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 척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시선은 티비에서 떼지 않았다.
"엄마 눈이 빨간데? 지금 우는 건데?"
재미있다는 듯, 신기하다는 듯 11살 첫째가 놀리는 말투로 자꾸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뺨에 흐르던 눈물을 손등과 옷깃으로 슬쩍 닦고 아니라며 한번 더 모르는 척했다.
친정집 거실 티비에는 넷플릭스로 틀어놓은 영화 [인턴]의 초반부가 재생되고 있었다. 널찍하게 오픈된 사무실 공간 안에 젊은 사람들이 바쁘게 일을 하고 있었다. 젊은 CEO 줄스(앤 해서웨이)가 분주한 모습으로 회사를 돌아다니며 일을 하고 그 안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모습이 이어졌다. 아마도 60대에 은퇴하였을 그레이 정장을 단정하게 입은 70세 벤(로버트 드니로)은 긴장한 듯한 얼굴로 줄스의 신생 스타트업 회사에 인턴 채용 인터뷰를 위해 건물로 들어섰다.
"지금 영화에 나오는 저 사무실이 알고 보니 아저씨(벤)가 원래 다니던 회사였대. 그 회사에서 은퇴하고 인턴을 하러 갔는데 마침 같은 건물이었던 거야. 신기하지?"
아직 영화에선 설명이 없었지만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아이에게 들려주었다. 고령 인턴 프로그램에 채용이 확정된 벤. 침실에서 잠자리에 들기 전깨끗하게 닦여진 구두를 확인하고 시계 알람을 맞추고 눕는다. 다음 날 아침 벤을 비롯 인턴으로 합격한 사람들이 회사에 대한 소개를 받으며 업무를 배정받고 있는 바로 그 장면이었다. 그 활기찬 영화 분위기에 나는 말을 하다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여러 번 보았던 영화 [인턴]. 처음 봤을 땐 스타트업의 성장 스토리와 사무실로 나오는 배경 등이 흥미로웠다. 고난에 부딪히는 CEO와 지혜로운 고령 인턴의 우정 어린 관계에 집중했다. 두 번째로 영화를 볼 때는 앤 해서웨이가 예뻐서 였고, 워킹맘으로 애쓰는 모습들에더 공감이 갔다. 시간이 또 지나서 육아휴직 중일 때 영화 인턴으로 영어공부를 하겠다며(영화섀도잉 유행할 때였다) 자막을 다운로드하고 동영상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해서 참으로 여러 번 반복하며 보기도 했다. 문득 그 영화가 다시 보고 싶었다. 은퇴한 고령 인턴 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렇게 다시 본 영화 [인턴]. 도입부에 은퇴한 벤의 독백과 인터뷰 영상이 나오는데 음악과 함께 빠르게 지나가버기에 그 대사에 더욱 집중하며 보았다. 장면이 바뀌어도 시간이 흘러도 유독 그 도입부 대사에 마음이 오래도록 멈추어 있었다.
프로이트가 말했죠
'사랑과 일, 일과 사랑. 그게 전부다'라고
난 은퇴했고 아내는 세상을 떠났어요. 당연히 시간이 남아돌죠.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 3년 반이 되었어요. 그녀가 정말 그리워요.
은퇴 생활요? 계속이지요. 창의적으로 소일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죠.
처음엔 참신해서 실제로 즐겼어요. 무단결근하는 느낌이었어요.
제가 모아 둔 마일리지를 사용해서 전 세계를 돌았어요.
문제는 어딜 가든 집에 돌아오면 구태여 돌아다닐 필요가 없단 생각이 날 괴롭혔어요.
가장 중요한 건 그냥 몸을 움직이는 거였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집 밖에 나가 어디든 가는 거예요.
비가 오든 해가 쨍쨍 하든요.
7시 15분이면 스타벅스에 가요.
뭐라 설명할 수 없지만 제가 뭔가의 구성원이 된 것 같죠.
- 넷플릭스 자막에서 가져온 한국어 번역 자막 -
둘째를 늦은 나이에 출산하고 집에 있을 때가 떠올랐다. 첫째는 이미 9살이었고 아기랑 그저 집에만 있어도 편안하고 좋았던 시간들이었다. 남편이 늦게 출근을 할 때면, 둘째를 잠시 봐달라고 하고 첫째가 학교 갈 때 같이 길을 나섰다. 그렇게 길을 나서서 학교 후문까지 짧은 등교길을 함께 걸었다. 내 나름대로 오래도록 외동으로 커오다 둘째가 태어나고 마음이 복잡했을 첫째를 배려했던 시간이기도 했지만, 그렇게 매일 집을 나서는 게 나도 기분이 훨씬 더 좋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학교에 가면서 종종 아이가 내게 물었다.
"엄마, 어디 가는데?"
"아니 엄마 그냥 커피 한잔 사러 가는 거야."
모두가 분주한 아침 시간에 나도 두 발을 부지런히 움직여 걸었다. 아이와 손을 흔들어 횡단보도에서 헤어지면 나는 조금 더 걸어가서 카페에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아메리카노 한잔 테이크아웃할게요."
메뉴는 거의 대부분 아메리카노였다. 가끔 속이 좀 더 허전할 때면 시럽 안 들어간 진한 라떼이기도 했다. 카페 안에는 갓 내린 에스프레소의 향으로 가득했고, 사람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가는 사이에 바깥의 차갑고 상쾌한 공기가 들어와 커피 향을 밀어내곤 했다. 카페 직원이 만들어준 음료가 나오고 테이크아웃 종이컵을 손에 쥐면 손바닥이 따뜻해졌다. 한 손에 쥔 커피, 쌉싸름한 구수한 커피 향과 함께 정체모를 작은 위안을 얻었다. 그 시간은 회사에서의 아침 시간을 떠올리게 했다. 바쁘게 출근해서 자리에 앉았다가 카누 봉지를 들고 정수기로 걸어가 뜨거운 정수기 물에 커피를 한잔 타서 자리로 돌아와 앉아서 한 모금 마셨던 그 시간을 생각나게 했다. 때로는 카누가 아닌 맥도널드나 스타벅스 커피일 때도 있었다. 커피는 그렇게 나에게 하루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휴직 중이지만 이 커피 한잔 정도는 소비를 해도 괜찮다는 안심의 표현이기도 하였으며, 거꾸로 그러한 소비를 통해 나라는 사람이 여기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집으로 돌아갈 거면서 그 커피가 굳이 필요했던 이유는 허전함 때문이었다. 영화를 보다가 벤이 목적 없이 매일 스타벅스에 갔다던 7시 15분의 대사가 마음에 남았다.
'뭐라 설명할 수 없지만 제가 뭔가의 구성원이 된 것 같죠.'
그 허전함의 정체는 어딘가에 속하고 싶은 욕구였다. 깨달음과 함께 나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말로는, 회사를 곧 그만둘 거라 말하고 다니고 있지만.
나는 회사를 나가서 정말 괜찮을까?
라고 말이다.
휴직 중에 내가 아침마다 카페에 발길을 돌리는 것을 불필요한 소비이자 낭비로 생각해서 줄여보고자 애쓴 적도 있었다. 지갑과 휴대폰을 아예 안 들고나가는 것과 같은 작은 절약을 위한 노력 말이다. 빈손으로 집에 돌아와 커피를 타서 마셨지만 이상하게 허전함은 채워지지 않았다. 앞으로는 회사를 쉬거나 그만두더라도 3천 원 4천 원을 아끼려고 애써 발걸음을 집으로 돌리지는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일부러라도 더 일거리를 들고 작업하기 좋은 카페나 근처의 스타벅스로 나가야겠다. 글을 쓰건 블로그 포스팅을 하건 책을 읽건 뭐라도 꼭 챙겨서 말이다.
4천 원과 소속감이라면 충분히 맞바꿀만한 가치가 있지 않은가.물론 그마저도 코로나가 잠잠해진 이후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