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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Mar 13. 2023

생리하는 날

생리를 할 때가 된 것 같은데, 주말에 하면 좋겠는데 왜아직 안하지 하던 차 월요일 새벽 여섯 시쯤. 축축한 기분과 확신이 들어 옷방으로 가 불을 켜고 연두색 organyc 생리대 상자를 뜯었다. 그리고 새 팬티와 함께 화장실로 갔다. 평소에는 직구로 여러 개를 사다가 환율이 올라 매달 올리브영에서 산다. 할인행사를 할 때 사면 작은 건 6,400원, 큰 건 6,700원이다. 변기에 앉아 팬티를 확인해 보니 역시나 생리가 맞았다. 다행히 잠옷까지 젖지는 않았다. 생리대를 두 개 이어서 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다리 밑에 놓인 멀티탭에서 찜질기가 꽂혀있는 불을 켜고 평소처럼 찜질기를 8시간, 중으로 놓고 배에 올려놓는다. 아랫배가 아프다. 그래도 조금 전에 일본에서 사 온 이브 한 알을 얼른 뜯어먹었다. 평소엔 이 닦기 전에 물 마시는 걸 싫어하는데 아프니 급하다. 진통제가 얼른 효과를 발휘하기를 바라며 천장을 보고 눕는다. 알람이 울리기까지 1시간 반 정도 남았다, 하고 생각했다. 다시 잠들기 전에 핸드폰을 키거나 시간을 보는 행위는 불안함을 자극해서 오히려 더 잠을 안 오게 한다는 기사가 생각났다. 아 시계를 보고 싶지 않은데 왜 보고 싶지, 하면서 발 쪽에 놓은 핸드폰을 열어 본다. 나는 생리하는 날짜에 이모티콘을 넣어 생리일을 표시해 두고 아이폰 건강앱에 증상을 기록해 놓는데, 굳이 이 시간에 그게 하고 싶었다. 생리량 적음, 증상에는 생리통.


7:39에 알람이 울렸다. 평소처럼 다시 울리기를 눌러 10분 더 누워 있었다. 진통제의 효과인지 배가 조금 덜 아프다. 10분 뒤에 알람이 울리자, 안 일어나질 줄 알았던 몸이 의외로 벌떡 일어나 졌다. 화장실로 갔다. 세수를 하자 새빨간 물이 뚝뚝 떨어진다. 왼쪽 코에서 또 피가 난다. 요즘엔 일주일에 한 번씩으로 더 빈도가 높아졌다. 뭐, 난 코피가 자주 나니까 당황스럽지 않다. 평소엔 물에 몇 번 흘리면 멈췄는데 그냥 휴지로 틀어막고 세수를 시작할걸. 오늘은 좀 오래 나서 시간을 많이 허비했다. 씻고 나와 화장대에 앉으니 8시 15분이 되었다. 몸에 힘이 없어 계속 구부러진다. 대충대충 하자. 에어랩을 할 시간은 당연히 안된다. 머리라도 말리는 게 다행이다. 향수 쪽에 눈이 갔다. 오늘은 구찌 길티 향수를 양쪽 머리끝에 뿌렸다. 그리고 진통제를 한 알 더 먹었다. 진통제를 먹을까 생리 전 증후군에 효과가 있다고 해서 먹기 시작한 달맞이꽃 종자유 한 알을 먹을까 하다가 지금 당장 아픔이 가시길 바래서 진통제를 먹었다. 달맞이유는 빈속에 먹으면 좋다고 해서 아침마다 한 개씩 먹는다.


약간 청록빛이 도는 잿빛 스타킹을 꺼내 왼쪽 발부터 넣는다. 생리할 땐 바지보다 스타킹을 신고 딱 달라붙지 않는 치마를 입는 게 좋다. 바지는 샐 수도 있고 왠지 한 번 입고 빨고 싶은 마음이 들어 드라이해야 하는 옷은 입기 찝찝한데 스타킹은 그냥 벗어서 세탁기에 넣으면 되니 괜찮다. 아랫배가 뭉근하게 아파온다. 생리를 하기 일주일 전부터 아랫배가 부푼다. 내가 뱃살이 이렇게 많이 쪘나 싶게 충격적으로 부푼다. 요새 살이 찌기도 쪘지만 호르몬 때문이야, 생리가 끝나면 가라앉을 거야, 하고 생각하며 부푼 아랫배를 감싼다. 이브 한 알을 더 먹는다. 붙이는 핫팩이 있으면 좋겠는데 없다. 하루 휴가 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오늘 당장 급한 일은 없는데 새로 간 부서는 인원도 적고 오늘 자리 비우는 사람도 세명이나 돼서 그냥 나가야 할 것 같다.

이제 신발을 신고 나가려는데 지금 룩에는 다홍색 구두가 어울린다. 아니야 생리도 하고 몸도 안 좋은데 운동화가 편하지, 하고 운동화 쪽으로 눈을 돌리다가 파란색 빤짝이 케즈를 꺼냈다. 그래 이것도 편해. 너무 딱 달라붙지 않아 허리가 편한 머메이드 형태의 청치마에 밑단에 까만색 샤가 달린 치마를 입었다. 거리에 나왔다. 엄마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다섯 살짜리 남자아이가 초록색에 황금색 코끼리 무늬의 태국 옷 같은 잠바를 입었는데 눈이 갔다. 기운이 없는 눈으로 잠깐 쳐다보다 시선을 거둔다.


오늘부터는 춥다고 하더니 추워졌다. 그래도 간간히 햇빛이 비치는 구간은 따뜻하다. 지하철에 탔다. 자리에 앉자마자 지금의 나를 글로 쓰기 시작한다.  평소에 글감이 없는 것도 아닌데, 아니 오히려 더 많은데 왜 지금 이러한 몸 상태에 굳이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건지. 본능적인 이끌림으로 지금을 결정했다. 지하철역에 도착하고 마을버스로 환승하려는 줄에 섰다. 버스에 타니 9시 2분이었다. 약 15분 달려 내렸다. 내리는 곳 근처에 약국이 있어서 배에 붙이는 핫팩이 있냐고 물었는데 두 군데 다 없었다. 회사까지는 걸어서 15분 걸리는데 아슬아슬했다. 근데 뛸 힘은 없다. 1-2분 지각할 거 같은데 그냥 지각을 해야겠다, 하고 걷는 대로 걸었다. 건물에 도착했는데 딱 9시 30분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근무하는 층으로 가서 출퇴근 리더기를 찍으니 2분 늦었다. 10분 이상 지각이면 30분제 휴가라도 올리겠지만, 1-2분은 봐준다. 그냥 나중에 감사받을 때 한마디 들으면 된다.


옷을 벗어 옷걸이에 걸고, 털 슬리퍼로 갈아 신고 따뜻한 물을 떠다가 자리에 앉는다. 수요일에 예약한 필라테스를 취소했다. 천천히 업무를 시작한다. 오늘 하루 얼른 지나서 집에 가서 눕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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