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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Jul 31. 2021

사별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별은 사별과 같다는 말이 정답이다. 누구나 그렇듯 나는 이별을 싫어한다. 웬만하면 앞으로 평생 다시는 그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는 사실, 그리고 친했던 사람과의 갑작스러운 분리는 감정적으로 고통스럽다. 이별 후 감정 소모가 싫어서 사교성을 죽이고 무덤덤한 채로 다닌 적도 있다.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도 싫고 정을 쏟기도 싫었다. 그런데 그러면 나 자신을 잃은 것 같고 우울해지는 것 같다. 사람이 활기가 없고 아우라가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이 상태가 나은 것 같았다.


작년에는 결혼을 하자는 사람과 이별을 했다. 그 사람을 많이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어찌됐건 결혼을 생각해보는 사이였던 사람과의 갑작스러운 단절은 처음 겪는 일이어서 힘들었다. 배신감도 들었다. 나를 평생 사랑하겠다고 나를 선택한 사람이, 그렇게 유별나게 나를 좋아한다고 했던 사람이 한순간에 마음을 돌리고 떠난다는 걸 쉽게 받아들이고 일상을 살기는 누구도 쉽지 않다.


“나는 마음이 잘 변하지 않아, 평생 마음이 변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 너를 대신해서 죽어줄 수도 있어, 너를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라는 말은 결국 지킬 수 없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때 당시는 그의 순수함을, 그 말을 진심이라고 느꼈다. 그런데 결국 그에게 나는 평생 지켜주고 싶은 소중한 사람은 아니었다. 소중하게 지키고 싶은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와 이별의 시간을 보낸 약 3주 동안은 기억하고 싶지 않을 만큼 지옥 같았다. 헤어진 지 몇 달 후 어쩌다 잠깐의 안부를 물으며 문자를 하던 중 그는 그 일을 “미안 내가 너무 모질게 했어.”라며, 모질다는 세 글자로 가볍게 압축했다.


그때의 그는 나를 좋아했던 사람하고는 딴 사람이었다. 분노와 언어폭력이 심했다. 그리고 모두 내 탓으로 돌렸다. 자신이 이렇게 행동하는 건 모두 내가 잘못했기 때문이라며 정당화했다. 처음부터 한결같이 나의 사정과 나의 말을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힘들지, 내 감정은 어떨지에 대한 공감은 없었고 그냥 모두 내 탓만 했다. 모든 것은 내 잘못이라고, 절대악이었다고 귀결되었다. 나를 죽이고 싶다, 차에 뛰어들어 죽어라, 칼을 들고 가서 지금 당장 내 등에 칼을 꽂고 싶다고 했다. 못 배운 애새끼같이, 라는 말도 썼다. 나를 들들 볶았다. 무서웠다. 사람이 아무리 마음이 힘들어도 이렇게 변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이런 사람을 처음 접해봤다. 원래 이런 사람이었던 것일 수도 있고. 차단을 하면 직장으로 전화를 하거나 쫓아올 것 같았다. 직장에 찾아와 난폭하게 해코지를 할 것 같았다. 내가 그를 그렇게 만든 것 같은 미안함과 측은함도 약간, 이런 사람인 줄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라는 안도와 이 사람에게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 나에 대한 마음이 이 정도밖에 안되었구나, 그 마음만큼은 믿었는데 하는 배신감, 나를 좋아하는 마음을 나 혼자 너무 크게 생각해서 착각이었던 것처럼 그 시간과 추억이 부정당하는 것 같은 마음, 더 이상 그때의 그는 평생 만날 수 없겠다는 슬픔 등의 감정들이 몰려왔다.


그와 헤어지고 나는 그의 세계로부터 매일 조금씩 도망쳤다. 추억 속의 그는 우리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가서 고스톱도 치고 싹싹했다. 나를 향한 마음이 너무 큰데 나는 부응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가슴에서 울컥하는 마음이 파도쳤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나를 아끼고 항상 생각해줬다. 나의 하루하루의 감정을 신경 써주고 pms를 치료해주려고 애써줬다. 자기는 pms 치료사라면서. 가끔 평행세계에 가서 그를 만난다. 그는 주위에서 오히려 더 많이 느낄 정도로 나를 유난스럽게 좋아했다. 일생에 진짜 ‘사랑’을 해보지 못하는 사람도 많은데 그는 진짜 사랑에 빠져 사랑을 하는 사람 같았다. 정말 행복해 보여서 부러울 정도였다. 사랑 표현도 잘했다. 순수해 보였고 아이 같았다. 사춘기 소년 같았다. 여자 친구와 여자 친구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이전에 알던 사람이 아니었다. 사랑을 가득 느끼게 해 주었다. 나를 좋아하는 척하는 게 아닌가, 좋아하는 게 맞나 하는 의심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외면하면 그를 죽이는 것과 다름없다고 느낄 정도였다.


나는 그와 사별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너를 어떻게 잊겠어. 그와 단절된 채 살지만 기억이 잊히지는 않는다. 용서가 되지 않는다고 그립지 않은 것은 아니다. 준비가 안된 채로 모든 것이 댕강 잘려 나갔다. 평생 그를 볼 수 없지만 기억은 할 것이다. 나중에 할머니 나이가 되어(그때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청년기를 돌아보았을 때 나를 많이 사랑해준 그가 생각날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 프로포즈를 받을 때가 언젠가 온다면, 그가 생각나 눈물이 많이 날 것 같다.


대리님도 비혼이시죠?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결혼을 인생의 목적처럼 추구하는 유형의 사람 같지 않아 보인다고 한다. 결혼은 내 인생의 목적이 아니다. 그렇다고 결혼을 하기 싫은 것도 아니다. 정말 정말 그 사람을 사랑해서 같이 살고 싶고, 서로 의지하고 재미있게 살아가고 싶은 사람을 만나면 결혼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사랑을 하고 싶지 않다는 뜻도 아니다. 결혼을 하기 위해 누군가를 찾아 나서는 노력을 하고 싶지가 않다. 게으르고 귀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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