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단길이라니. 동네마다 별 길이 다 있다. 여름에는 경주의 황리단길을 갔었는데 좀 소비를 위한 인위적인 골목 같은 느낌이어서 별로였다. 해리단길은 해운대역 바로 근처에 있는 골목인데,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한남동 한강진 골목 느낌이 많이 났다.
한 세 달 만에 친구를 부산에서 만났다. 세 달 전에 만날 때도 거의 일 년 반 만에 본 것이었는데 짧게 만나고 헤어졌던 터라 이번에 세 달 만에 본 것임에도 몇 년 만에 본 것 같은 반가움이 느껴졌다. 게다가 부산 사람을 부산에서 보다니. 처음 와보는 낯선 공간이라 그런지 더더욱 여행 중 현지인 친구를 만난 느낌이 크게 들었다.
내 친구는 긴 생머리가 잘 어울리는 아가씨인데, 본연의 얼굴이 눈도 크고 코도 오똑하여 화장 안 한 맨얼굴로 다니는데도 굉장히 화려하다. 화려한 얼굴임에도 성형하면 나오는 뻔한 얼굴이 아니어서 수수한 느낌이 함께 묻어나 굉장히 신비롭고 오묘하다.
신호가 길어서 횡단보도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멀리서 보이는 친구는 긴 생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렸다. 늘 밝은 염색머리였던 친구가 검은 머리를 하니 더 매혹적이었다.
드디어 파란불이 되었다. 우왕 반가워 부산 아가씨! 손을 부여잡고 반갑게 인사했다. 포옹을 하고 싶었지만 친구는 포옹이 어색한 사람인가 보다. 외국에서 공부하거나 문화를 자주 접한 친구들하고는 만나자마자 포옹을 하는데, 친밀함이 깊지만 포옹이 어색한 한국 친구들도 많다. 나도 스물한 살, 외국에 처음 갔을 때 같이 수업 듣는 대학 동료들이 만나면 으스러지게 껴안고 볼에 뽀뽀하는 것이 어색했었던 기억이 난다. 심지어 자기 여자 친구가 옆에 있어도 다른 여사친을 꽉 껴안는 것이 처음엔 문화충격으로 다가오기까지 했었다.
친구는 날 정말 좋아해 준다. 항상 보고 싶다고 말하고, 우리가 더 자주 보고 같이 여행도 가고 재미있게 지낼 미래를 꿈꾼다. 나의 일상과 감정에 관심 있게 질문하고 공감해준다. 내가 먼저 일을 시작하였어도 질투하거나 그런 내색하지 않고 나의 꿈과 길을 응원해주니 이 생각 저 생각 거르지 않고 얘기하게 된다.
내가 부산 올 때마다 쏠게. 친구에게 시원하게 사고 베풀 수 있다는 게 돈 버는 맛이다. 항상 난 여기 그만두고 나가서 카페 알바 하면서도 살 수 있어라는 말을 자주 하는, 내 임금의 30프로 이상 필요한 사람에게 줄 수 있어, 하는 earning to give가 돈 버는 목적(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착각일 수도 있는)인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항상 사표를 품고 다니냐는 말도 자주 들었다.
이런 마인드 때문인지 눈치 안 보는 삶의 대명사가 된 것 같다. 물론 직장 내 예절과 예의를 지키는 한에서다. 이사와 테이블에 앉아 얘기하는 자리에서 다른 직원들이 꽁꽁 얼어있는데 나는 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고 갑갑해서 벗어나고 싶다. 팔도 좀 자유롭게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예의에서 어긋나지 않는 한 자세와 표정을 조금 편하게 앉아서 듣는다.
분위기를 풀 수 있는 한에서 엉뚱한 말을 꺼내기도 하는데 윗사람은 당차고 귀엽다는 식으로 웃음보가 빵 터진다.
저번엔 이사진 앞에서 예술의 사회적 가치와 파급효과에 대하여 PT 발표를 했는데 그 예로 내 브런치의 빅데이터를 보여준 적이 있다. 이사가 저 글은 어디 들어가면 볼 수 있냐고 물었다. “아, 전 직장동료에게는 알려주지 않아요. 표현의 자유가 있지 않습니까.”라고 하니 이사진이 빵 터졌다. 동기들에게 말하니 이사 앞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다니 재밌다고 했다. 그래도 이사님은 뭐 회사 욕을 쓴 것이냐, 무슨 내용을 썼냐,라고 물으셨고, 입사 전에 쓴 글이다, 찾아보실까 봐 말씀 못 드리겠다 라고 말했더니 다른 높은 분이 만류하며 에이 거 참 직장동료에게는 오픈 안 한다잖아요, 하고 웃으며 마무리가 되었다. 사실 내 글을 보여주는 건 아무렇지 않지만 앞으로 내가 글을 쓸 때 회사 동료가 내 글을 읽고 있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위축되고 표현이 제한될 것 같아 예술의 표현에 있어 진정성이 줄어들 것 같다. 글에는 감정이 드러나기 때문에 내 감정을 알리고 싶지도 않고.
친구는 현지인이라 그런지 관광객이 부산 가면 먹는 그런 메뉴를 먹지 않았다. 우리는 해리단길에서 아란치니를 먹었다.
아란치니는 먹물 오징어와 쉬림프를 골랐고, 소스는 로제 소스로 골랐는데 맛있었다. 아란치니를 처음 먹어보는데 안에 밥도 들어있고 재미있는 맛이었다. 뇨끼의 수제비 같은 파스타인지 반죽은 식감이 좀 별로였다. 크림소스와 야채, 새우, 스테이크의 조화는 좋았다. 밥을 먹으며 나의 일상 얘기, 이 얘기 저 얘기 끊임없이 얘기했다.
동료 중에 처음 만나자마자 반지가 눈에 띄어서 결혼하셨냐고 물었는데 여자 친구라고 해서 인상적이었어. 왜 유부남도 아닌데 반지를 매일 끼고 다니지, 하고. 그 사람은 손에 피가 안 통하도록 꽉 끼는 반지를 꼈는데, 크리스마스에 여자 친구에게 선물을 안 하냐고 얼마 전에 물으니 뭐 반지는 다시 맞출 때가 됐다고 하길래, 그러셔야 할 것 같다고 너무 꽉 낀다, 아 그런데 반지는 굳이 안 끼고 다니셔도 될 것 같다고 장난으로 말했어. 그랬더니 웃으면서 자기의 이성적 매력에 대해 그렇게 말하니 기분이 나쁘네요. 하면서 뭐 학교 다닐 때 도서관 가면 자기 자리에 여자들이 뭐 우유를 놨대나 뭘 놓고 간대. 그래서 자기는 위험한 남자라 반지를 껴야 한대. 너무 웃겨. 여자 친구가 반지 자국을 항상 검사한다며. 아 진짜 웃겼어. 안 끼고 다녀도 될 것 같은데 말이야. 반지 끼면 뭐랄까, 나에게 다가오지 마! 나 임자 있어. 를 너무 열렬히 표현하는 것 같아서 오히려 뭔가 거부감 들던데. 난 그럴 생각도 없는데 혼자 왜 저러지 이런 느낌.
난 오히려 반지 끼고 이런 형식적인 것보다 이성 동료와 관계를 어떻게 형성하는지가 더 중요하지 않나 싶어. 날 보면 반가워서 말하고 싶어 가지고 눈 맞은 개처럼 즐거워하며 다가와서 안물안궁인 이 얘기 저 얘기 늘어놓고 서로 장난치고 농담하는 게 여자 친구가 본다면 더 기분 나빠할 것 같은데. 반지를 안 꼈다는 사실보다 말이야. 내 자리에서 일을 가르쳐주다 키보드나 마우스를 집다가 손이 닿거나 얼굴과 몸이 가까운데 동공이 흔들리고 감정의 동요가 느껴지는데 이런 게 더 문제 되는 거 아닌가. 아무튼 서울에 있는 너 남자 친구도 잘 지켜봐.
뭐 이런 얘기.
카페도 내가 쏠게! 지나가다 느낌 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들어서자마자 인테리어가 정말 예뻤고, 외국의 호텔 로비나 기차의 고급 식당칸 같았다. 와 분위기 정말 예쁘고 우아하다. 요즘 읽다가 바빠서 못 읽고 있는 <모스크바의 신사> 속 호텔 식당 장면이 겹치면서 이 공간에 호기심이 생겼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직원이 커피 시향을 도와주고 라떼나 드립으로 내려준다. 나는 인도네시아 커피, 친구는 브라질 향으로 골랐는데 나라마다 고지대, 저지대 어디서 생산된 커피이며 이건 상큼한 향이 특징이다, 고소하다, 라떼로 마시면 향이 극대화된다, 등 세세한 설명을 들으니 향이 더 풍부하게 느껴졌다. 친절하기도 하셔라.
<모스크바의 신사>는 미국인이 쓴 것임에도 1900년대 초 러시아 분위기, 지명, 이름, 취향 등이 잘 드러나서 신기하다.
알렉산드롭스키 정원의 라일락, 화분에 심어진 종려나무, 할머니의 동양식 커피 탁자, 괘종시계, 오페라글라스, 암스테르담의 튤립 색깔만큼이나 다양한 색상의 설탕을 입힌 케이크, 베르트랑 화랑, 둥근 브랜디 잔, 페트롭스키 아케이드 백화점, 자두 타르트, <프라브다> 한 부, 동양풍 오드콜로뉴의 흐릿한 내음, 페트롭스코예 마을, 책장에 나란히 꽂힌 19세기 소설들, 푸스킨스카야 광장, 보르도 와인과 보르고뉴 와인, 라트비아 스튜와 무크자니 와인, 짙은 자주색 아이스크림, <호두까기 인형>, 족제비로 만든 검은 밍크
등의 단어를 보면 머릿속에 공상이 펼쳐진다. 눈이 많이 내리는 모스크바가 그려지고, 안 가보았지만 소설에 나오는 호텔 속 곳곳이 상상되고 당시의 인테리어, 가구 등을 상상하는 재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