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마산의 한 카페에서

by 모네




갈색으로 마른 꽃들이 거꾸로 매달려있고 메뉴판에도 채 담기지 않는, 세계에서 온 온갖 홍차를 파는 카페에 왔다. 마산 창동예술촌의 골목 어딘가에 있는 아담하고 은은한 곳이다.


북적북적한 예술촌 대로변 카페에는 가족, 친구 단위의 대화를 하는 손님들이 많아 상대적으로 조용하고 차분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을 찾고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책을 읽고 있는 여자 한 분이 있는, 크림색의 차분한 느낌의 공간이었다.


소파 자리에 앉아서 들어오는 입구를 바라보니 다양한 색과 디자인의 통에 놓여있는 홍차가 아기자기해 보인다. 베이지색의 긴 파마머리를 한 20대로 보이는 여자분이 메뉴판을 가져다준다. 천천히 보시고 말해주세요. 정말 차분한 목소리다. 메뉴를 보는데 정말 다양한 종류의 홍차가 있다. 초콜릿, 헤이즐넛 향의 플로렌스라는 향을 골랐더니 시향을 해보라고 차통을 가져와 향을 맡게 해 준다. 와- 좋아요! 그럼 이걸로 우려드릴게요!


찻잎에 우린 홍차와 함께 작은 스콘 조각이 나왔다. 달달하고 귀여운 향이다. 맛은 떫지 않고 은은하다. 헤이즈는 행복해야 돼- 를 반복한다. 헤이즈의 목소리가 고소한 홍차 향과 분위기 있는 마른 꽃들, 하얀색 레이스 커튼 속으로 금색 조명이 반짝이는 이 공간과 정말 잘 어울린다.


배낭에서 <노르웨이의 숲>을 꺼냈다. 서른일곱 살의 주인공 남자가 독일에 도착하며 갑자기 확 밀려오는 옛 추억과 감성에 어쩔 줄 몰라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오랜만에 다시 찾게 된 곳을 보자마자 느껴지는 온갖 것들, 누구에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나만의 추억과 현재 내 눈앞에 보이는 이 변한 혹은 변하지 않은 장소가 갑자기 뒤섞여 온통 혼란한 그 마음을 상상하니 정말 공감되었다.


홍차를 몇 모금 마신다. 또다시 우물이 나온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 중 우물이 안 나오는 소설이 있을까. 내가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에서 처음 접한 우물은 <기사단장 죽이기>의 우물이었는데. 기사단장 죽이기 속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항상 새 옷처럼 깔끔한 옷을 입는 은발의 이웃 남자가 떠올랐다. 은발 맞나. 그리고 여름에 경주에서 여행 중 본 우물, 우물을 보자 나도 저기 우물에 들어가 보고 싶어.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옆 테이블에 두 명의 여자가 들어왔다. 조용하던 공간에 대화 소리가 좀 생기는 건가. 나는 약간의 소음 속에서 독서가 더 잘된다. 책상에는 IELTS basic 이라는 책이 올려져 있었다. 홍차를 시킬 때만 목소리가 나왔고 두 분은 영어 공부에 몰두한 듯싶었다.


나오코라는 추억 속 여자가 드디어 나온 와타나베라는 이름의 주인공 남자의 볼에 볼을 갖다 대서 와타나베가 설레고 있다. 소나무 숲길에서 나오코는 언제까지나 자기를 잊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지금 난 아마도 널 진실로 이해하지는 못하겠지. 난 머리 좋은 인간이 아니라서 뭔가를 이해하려면 시간이 좀 걸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 너를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아마 이 세상에서 널 제일 잘 이해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

금방 1장이 끝났다. 1Q84를 가장 좋아하는데 1Q84와 기사단장 죽이기 류의 소설은 아니라고 들었지만 1장만으로도 문장마다 감성이 정말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생각 저생각 하다보니 두 시간이 금방 지났다. 어젯밤에 괜히 짜파게티를 하나 끓여먹어서 그런지 배가 살살 아프고 미세먼지 때문인지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온다. 으슬으슬 춥다. 따뜻한 이불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카페 사장님이 오늘의 티로 리필도 해준다고 했는데 이제 그만 자리를 떠야겠다.


고려당이라는 추천받은 빵집에서 빵을 조금 사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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