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riter Lucy Feb 13. 2024

혼자서도 명절다운 명절은 보낼 수 있다

명절을 대하는 우리들의 태도

한민족 최대의 명절, 설이 지났다. 집에서 조용히 명절을 보내는 분들이 많아졌다 해도 서울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시간이 최대 9시간까지 걸린다는 뉴스를 듣고 있자면 확실히 명절은 명절이구나, 실감이 난다. 연휴 초기에 안부와 헤어짐을 말하는 인사로 왁자지껄했던 아파트 단지는 시간이 갈수록 조용해지고 분리수거 장소에 나온 쓰레기는 어느 때보다 높게 쌓여 다들 푸짐하게 먹고 즐겼음을 말해준다. 마지막으로 잠깐의 쉼을 누리다 일상으로 복귀가 이어지고, 이렇게 또 명절이 지났음을 애써 받아들인다.


명절이라 하면 떠올리는 모습이야 비슷하겠지만 실제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이전과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아직 성묘나 제사가 우선시 되는 집도 많겠지만 귀한 연휴를 활용해 해외여행을 가거나 밀린 약속을 잡는 경우도 허다하다. 나도 일부러 연휴 마지막날쯤에 서울의 오피스 밀집 구역에서 약속을 잡는 경우가 많았는데, 평소에 자리를 채우던 직장인들이 대거 빠지기도 하고 특히 연휴 마지막날은 다음날 출근을 위해 집에서 쉬는 사람이 많아 더더욱 덜 붐비기 때문이다. 나가서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다 주위를 둘러보면 삼삼오오 전시를 보러 가거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 명절에 만나는 게 꼭 친척들과 조상님은 아니구나 싶기도 하다.


우리 가족의 경우 매년 명절마다 친척들과 함께 큰 펜션을 빌려 시간을 보낸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시작된 전통 아닌 전통으로, 대체로 유치원 혹은 초등학교를 다니는 조카들이 뛰어놀라고 마련한 방안이다. 뛰어놀기엔 무릎이 시큰하고 기혼자도 아닌 데다 자녀는 더더욱 없는 나는 중간에 껴있기 상당히 애매해서 매번 간단한 인사와 식사만 하고 집에 돌아오는데 갈 때마다 반복되는 퇴색한 기억에 의존해 누군가에게 닿지 못한 채 부옇게 공중에 떠도는 대화들, 목청 높여 이야기하지만 음량이 커질수록 듣는 이 없는 외로운 이야기들을 들으며 '모두가 모여있어도 이렇게 외로운 명절은 무얼 위한 것일까'를 조용히 자문했다.


그 답은 의외의 곳에서 나왔다. 집에 바로 오기 위해 혼자 성묘 준비를 해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는 묘지를 방문했는데 오히려 답하는 이 없는 그곳에서 마음의 안식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가족들의 근황은 이러저러하고, 요즘 내가 소망하고 있는 것은 이런 것들이고 그것 좀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 하는 철없는 소리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그곳에서 정말 편하고 행복한지,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을 다 보고 계신 건지 하는 유치한 질문들까지. 혼자 방문한 것이기 때문에 원래 차례를 지내던 상과는 전연 딴 판의 MZ 식 제사상도 차려볼 수 있었다. 할머니가 생전 제일 좋아하셨던 과자인 카스타드, 떡은 뻑뻑한 설기 대신 호박 찹쌀떡, 과일은 요즘 맛이 제대로 든 천혜향, 자식들이 제일 좋아했던 약과는 요즘 스타일에 맞게 초콜릿이 박힌 걸로, 백화수복은 지겨우니 석류 과일 소주를, 마지막으로 말린 생선은 바비큐맛 명태포를. 절을 하기 위해 펴놓았던 돗자리에서 한참을 주절거리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같이 있다고 명절은 아니구나, 내 명절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한 시간이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예전처럼 모여서 명절을 보내지 않는다고 쯧쯧 혀 차는 소리를 내는 어른들이 계실지 모르겠다만.. 솔직히 마주 앉아서 밥을 같이 먹어도 딱히 할 얘기가 없어 시선은 티비에만 꽂혀있는 명절이 명절다운 거냐고 반문하고 싶다. 서로의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고, 새해의 안녕과 축하를 빌어주는 세뱃돈에 셈법을 적용해 머리를 굴리고(혹은 빈정상하고), 부엌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음식 냄새가 베어나도록 고생하는 누군가의 모습을 보면 이런 명절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혼자 있어도 명절은 충분히 느낄 수 있고, 즐길 수 있고, 행할 수 있다. 명절 분위기가 나니 안 나니 이야기하며 침 튀길 시간에 진짜 명절다운 명절을 보내고 있었는지를 짚어봤으면 한다. 올해도 내 앞에 마주한 이들의 안녕함에 감사하고, 서로의 건강한 한 해를 진심으로 빌어주고 있는지. 그게 먼저 아닐까.

작가의 이전글 내 소원은 오로지 건치미소, 건치미소 하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