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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May 01. 2019

인생을 리셋할 수 있다면


주말인데도 한산한 한강진의 한 골목. 오후 2시가 넘은 시각임에도 입소문 난 식당 앞에는 기다리는 손님들로 붐빈다. 여성들의 옷차림도 하늘하늘해지고 한동안 여성들에게 버림받았던 힐도 눈에 띈다. 조금 한산하고 분위기도 괜찮아 보이는 카페로 들어갔다. 1시간 넘게 앉아 있기는 힘들게 만들려는 의도였는지 의자가 많이 불편했지만 같은 과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 몇 시간 동안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새 주말 드라마 볼 시간에 가까워졌다.


인생을 다시 리셋하고 싶어.


대화 도중 한 친구가 말했다. 다시 대학교 때로 돌아간다면 지금과 다른 삶을 살겠다고. 공부만을 더 치열하게 파든지 아니면 뭔가 다른 길을 찾았을 거라고.


이 말을 듣는 순간 난 학창 시절로 돌아간다면 한국의 입시를 준비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학비가 무료이거나 거의 없는 수준인, 치열한 입시가 필요하지 않은 유럽의(학비가 비싸고 입시 스트레스가 심할 것 같은 영국 제외) 아무 학교나 들어가서 공부하는 것이다. 어느 나라를 고를지 상상하는 것만 해도 행복하다. 상상 속의 나는 벌써 최소 2천만 원을 아꼈고, 수학 국가 한 곳과 영어, 한국어 이렇게 세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 이것저것 취업이나 공무원 준비에 필요한 공부를 하는 한국과 달리 진짜 하고 싶은 한두 분야만 파서 전문성을 쌓는다. 유럽의 대학교는 3년제가 많아 시간도 단축된다. 그 나라의 남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여 그 나라에서 합법적으로 머물게 된 나는 일자리를 얻어 일하거나 영주권자의 혜택으로 무료로 대학원도 다니며 하고 싶은 공부를 한다.


아니면 차라리 동남아로 대학교를 가도 좋겠다. 태국 말레이시아 혹은 인도네시아. 물가도 저렴하고 음식도 맛있다. 한국인에게도 우호적이고 다국적 환경이다.


대학교를 선택할 때 주위의 어른들은 교대를 쓰라는 의견이 많았다. 지금에 와서 봐도 교사를 하는 친구들의 삶이 여유롭고 안정적이어 보인다. 퇴직 이후의 삶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내 삶을 리셋시켜준다고 해도 나는 교사의 길을 걷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잘 가르치지도 못하고 아이들을 좋아하지도 않고 그 일에 가슴이 뛰지도 않는다. 상상조차 행복하지 않다.  


물론 지금의 나의 삶에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걱정과 고민이 많고 후회되는 부분도 있다. 영화 <어바웃 타임>처럼 지금의 내가 리셋하고 싶은 그 지점으로 달려가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많다. 시행착오를 줄이는 다양한 방법이나 비용을 아끼고 최대의 효율을 내는 법도 알려주고 싶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그 시기가 언제든 현재 내가 하고 싶은, 내가 행복한 길을 걷는 것이다.


찰나의 상상에서 카페 테이블로 돌아온 나는 적어도 어른들이 00가 최고지 하는 것을 따르는 삶을 살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리고는 상상을 해도 나는 어느 대학교에 갈지를 고민하는 것을 보면 역시나 내 삶 전체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는 입시였구나, 돈 걱정 없이 공부를 하고 싶었구나 하며 한편으로는 씁쓸한 우리의 현실을 곱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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