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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Sep 12. 2023

녹색광선

“녹색광선이란 영화 분위기와 감성이 언니랑 비슷해. 에릭 로메르 감독 영화 하는데 같이 보러 갈래?” 하고 언젠가 친구가 말했다. 시간이 안 맞아 결국 못 봤지만 나를 떠올렸다니 관심이 갔다. 녹색광선이란 글씨 자체에서 눈부신 신비로움이 느껴졌다. 영화의 설명을 찾아보았다. 나도 녹색광선을 찾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나의 상상 속의 녹색광선은 진하고 부드러우며 찬란하게 아름답다. 녹색광선에 마음을 빼앗긴 나는 골반까지 내려온 비정상적으로 긴 머리를 풀어헤쳤다. 따뜻한 여름 고요한 지중해 바다에 있다. 2017년 여름 내 머리는 밑가슴을 타고 흐를 정도로 아래까지 길었다. 내 인생에 가장 길던 머리를 호르몬에 의한 충동으로 거울을 보며 댕강 잘라버렸다. 이유는 없었다. 사무실에서 거울을 보다 갑자기 가위를 가지고 와서는 한쪽 머리를 잘랐다. pms의 영향인지 나는 언제나 불완전하다.

“과장님 녹색광선 책 알아요? 샀는데 너무 예뻐요.” 하고 동료가 메신저를 보냈다. 녹색광선? 그거 에릭 로메르인지 영화 아니에요? 알고 보니 출판사 이름이었다. 책을 주문하려고 보니 카뮈, 사강, 피츠제럴드 등의 글 중 처음 보는 책이 많아 보인다. 어떻게 이름을 녹색광선으로 이렇게 감각적으로 지었을까.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문장이 있는 책들로 구성되어 있다. 북 큐레이션 느낌. 듣던 대로 책도 예쁘다. 카뮈의 결혼, 여름이라는 책을 주문해서 부산 출장길에도 가져가서 읽었다. 한 문장 한 문장 모두 읽기 아까울 정도로 아름답고 공감 간다.


<결혼, 여름>이 너무 좋아서 <행복의 나락> <패배의 신호>도 주문했다. 특히 자연의 색채감 있는 묘사는 정말 생생하고 아름답다. 아름다운 우리말로 다가오는 번역도 정말 좋다. 카뮈는 코로나 시기에 <페스트>를 읽고 <반항하는 인간>이라는 책의 치열한 사유도 공감이 많이 되었는데 20대의 나이에 이런 생각을 하고 느끼고 글을 쓰다니, 나는 뭐 했지 싶었다. 그때 사람들은 티비도 안 보고 뭐 놀게 없어서 책 읽고 치밀한 사유를 할 기회가 더 많았을까. 아니야 그래도 놀 사람은 놀고 생각 못하는 사람은 또 못했겠지.


태양과 색채의 심벌즈가 머릿속에서 울려 퍼질 때, 그늘이 짙게 깔린 홀과 초록색 아이스민트티 큰 컵으로 한 잔이란 얼마나 상쾌한 환영법인지.

아침 햇살 아래, 커다란 행복이 공간 속을 유영한다.

자기 자신이 되기, 자신의 진가를 되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아름다운 존재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한 자연스런 자부심을 지니고,

우리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우리에게 값싸게 남발했던 영원성

모든 진실에는 쓴맛이 섞여 있다는

-알베르 카뮈 에세이, <결혼, 여름>


내년 여름엔 카뮈가 자란 알제리를 포함해서 모로코, 튀니지 북아프리카와 터키, 조지아 등도 여행하고 싶다. 기회가 되면 하루만이라도 노르웨이에 들러 뭉크 미술관을 꼭 가고 싶다. 유럽 여행을 하자면 너무 깊어지는데 터키,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은 친한 현지인 친구들이 살고 있어 놀러 가기 좋다. 대학후배도 그리스에 있다고 해서 들를까 싶다. 새로운 영감을 받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 나의 녹색광선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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