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동기가 일하는 컴퓨터 화면에 피피티가 떠있길래 동기 자리로 다가갔다. 발표자료를 만들고 있었는데 회색끼가 도는 탁한 남색이 배경이었고, 글씨는 작은 하얀색이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고 몇 걸음 뒤로 물러나 봤다.
“가독성이 떨어지는데?”
“아, 그래?”
하고 있는데 뒤에 앉아있던 여자 과장님이 뭐 그리 어려운 말을 쓰냐며 다가와서 보자, 하더니 좀 티미하네, 하고 자리에 가서 앉으셨다.
“티-미-요?” 처음 듣는 말이어서 무슨 말인지 몰랐다. 동기 자리에 널브러진 A4용지 뒷면에 틔미?라고 쓰니 ‘티미’라고 써줬다. 티미요? 우와 귀엽다! 영어 같은데요?라고 하니 주변에서 듣던, 나를 제외하고 모두 경상도 출신인 직원들이 빵 터져 웃었다.
00씨가 말하니 영어 같은 거 아니야? 나의 티미하다 발음을 재밌어하며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만의 티~미~하다 발음을 소리 냈다. 내 발음 ‘티미하다’에서 티미의 음높이가 솔에 가깝다면 경상도 분들의 발음은 낮은 라에서 시작해 굉장히 큰 차이가 있었다.
아, 이것도 써놔야겠다,라고 하니 동기가 모네씨는 사투리 모은대요.라고 해서 내가 맞아요! 저 새그럽다 발음 예뻐서 적어놨어요.라고 말하니 또 나의 새그럽다 발음에 모두가 빵 터졌다. 어떻게 새그럽다를 그렇게 발음할 수가 있니, 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더니 쌔그럽다.라고 또 낮은 음에서 시작하더니 쌔-라고 강하게 발음하는 거라고 알려주었다. 마치 미국영어 영국영어의 차이 같기도 했다.
그러더니 한 직원이 단팥 라테와 블루베리 스무디를 발음해보라며, 블루베리 스무디는 니가가라 하와이처럼 발음하면 된다고 갑자기 너도나도 사투리 교실이 열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니 한 분이 이제 그마해라 챙피하다, 라고 하셨다.
티미하다는 흐릿하다, 잘 안 보인다라는 뜻인 것 같다. 귀여워서 자주 써야겠다.
지금은 성산구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노트북을 켜놓고 일을 하고 있다. 창원 내려올 때 노트북을 가져오지 않았는데 급하게 일을 해야 해서 동료가 빌려주었다. 이 화창한 주말 낮, 그것도 창원이라는 이름도 생소한 곳의 한 카페에서 모르는 사람(지금은 알게 된 사람)의 노트북으로 일을 하고 있다니, 새삼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일을 잠시 중단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창원의 젊은 사람들을 구경하려면 스타벅스로 오면 되겠다 싶었다. 같은 테이블 옆자리에는 모의고사 영어 문제를 푸는 것으로 보아 학생인듯한 여학생 둘이 앉았다. 잘 안풀리는 문제가 있는 것 같던데 도와주고 싶었다. 화장한 것으로 보아 대학생인 줄 알았는데 고등학생인가.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은 나이 구분이 잘 안 가는데,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도 그런 것 같다.
그때, 정말 우연히도 저 멀리서 동료가 다가왔다. 우리 회사 체험형 인턴하시는 남자분이었다. 날 보지 못했는데 내가 알아보고 누구씨! 하고 부르니 어 예 안녕하세요. 뭐하세요?라고 물었고, 나는 대답을 했다. 노메이크업이라 색깔 없는 얼굴로. 누구씨가 제 자리로 돌아간 뒤 일에 다시 집중했다.
그런데 여태까지 폭풍 사투리를 구사하던 여학생 둘이 사투리를 억누르며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뭐뭐했니?라며 어색하게 말했고 문장어미의 억양이 이상해졌다. 사투리를 억누르며 하나하나 힘주어 말하는 게 너무 어색한데 그러한 시도가 귀여웠다. 내가 대화중에 너무나 서울말을 썼어서 나를 의식한건가 싶어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