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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민 Jul 15. 2020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길을 걷다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는가? 하루에 한 번, 아니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길 위에서 이 말을 들은 적이 있는가? 고작 2초의 시간으로 건넬 수 있는 이 짧은 문장을 서로에게 건네는 일이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요즘처럼 바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나는 요즘 매일 아침, ‘좋은 아침입니다.’라는 말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마치 하루의 시작이 정말 좋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이 문장을 들으며.


 무던했던 겨울이 지나고, 아직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3월의 어느 날. 나는 엄마와 함께 집 뒤 편에 있는 작은 산, 인왕산을 올랐다. 겨울을 지내며 앙상해진 가지에는 아직 봄의 기운이 오지 않은 상태였고 간간이 불어오는 찬 바람이 코끝을 매섭게 스쳐 갔다.

 해가 뜨기 전에 집을 나섰기 때문에 집 밖은 어둠으로 가득했고, 지나다니는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추위를 막기 위해 몸 위로 두꺼운 옷을 걸쳤으며 굽은 번데기처럼 몸을 웅크린 채 걷고 있었다. 나와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번데기처럼 몸을 말은 채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했다.


 인왕산은 주변 산들보다 비교적 낮은 산이었지만 등산을 즐겨 하지 않은 우리 모녀에게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쉬운 걸음은 아니었다. 몸에선 뜨거운 땀이 한 방울씩 흐르고 있었고, 차가운 바람과 만나 더 추위를 물씬 느끼게 했다.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길에 두꺼운 옷과 추운 날씨 턱에 원래도 아무 말을 하지 않고 걷던 우리의 입은 점점 더 닫히기 시작했다. 막 전망대에 올라 한숨을 돌리고 오밀조밀 모여있는 낡은 운동기구를 사용하며 쉬고 있을 때, 건물들 위로 주황빛의 해가 뜨기 시작했고 어둠으로 가득했던 공간은 점점 서로의 얼굴을 인식할 수 있게 밝아졌다. 엄마와 나는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며 새롭게 시작하는 아침 생각에 서로를 보며 웃음이 절로 나왔다.


 전망대에서 집으로 내려가는 길은 산을 오를 때랑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쉬운 길이었다. 산을 오를 때 어두워서, 숨이 막히고 힘들어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 ─가령 사계절 내내 지지 않는 사철나무들, 나무를 이리저리 오가는 작은 생물들─을 마주하며 걸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막 산을 오르기 시작하는 등산객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나와 엄마가 걸어 올라왔던 그 어려웠던 길을 씩씩한 걸음과 기분 좋은 미소를 지은 채 올라오는 사람들을.

마주치는 사람들은 우리를 보며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등의 인사말을 건넸고
우리도 그 말에 대한 대답으로
‘네,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라고 화답했다.




 요즘에 길을 걷다 보면 허겁지겁 뛰어가며 주변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 정신없이 핸드폰만 들여다보며 걷는 사람들을 잘 볼 수 있다. 길거리뿐만이 아닌 지하철,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에서도.

 내가 초등학생 때 만해도 외국인을 보면 ‘하이.’라고 인사를 건네고, 마주치는 이웃 주민들을 보고 웃으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 사이에서는 인사가 그저 불필요한 것,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자연스러웠던 우리의 안부 인사가 생략되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엄마와 매일 아침 산을 오르며, 그때 마주치는 많은 사람과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인사를 건넨다. 고작 10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의 인사지만 요즘에는 그 시간이 하루 중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순간이 되었다.

 잠깐의 시간 동안 마주 보고 서서
서로의 눈을 맞추며 미소를 짓고
작은 인사말을 건네는 일.

나는 매일 그 하루를 소중히 간직하며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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