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속 슬로 시티, 치앙마이의 첫인상

치앙마이(1)

by 모네


치앙마이는 chilax 할 수 있는 느리고 스타일리시한 시골이다. 한국에서 온 비행기가 싣고 온 거의 한국 손님만 있는 것 같은 작은 공항에서 무진장 빠른 입국 심사를 거친 첫날밤. 숙소까지 볼트를 불렀더니 도착한 차 한 대에서 내린 30대 즈음으로 보이는 현지인 남자는 합장을 하며 인사한 뒤 내 캐리어를 가만히 두라는 손짓을 하고는 자기가 실어 트렁크에 싫었다. 그렇게 처음 마주하게 된 현지인은 조용하고 차분하지만 친절하고 긍정적인 표정을 가졌다. 발리 사람들 같은 성격이 느껴졌다.


숙소는 늦은 밤 체크인이 안되어 경비 아저씨 같은 사람에게 맡겨놓은 키를 찾아 자고 다음날 아침에 사무실에 와서 체크인을 하라고 했다. 경비 아저씨가 그 시간에 제대로 있을까. 혹시 비행기가 연착되면 아저씨를 잘 만나 잘 수 있을까? 칼같이 정확하고 빠른 일처리의 우리나라와 달리 다른 나라에서 당한 적이 많아서 우려가 되어 레지던스에 떠나기 이틀 전쯤 리마인드를 위한 메일을 보냈고 짧지만 알겠다고 확신을 주는 답장을 바로 받았다. 예상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했는데도 입구에서 어슬렁 거리니 우려와 달리 아저씨를 쉽게 만날 수 있었고, 세 장의 카드 중 내 이름을 묻더니 한 장의 카드를 주었다. 종이 봉투에는 열쇠와 당부사항이 들어있다. 나 말고도 다른 한국이름의 카드가 두장 더 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도 밤비행기 도착이라 미리 소통하여 신청했구나, 하고 생각했다.


아저씨는 친히 방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66일 동안 묵게 된 숙소는 과연. 샤워 호수 수압이 매우 낮은 것 빼고는 방도 널찍하고 베란다도 있어서 좋다. 베란다에는 빨래를 널 수 있는 건조대도 있다. 충분히 큰 옷장엔 옷걸이도 종류별로 잔뜩있다. 냉장고도 꽤 크다. 안에 생수 두병이 들어있다. 후덥지근해서 얼른 에어컨을 켰다. 비행시간이 4시간 55분 정도로 예상 시간보다 빨리 도착하여 배도고프고 연 식당이 있을 것 같아 뭐라도 먹자 하고 위치를 켜고 주변에 연 식당을 찾아보았다. 걸어서 5분 거리에 늦게까지 여는 로컬 식당이 있어서 대충 짐을 정리하고 필요한 돈만 꺼내 가방에 넣고 나온다.


우기라더니 역시나 비가 추적추적 오는데 강하게 오지는 않고 얇고 부들부들한 비가 온다. 맞을만한 정도이고 시원해서 좋다. 로컬식당은 에어컨 없이 선풍기 바람만 있어서 후덥지근하다. 메뉴가 많은데 팟타이, 페낭 카레, 그 소고기 바질 덮밥 등이 여행자들을 위해 영어로 표기되어 있다. 코코넛카레를 먹고 싶은데 사진과 가격을 보니 별로 내키진 않아서 무난한 팟타이를 시킨다. 팟타이 79바트, 코코넛 56바트. 다해서 한국돈 5600원 정도. 로컬식당은 미슐랭 식당이어도 보통 메뉴가 2천 원 대에서 비싸야 3천 원 초반이다. 태국, 라오스 여행할 때 로컬식당 길거리 팟타이를 좋아해서 늘 시키는데 아쉽게도 여기는 좀 짜서 입맛에 안 맞다. 첫 식사에 실망해서 아쉽지만 배고픈데 첫날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게 어디야.


다 먹고 들어갈 때 집 앞 편의점을 구경했다. 유튜브 보니 태국은 화장품을 소분해서 조금씩 맛보기 식으로 편의점에서 많이 판다는데 편의점 문을 열자마자 들어가니 화장품들이 좌르륵 보였다. 편의점에는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현지인들, 간간히 한국인, 일본인 남자와 국적을 가늠하기 힘든 우리 기준의 외국인스러운 외국인도 있었다. 한참 동안 편의점을 구경했다. 냉장고에 있는 물은 7바트 정도, 200원대에 살 수 있다. 편의점도 싸서 물을 굳이 힘들게 마트에서 이고 지고 오거나 그랩으로 배달을 시키지 않아도 되겠다. 편의점을 샅샅이 탐구하는 사람처럼 호기심을 가지고 오랜 시간 서있었다. 빈손으로 나가기 아쉬우니 뭐라도 사 갖고 나가야겠다. 과자 코너에 가서 과자를 구경하는데 레이 감자칩이 종류가 많다. 30주년 기념 리미티드 에디션도 있다. 이것저것 사 먹어 보고 싶지만 요즘엔 건강 생각 + 살 빼고 싶어서 과자가 쉬이 잡히지 않는다. 그냥 해산물 맛 하나 집어서 사서 먹어 봤는데 그냥 그렇다.



비행기에 5시간 동안 앉아 있느라 허리가 부서질 듯 아프고 종아리가 너무 쑤신다. 하루 종일 피곤했는데 왜 이리 잠이 안 오지. 한 3시경에 잠든 것 같다. 에어컨을 켜고 자다가 베란다 문을 열고 자니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 온갖 종류의 새들이 짹짹 거리는 소리에 새들이 싸움이 났나, 대체 새소리가 어떻게 이렇게 시끄러울 수가 있지? 괴로워하며 다시 잠을 청하는데 꿈에서도 새가 짹짹 거리며 선잠을 30분 정도 잤을까. 핸드폰을 보니 시간이 6시 5분이다. 구구구 낮은 소리로 우는 새부터 딱 들어도 몸집이 작은 갈색일 것 같은, 짧고 자주 우는 새 등. 잠을 못 자서 짜증이 가득 나면서도 자연 탐사를 좋아하는 호기심 많은 초딩들은 여기 오면 천국이겠다 싶었다. 이렇게 다양한 새소리를 처음 들어 본다.


도저히 잠을 더 잘 수 없어 양치하고 대충 머리를 올려 묶고 반바지를 갈아입고 나왔다. 찹쌀떡 같은 동남아 떡, 바나나잎에 싼 찹쌀밥, 꼬치고기구이, 생선 등 아침 가판대가 나와서 구경하면서 지나가는데 별로 썩 내키지는 않는다. 8시에 여는 근처 마트를 찾았다. 잭프룻을 두 팩 사고 요거트를 샀다. 그렇게 고대하던 잭프룻은 집에 와서 하나 뜯어서 먹어 보는데 아직 덜 익어서 시큼하다. 어, 이 맛이 아닌데. 숙성이 더 필요한가 보다 좀 내놔야겠다. 나중에 쇼핑몰에 있는 마트를 가서 딱 봐도 당도가 높게 익어 보이는 잭프룻을 두 팩 더 사서 먹는데 천국의 달고 고소한 맛이다!


ATM에서 우리은행에서 환전한 돈을 찾아서 잔금을 내러 사무소에 갔다. 할아버지와 아줌마가 있었는데, 아줌마 앞에는 중국 엑센트의 까만 머리 까만 뿔테의 올림머리의 남자가 유창한 영어를 구상하는데 홍콩 사람인가 싶기도 하다. 되게 외향적이고 쿨한척하는 사람이었다. 할아버지가 자기 앞에 와서 앉으라고 해서 응대해 주는 건 줄 알았는데 여기서 잠깐 기다리라는 뜻이었다. 아줌마는 영어를 잘했다. 할아버지는 여권만 받아서 복사해 주는 역할이었다. 할아버지 주변에서 갑자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뽀얀 인절미 색의 커다란 리트리버가 나타났다. 강아지를 무서워하지만 저 리트리버는 눈빛부터 엄청 순하고 사람이 있다고 눈이 돌아서 달려드는 그런 강아지가 아니라 무심하고 심심하게 지나가서 좋았다. 까만 홍콩남이 나가고 나자 내 차례가 되었다. 먼저 한 달치만 내고 한 달 뒤에 다시 와서 전기세와 함께 내라고 하는데 이렇게 큰돈을 보관하는 게 더 그렇다고 그냥 한 번에 내겠다고 했다.


"아, 여기 이렇게 이른 아침에 새들이 엄청 크게 짹짹 거리며 노래를 부르는 게 흔한 일인가요? 아니면 오늘만 그런 건가요? 제가 막 도시에서 와서 그런 건지 아침부터 너무 시끄러워서 도저히 못 잤어요ㅠㅠ..." 하고 아줌마에게 말했다. 아줌마는 당황하면서, 새소리가 그렇게 크냐고 방 안에서 그렇게 크게 들리냐고 물었다. 원래 그렇다고 했다. 강아지를 보러 자주 드나드는 것 같은 어떤 동남아 외모의 숏커트를 하고 세련된 린넨옷을 입은 아줌마가,

"원래 자연의 도시라서 그런 거예요. 새소리가 자연인데 시끄럽다니요. 한국 드라마를 보면 한국 사람들이 자연을 좋아하던데 안 그런가 봐요?" 하고 나에게 무안하게 말했다. 졸지에 자연을 사랑하지 않는 한국인이 되었다. 아니 소리가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잤다고 하는데 뭐 그럴 수도 있지. 시끄럽다고 환불을 해달라고 방을 바꿔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질문한 건데.. 내가 부끄러워해야 하는 건가? 하고 아줌마에게는,

"제가 도시에만 있었어서 이런 자연으로 둘러싸인 곳은 처음이라 적응이 안 되었나 봐요. 어제가 첫날이었으니 앞으로는 나아지겠죠."라고 하니 정 그러면 귀마개를 끼고 자라고 하고 떠났다. 아니 내 방에서 귀마개까지 끼고 생활을 해야 하나. 매일매일 이러면 쉽지 않겠다, 하고 생각했다. 실제로 다음날에도 이 미친 새들은 해만 뜨면 깍깍거리면서 사방을 날아다니며 입체적인 소리를 내가며 야외무대를 꾸민다. 미라클 모닝이네.


"이건 새들이 시끄럽게 해서 잠 못 자서 대신 미안하다고 주는 선물이에요." 하면서 아까 그 아줌마가 다시 들어오더니 하얀 비닐봉지에 망고 한 가득을 주었다. 내가 고맙다고 너무 과하다고 했더니 유기농에 좋은 거라며 많으면 나눠 먹든지 하라고 했다. 태국인의 인정을 느끼며 한 손으로 들 수도 없이 무거운 망고를 한가득 들고 방으로 돌아왔다. 아직 덜 익어서 익혀 먹으려고 잭프룻 두 팩과 함께 베란다에 두었다.



대문자 p는 아니어서 그래도 지도에 먹을 데를 여러 군데 표시해 두었는데, 그중 한 곳으로 향하다가 음식점이 보이길래 어, 그냥 여기서 먹을까 하고 들어갔다. 계획도 즉흥적으로 세우는데 계획은 길가에 나서면 금방 달라진다. 역시나 로컬 식당이라 속옷까지 젖으며 먹어야 한다. 그래도 한 번 젖으면 포기하게 되어 괜찮다. 아침에 나갔다가 들어와서 샤워를 다시 하고 젖은 속옷과 옷을 빨고 또 널고 나간다. 하루 밖에 안되었는데 베란다에는 널어놓은 손빨래로 가득하다. 빨래하기 귀찮고 더워서 노브라로 다녀야겠다. 오늘은 노브라로도 괜찮을 만한 옷을 입고 나왔다.


태국에서도 삼겹살을 잘 먹는지 삼겹살 덮밥을 많이 판다. 어쩌다 두 번을 먹게 되었는데 입맛에 잘 맞다. 혼자 와서 먹는 현지인들이 많다. 식당 테이블에 항상 뜯지 않은 실온의 물이 놓여 있는데 공짜인 건가 돈 내는 건가. 시원하지도 않은 물이 땡기지는 않고 음료가 있으면 같이 시켜 먹는데 fresh juice가 아니면 그냥 참는다. 현지인들은 식당 구석에 있는 곳에 아이스 박스를 열어 얼음을 꺼내고 큰 알루미늄 통 같은 데서 물을 따라먹는데 저렇게 먹는 건가. 더워서 움직이기 귀찮아 그냥 음식을 기다린다. 삼겹살 덮밥은 와로롯시장에 갔을 때 가려고 했던 근처 미슐랭을 찾아서 갔는데 거기가 더 맛있었다. 외국에서 음식이 맛있다고 할 때는 한국인 입맛에 잘 맞는가가 기준이 되는데 역시나 입맛에 잘 맞다. 돼지갈비와 삼겹살이 올려져 있고 갈비 양념 같은 달달한 소스를 뿌려주고 슬라이스 된 오이 두세 개와 계란 반 개, 그리고 국물이 같이 나온다. 식당마다 나온 국물은 된장국 같은 색인데 매콤하다. 아저씨 아줌마들이 좋아할 국물 맛인데 나는 그냥 보통이다.



마트에서 소원하던 잭프룻도 사고, 집에서 냉장고에 넣어 놓고 마실 코코넛도 한 통 사고(한국보다는 반값정도), 아까 아침에 요거트 산 마트에서 꿀이 없어서 못 사서 작은 꿀도 산다. 태국 하면 다양한 종류의 두유! 한쪽 면에 가득하다. 너무 많아서 뭘 먹어야 될지 모르겠어서 정리하고 있던 유니폼을 입고 있는 여성 직원에게 뭐가 맛있냐고 물어보았다. 영어를 알아듣지 못해서 good, 하고 손으로 따봉을 들었다. 핸드폰을 꺼내서 번역기까지 쓰기는 귀찮았다. 그랬더니 흑미와 검은깨로 이루어진 음료를 하나 추천해 줘서 담았다. 옆에 설탕이 적게 들어 있는 버전도 있던데 이걸 추천해 주길래 그냥 먹어보자, 하고 카트에 담았다. 집에 와서 마셔보니 아침햇살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너무나 맛있는 쌀음료. 검은콩 두유와 미숫가루가 너무 되직하게 느껴지는데 이건 라이트하고 고소하고 맛있다. 다음엔 다른 맛의 쌀음료를 또 사봐야지.


논문 초안을 휘갈기면서 써볼 노트가 필요해서 마트와 길거리에 있는 큰 문구점도 갔었다. 벌써 만 사천보 째라서 잠도 못 자고 발도 아프고 지쳐 있는 상태이다. 문 닫을 시간인 8시에 임박한 문구점에는 교복 입은 소녀들이 있었다. 치앙마이에서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겠지. 볼펜 코너에는 한국처럼 다양한 종류들의 한국, 일본 산 수입 볼펜들이 잔뜩 꽂혀 있다. 수입이라 가격 메리트는 없다. 자체 브랜드는 없나? 하고 살펴봤는데 마땅한 게 없어 가져온 펜을 써야겠다. 한국과 다르지 않을 아트박스 같은 문구점에서 태국 소녀들이 돌아다니니 한국의 나의 일상 속에서는 보지 못할 풍경이다.



저녁이 되어 카페와 바 등에 네온사인이 켜지는데 너무 힙하다. 뭐 서울의 힙지로, 성수동, 한남동(내가 아는 힙한 곳이 많이 없다), 아니면 도쿄나 대도시에 있을 법한 힙한 카페를 옮겨 온 느낌인데 조명과 분위기가 감각적이어서 그런지 대도시 느낌은 아니고 로컬 감성이 많이 난다. 길거리 카페가 발달한 하노이와 비교해서도 감성이 다르다. 더 느리고 한가하면서 힙하다. 우연히 올드타운의 재즈바 거리도 지나가게 되었는데 아직 7시 정도로 이른 시간이라 빈드럼만 있었다. 보라색 파란색 오묘한 조명과 감각적인 네온사인, 각국이 여행자들이 chill 하게 앉아 있는 너무 덥지 않은 그런 공간의 분위기가 너무 좋다. 5시만 되면 상점과 시장이 문을 닫고 카페들도 8시 넘어서하는 곳을 찾기 어려운 아침형 인간들의 마을이다.


횡단보도에서 불이 켜지기를 기다리며 문득 서쪽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멀리 산에 내려앉은 구름과 안개가 자욱해서 너무 신비롭고 멋있다. 그래 나는 태국 북부의 산으로 둘러 싸인 자연 속에 있구나. 저녁이 되어 시원해진 날씨만큼 기분이 좋다. 하루가 되게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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