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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Jul 16. 2018

인턴은 아프지도 말라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아니래요.




출근하자마자 몸이 너무 안 좋아서 말씀드리고 내과를 찾았다.


"어이구 또 오셨네. 열이 있으시네.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 의사가 말했다.


"열이 나서 주체할 수 없이 너무 어지러워요."


"목이 이상한 거 같은데. 자, 아 해보세요." 하더니 목구멍을 들여다보았다.


"목이 많이 부었네. 저번에도 똑같은 증상으로 오더니. 인후염이에요. 목이 부으니까 몸에 열이 나는 거지. 저번에도 Hydration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물 많이 안 마시죠? 매일 물 2L씩 마셔야 되고  일단 가셔서 저거 한 병 다 마셔요."라고 하면서 저번과 같이 페트병에 든 게토레이 한 병을 가리키며 말했다. 게토레이를 광고하려는 건 아니고 저게 제일 좋다고 말했다. 게토레이와의 모종의 커넥션에 대한 의심을 사전에 잠재우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아! 네.. 네."



"그런데 직급이 어떻게 돼요? 나이를 보아하니 우리 아들하고 동갑이네."


"아 저 인턴이요." 인턴 할 때의 일이다.


"어이구. 인턴이면 그냥 일해야겠네. 높은 직급 같으면 이 정도면 조퇴하고 가서 쉬라고 해야 하는 상태예요. 근데 인턴이니 약 먹고 버텨야지. 우리 아들하고 같은 나이니 자식 뻘이라 걱정되는 마음에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권리다 뭐다 해서 사회적으로 말이 많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선진국이 아니에요. 딱 8시간만 일하고 간다? 우리나라가 미국도 아니고 선진국하고 똑같은 조건을 요구하면 어떡해. 우리도 인턴 다 해봐서 알지. 우리도 인턴 할 때 잠 몇 시간도 못 자고 며칠을 버티고 그랬어요."


나는 조퇴할 생각도 없었는데. 나는 막상 선진국처럼 나에게도 아플 때 쉴 권리가 있으니 휴가를 쓰게 해달라고 요구할 생각도 없었는데 의사는 나에게 이때다 싶어 요즘 젊은이들의 의식구조와 요구사항에 대한 평소의 생각을 풀어내는 것 같았다. 의사도 바쁠 텐데 20-30분을 나를 붙잡고 이야기했다. 그 당시에는 불쾌하지 않았다. 아프다고 와서 힘아리 없이 앉아 있는 사회 초년생이 걱정되는 진정 어린 마음이 느껴지긴 했으니까.

 

"오늘 그럼 9시 다 돼서 온 거예요? 평소에도 이 시간에 출근하시나. 어디서 다니시길래."


내가 9시 조금 넘어 내과를 찾았으니 이때쯤 출근해서 아파서 바로 온 걸로 생각하고 물은 것 같았다. 원래는 통근버스를 타고 다니다 통근 버스 시간에 맞추려면 1시간 반 전에는 일어나야 해서 몸이 더 피곤한 것 같아 조금 더 자고 9시에 맞춰 버스-지하철로 어디에서 온다고 말했다.


"허허 참.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더라도 일찍 일어나서 통근 버스를 타고 다니셔야 돼. 거기서부터 아침에 서서 환승하고 그러면 몸이 더 피곤하지. 통근버스는 타면 앉아서 잘 수 있고 또 바로 앞에 내려주잖아. 출근길에 진을 다 빼니 일할 때 체력이 딸리지. 앞으로는 본인 체력을 위해서 무조건 통근버스 타고 다니셔. 통근버스 타면 8시쯤 도착하잖어. 인턴이면 9시 땡 하고 오면 어른들이 좋아하나. 막내가 1시간 전에 와서 아프다고 병원 갔다 오겠다고 하는 거랑 9시 땡 하고 와서 오자마자 아프다고 하는 거랑 벌써 다르다고. 내가 이런 말 한다고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말아요. 우리 아들 뻘이고 또 걱정돼서 말해주는 거니까. 어디 가도 이런 말 안해준다구. 주사 놔줄 테니까 맞고 가시고 물 많이 드시고. Hydration이 최고야. 약은 그다음이야."


"네! 감사합니다!"


이 의사의 말이 쓰고 꼰대 같은 말이었지만 들으면서 반감이 들지는 않았다. 다만, 일할 몸상태가 아님에도 팀에 말하지 못하고 일을 해야 한다는 게 슬펐다.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열이 많이 나서 목 위부터 얼굴과 눈알까지 온통 뜨거웠고,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다행히 크게 할 일이 없었다. 컴퓨터를 보며 그저 자리를 지키며 퇴근 시간을 기다리면 되었다.


정말 그 이른 시간에 통근버스를 타고 다녀야 될까. 그러면 매일 퇴근하자마자 저녁 먹고 자야되는 거네. 다들 이렇게 일하며 먹고 살텐데.. 나만 부대끼는 게 아닐텐데.. 사는 게 참 힘들다. 몸이 안 좋으면 나만 손해인데 체력관리는 어렵다.  


친구들에게 말했더니 의사의 말에 하나같이 분노하며 시대착오적인 발언이라며 당장 인권위원회 같은 곳에 알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 의사에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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