씹고 탕후루도 먹고 그런다는데 저는 안 먹었다고요. 20년 이상 다닌 치과 선생님의 말로는 "원래 타고나길 약한 치아로 태어나서 어쩔 수 없다"하는데,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말이 있다면 이걸 거다. 원래 타고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할 수 있는 건 이걸 받아들이고 치아 관리에 신경 쓰는 것 밖에 없다니. 유일하게 즐기고 스트레스를 푸는 거라곤 먹는 일뿐인데 이것마저 힘들게 하다니. 분통하고 원통하고 속이 쓰리다.


만일 다시 태어난다면 정말이지 세상에서 가장 강한 치아를 갖고 태어나고 싶다. 양치질을 사포로 해도 잇몸이나 치아가 상할 염려가 없었으면 좋겠고, 모 연예인처럼 어디에서나 입이 찢어져라 건치미소를 발사하고 싶고, 오다리를 껌처럼 씹고 다니고 싶다. 하지만 '만약에'는 어디까지나 게임에서나 구체화될 뿐 결국 살아가야 하는 것은 현실이라. 오늘도 5세용 칫솔로 살살 양치질을 하고, 간식은 소프트 아이스크림으로. 아아, 슬프고 슬프다. 


셀카보다 화려한 내 치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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