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네 Jul 13. 2020

신비 미용실

빗소리가 끊임없이 들린다. 다가오는 토요일에는 대학교 친구 결혼식이 있어서 5일 동안이나마 몸의 붓기를 빼보자 마음먹었지만 퇴근길 셔틀버스에서 건너편 자리에 앉은 동료가 라면에 계란과 치즈를 넣고 끓여 먹고 싶은 날이라며 라면 냄새가 날 정도로 묘사하는 바람에 엄마가 열심히 감자볶음과 콩나물 볶음을 만들어 놓은 것을 보았지만 까치발을 들어 진라면 봉지를 꺼냈다. 라면에 무너지게 만든 이 여자 동료와 우연히도 구내식당을 가던 중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 같이 먹자 해서 점심을 먹던 중 같이 밥 먹는 테이블에서 요즘 같은 코로나 시국에도 어제 오늘 미용실 예약이 꽉 찼다고 어느 한 명이 말했다.


비가 온다면서 시원한 바람만 불던 토요일에 나도 파마를 하러 미용실에 갔었다. 저번에 길가다 우연히 들어간 미용실인데 머리를 쑥덕쑥덕 금방 자르며 힘들이지 않고 예쁘게 커트해준 곳이라 이곳에서 파마를 하면 되겠다고 마음먹었었다. 길쭉한 구조 안쪽으로 정사각형의 더 넓은 형태가 나타나는 이 미용실의 인테리어는 동네 미용실보다는 헤어살롱 같은 분위기이지만 아줌마 혼자 운영하는 곳이고 손님도 없어서 그런지 쓸데없이 큰 것 같은 썰렁함이 느껴졌다.


오늘은 들어가니 젊은 남자 손님이 한 명 있었다. 여전히 숱 많은 우아한 자갈치 머리를 하고 있는 아줌마는 청원경찰일을 한다는 청년의 앞머리를 고데기로 피고 있었다. 나 말고 손님이 더 있는데도 적막이 흘렀다. 음악도 티비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예약을 하면 좋을까 싶어 검색했었는데, 요즘 시대에 네이버 지도에 쳐도 나오지 않는 곳이다. 아줌마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수다쟁이신데 내가 본 수다쟁이 중에 말이 제일 느리고 얘기가 끊기면서 말을 더듬더듬한다. 인내심을 가지고 듣지 않으면 말을 끊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하는 데도 서론 본론 결론을 꼭 다 길게 설명한다. 서론을 듣다 보면 무슨 말할지를 대충 알 것 같아서 얘기 듣기가 귀찮은데도 귀를 기울이게 하는 묘한 힘이 있었다.


인스타그램에서 검색한 하고 싶은 스타일의 사진 몇가지를 보여주니 아줌마는 대답도 안 하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하나 있는 샴푸대로 안내했다. 머리를 감기고 나서 밑에 좀 다듬을 거죠? 하더니 상한 부위를 쑥덕쑥덕 잘랐다. 그러고는 어떤 파마를 할 거고 가격은 얼마라는 얘기도 없이 굵은 롤을 가져와서 말기 시작했다. 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아줌마에게 머리를 내맡겼다.


"여기 오픈 시간은 몇 시예요? 엄마가 평일에 오겠다고 해서요." 롤을 말고 있는 거울 속의  아줌마를 보며 말했다.

"아 열 시. 내가 집에서 9시쯤 나오거든. (아침에 나오는 얘기 한참 후) 여기 아침에 핫도그 가게에 어찌나 젊은 엄마들이 애들을 데리고 오는지. 어린애들을 아침부터 저런 거를 먹이다니 참."라고 핫도그 얘기를 꺼냈다.

"아, 저희 엄마도 못마땅해하던데. 요즘 티비 보면 햄버거랑 짜장면, 그 라면 같은 거 어릴 때부터 먹이던데."

"그... 햄버거 병인가. 그것도 난리잖아. 안산에!" 하면서 아줌마는 유치원 햄버거 병으로 몇 명이나 어떠한 만성질환을 얻게 되었는지에서 시작하여, 유치원에 애들 믿고 맡기기가 못 미더운 점을 말하기 시작하더니 밖에서 고기 사 먹는 걸 지양해야 되는 이유를 말하면서 자기가 무한리필 고깃집에 갔다가 배탈이 나서 다음날 일할 게 걱정됐는데 아침에 지사제 두 알 먹으니 괜찮아졌다는 얘기로 옮겨 자세히 말했다.

"아 그런데, 트럼프가 그 대학원생, 뭐 유학생 다 나가라고 했다며. 우리 조카도 미국에 있는데, 나가야 되는 줄 알고 놀랐잖아.. 그.. 애들은.. 조카는 어려서 아니더라구." 라고 트럼프 얘기를 하다가 코로나 얘기를 하다가, "아, 요즘엔 제주도를 많이들 가대요?"라고 또 제주도 얘기를 시작했다. 생각이 안 나서 말이 끊겨도 굴하지 않고 계속 이어나갔다.


이번 주에 결혼하는 내 친구도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가는데. 지난주에 다른 부서 부장님이 자기는 주말에 제주도 다녀왔다고 하던데. 존재도 모르던 한 직원이 지난주에 결혼했다는 소식은 알게 되었다. 오늘 우연히 그 부서 조직도를 보다가 그 직원이 휴가 중으로 뜬 것을 봤다. 아 이 직원도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갔을까?


귀여운 공룡상을 하고 차분한 말투로 이야기를 하다가 별로 웃기지 않는 얘기에도 빵 터지며 크게 깔깔대고 웃는 재미난 캐릭터의 아줌마는 무언가 수익에 조바심 내지 않고 그냥 제 발로 찾아서 들어오는 손님만 받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는 적막한 분위기와 더불어 그 공간을 신비롭게 했다. 주말임에도 이런 피크타임에 손님이 나 혼자 이렇게 한 시간 동안 있다니. 프라이빗한 케어를 받는 느낌이 들면서도 수입은 괜찮으실까? 하고, 하루에 얼마를 번다면, 일주일엔 얼마, 한 달엔 얼마, 하고 나도 모르게 계산을 하고 있었다. 머리를 하고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는 생각보다 너무너무 저렴한 가격에, 아 이러면 손님을 정말 많이 받아야 할 텐데, 했다. 지도에도 나오지 않고 홍보도 전혀 안 하는 곳임에도 한 명이 나가면 좀 이따 한 명이 들어오고, 손님은 뜨문뜨문 계속 있는 것 같긴 해서 다행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신음하는 이웃과 고통을 분담하는 내가 되기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