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거리를 일부러 찾는 편은 아니다. 북적북적한 카페거리보다 그냥 우연히 찾은 카페에서 쉬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부산에서 가야 할 곳을 찾으니 어느 해에 뉴욕타임스에서 꼭 걸어봐야 할 거리에 유일하게 나온 한국 거리라나, 어쨌든 관광객(서울촌놈인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 건 분명했다.
서면역에서 나와 서면의 곳곳을 들어서니 건대입구 느낌이 많이 났다. 건대 입구스럽기도 하고 홍대입구스럽기도 하고 어떤 곳은 아주 약간 경복궁 뒤 서촌 같기도 했다.
한 것도 없는데 지치는 게 카페에서 앉아서 충전하고 쉬고 싶었다. 그래도 느낌 있는 카페에 머물다 가고 싶은데 여러군데 들어가 보니 사람이 많았다. 개화기 느낌 나게 카펫을 깔아 연출한 카페도 있었고 소소한 작은 카페들도 있었다. 창원의 가로수길에 있는 주택 개조 카페보다 조금 큰 규모의 카페가 많았다. 방마다 벽지 색과 조명, 그리고 의자와 테이블이 달라 고르는 재미가 있어 보였다.
날이 따뜻해 우리는 야외에 앉았는데 공사 중인 고층빌딩과 여러 고층빌딩 뷰는 별로인 자리였지만 쉬는데 의의가 있었다.
지난주에 집에 올라갔을 때 동생이 독서모임에서 읽던 한트케의 책이 있길래 가지고 내려왔다. <어느 작가의 오후>의 묘사와 감성이 좋았는데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은 더 초기작이라고 한다. 70년에 발간된 소설인데 당시 독일의 지명, 거리, 생활을 포함해서 구체적인 묘사가 정말 좋다. 다큐영화를 글씨로 읽는 것 같으면서도 입체적이고 문학적이다. 나는 평소에 입체적이고 문학적인 사람도 정말 좋아한다. 이런 캐릭터를 하나 발굴하면 희열을 느낀다.
책을 펴서 읽으며 쉬고 있으니 같이 간 동기가 어떤 책을 읽냐며 평소에 문학을 좋아하냐고 물어봤다. 자기는 이과 출신이지만 문학에 관심이 많다면서. 한트케에게 느낀 감정을 간단히 소개했는데 나의 어눌하게 나열한 감성의 묘사도 잘 캐치하고는 다른 것과 연결지어 대화를 이어갔다. 종종 직원들하고 책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책을 읽는 사람이 신기하다거나 자기는 책을 잘 못 읽는다, 너무 어려워서 안 읽는다 식의 반응이 많았던 터라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니 반가웠다. 책을 멀리하는 직원들에게 문학의 즐거움을 어떻게든 맛보게 해주고 싶은데 나도 전문가가 아니어서 책 추천이 쉽지 않다.
작년 말에는 페르난두 페소아 감성에 빠져서 올해 겨울 리스본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고 유럽 작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여행 이야기가 나왔고 내년엔 어느 나라를 여행하고 싶은지, 어느 도시를 가보고 싶은지에 대해 나누다가 동기가 나는 국제협력 업무를 하는 부서로 가는 게 좋겠다고 말해서 나도 그러고 싶다고 크게 공감하며 앞으로의 열린 여러 루트, 우리 회사의 역할에 대한 생각, 우리 분야가 국익에 기여할 수 있는 더 큰 가능성 등에 대해 자유롭게 나누었다. 그러다 4차 혁명시대, IT에 대한 내용, 시장에 대한 이야기로 번졌고 동기와 나는 서로를 알게 된 뒤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지금 공공분야에 있지만 민간에 계속 머물렀다면 전국적으로 살롱문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각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이 퇴근 후 어둡고 조도 낮은 공간에 모여 와인이나 커피를 가볍게 마시며 각자의 분야와 인문, 철학, 역사, 과학, 금융, 경제 등을 토론하고, 우리 삶과 사회를 고민하며 어떠한 제3의 융합이 일어나는 그런 모임의 장이 활성화되도록 하고 싶다고. 동기는 한국에서는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내 말 중 그닥 중요하지 않았던 ‘어두운 공간’에 꽂혔는지 한국에선 어두운 곳에서 조명 켜고는 화투를 치거나 음지의 일들이 상상된다고 했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일 경우 의견 충돌로 모임이 와해되기 쉽다는 의견을 말했다. 동의하는 바였다. 나는 내가 이상주의자로서 공상을 펼친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내가 꿈꾸는 세계는 여러 분야의 교류가 원활하여 각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 가진 다양한 생각과 아이디어가 서로서로에게 전파되어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고, 각자가 자기중심과 철학을 가진 개개인이 모인 곳이다. 예쁜 카페에서 오랜만에 친구와 시간을 보내고 느낌있는 사진도 찍는 여가 시간은 소중하고 이 또한 예술이다. 다만 시시콜콜한 겉도는 이야기들만 맴돌지 않고 더 깊은 대화로 들어갔으면 좋겠다. 살롱 문화가 조성될 수 있는 아름답고 감성 있는 공간은 충분한 것 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