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2)
치앙마이에는 질 좋은 무료 요가 교실이 매일 열린다. 원래는 공원에서 무료 요가를 제공했는데 우기에는 실내의 한 장소를 빌려서 한다. 매주 페이스북 페이지에 일주일 치 스케줄이 뜨고 관심 있는 수업이 있으면 자신의 매트를 들고 가면 된다. One nimman이라는 쇼핑몰은 아니고 인위적으로 세련되게 지어진 작은 쇼핑 스트릿 건물이 있는데 그곳에서도 매주 월, 수에 무료 요가를 연다. 시간을 맞춰서 한 주는 월요일에, 한 주는 수요일에 가봤는데 꽤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어디선가 요가복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타나 둘둘만 요가 매트를 펼치고 앉는다. 태국 현지 아줌마들도 있고 한국인도 꽤 있었다. 문을 열어놓고 강풍기를 틀고 하는데 땀이 엄청난다. 특히 끊임없이 이어지는 빈야사 요가가 반복되면 핑돌면서 어지럽다.
오늘은 페이스북 이벤트를 보니 쿤달리니에 정통한 선생님이 특별히 오셔서 요가를 진행한다고 해서 가려고 한다. 집 근처가 아니고 거리가 꽤 되어서 오토바이를 타고 가야 한다. 10시 반에 시작하니 10시 정도에 출발하면 될 것 같은데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냉장고를 여니 그릭요거트와 2주 전에 4개 묶음을 사고 아직도 남은 요거트 하나, 작고 쫄깃한 바나나 3개, 비닐봉지에 들어있는 리치와 망고스틴 여러 개, 그리고 맨 아래칸에 아직도 망고가 잔뜩 남아 있다. 요거트 하나와 작은 바나나를 꺼내 화장실에 가서 바나나를 물로 씻은 뒤 소파 앞 유리 탁자에 놓는다.
한국에서는 2-3시쯤 잠들어서 11-12시쯤 일어나는 생활은 했는데 여기서는 언제 자더라도 6-7시쯤에 알람 없이 깨진다. 미친 새들 때문이다. 해만 뜨면 깍깍거리는데 환장한다. 조용한 방으로 해달라고 해서 사람 소리와 비행기 소리는 안나는 방인데 방 앞에 숲처럼 나무들이 많아서 아침만 되면 모이는지 온갖 종류의 새들이 모인다. 다행히 2주 정도 되니 적응이 되어 6-8시 구간에 너무 스트레스받지 않고 어느 정도 눈을 더 감고 잠을 잘 수는 있게 되었다.
오토바이를 부를 때는 볼트와 그랩 둘 다 목적지를 검색해 본다. 일반적으로 볼트가 더 싸긴 하지만 그랩에서 프로모션 쿠폰 같은 걸 줄 때는 그랩이 더 쌀 때도 있다. 그런데 오늘은 볼트에서 30% 할인 바우처가 적용되어 저번에 검색했을 때는 40바트였는데 27바트면 갈 수 있다. 볼트를 불렀다. 1-2분 안에 온다. 아침이라 해가 쨍하진 않을 것 같아서 선글라스는 두고 나왔다. 어깨에 메는 가방에 인디핑크색 요가매트를 접어서 넣으니 꽉 찬다. 오토바이 기사가 오면 먼저 헬멧을 꺼내서 주는 사람이 있고 달라고 하지 않으면 그냥 출발하려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꼭 헬멧이 있냐? 하고 물으면 엉덩이 뚜껑을 열어서든 앞에 앞춤에 간이 주머니 같은 것에서든 꺼내서 주는데 딱 한번 헬멧에 없다고 한 사람이 있기는 했다.
요가하는 장소에 도착했다. 수업 시작 14분 전. 그래도 에어컨 있는 실내라 좋다. 한 1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맨 뒷자리 먼저 매트를 깔고 앉아 있다. 나도 그중 한 자리에 매트를 깔고 자리를 잡았다. 한국에서는 선생님이 앞에 가운데에 앉아 있으면 수강생들은 모두 선생님을 바라보고 일렬로 앉는데 여기는 선생님을 중심으로 가로 세로로 편하게 앉는다. 내 오른쪽에는 축구 유니폼 같은 걸 입고 길고 두툼한 양말을 신은 노란 머리의 백인 남자가 있고, 왼쪽에 약간 벽을 모서리지게 중국인 같은 작은 여자가 요가복을 잘 갖춰 입고 앉아 있다. 앞에는 선생님 쪽을 바라보고 가로로 백인 여자 두 명이 매트는 아니고 에스닉한 비치타월을 길게 깔고 자리를 잡았다. 되게 짧은 보라색 치마가 아슬아슬한데 속바지도 같이 합체되어 있는 옷이었다. 그 옆에 여자는 배꼽 위로 올라오는 연두색 끈나시에 크림색의 하늘하늘하게 툭 떨어지는 소프트 코튼 바지를 입었는데 발목에는 고무줄이 잡혀서 유용해 보이고 예쁘다. 어디서 샀냐고 물어보고 싶은데 거리가 꽤 멀어서 아쉽다. 그 여자 무리 뒤에는 중년의 독일인처럼 보이는 금발로 염색한 근육질의 여자 두 명인데, 진회색 레깅스와 요가 전용 복장 같은 옷으로 무장했다. 코가 되게 큰데 예쁜 버선코는 아니어서 아름다워 보이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제 시간이 되자 하얀색 승려복 같은 옷을 입은 선생님이 등장했다. 소개글로는 쿤달리니 요가 관련한 공인된 자격과 기타 등등 대단하다고 표현은 해놨지만 나로서는 봐도 뭔지 모르겠는, 그렇지만 뭐 전문가겠거니, 하고 느껴졌다. 쿤달리니 요가 자체가 처음이라서 생소하다. 선생님도 묘기를 보여주거나 많은 걸 하지 않고 가이드를 해준다. 간단한 동작인데 계속 10분 정도 힘들게 반복하면서 근육을 단련하고 내 몸에 집중하는 그런 요가 같다. 다리를 90도로 들어 올린 뒤 허벅지를 향해 종아리로 계속 위아래로 차는 동작을 반복하라는데, 오른쪽 매트에 있는 건장한 남자도 힘들어서 계속 쉬고 헉헉댄다. 쉬운 동작이지만 반복하니 땀이 나고 숨이 찬다. 복근(이 없지만)이 단련된다. 요가 동작이 어렵지 않고 따라 하기 쉬운데 운동이 되게 반복하니 몸이 뻣뻣한 초보자인 나에게 좋다. 그리고 누워서 쉬며 호흡을 정리하는 시간도 꽤 길다.
어떤 동작은 아빠 다리로 앉은 다음에 팔을 접어 손바닥을 빤짝빤짝하듯이 앞 뒤로 계속 반복하고, 입으로는 Harrrrr, Yurrrrr 하르 유르 인가를 반복한다. 선생님이 혀를 어떻게 입천장에 대고 반복하고 호흡을 하는지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그러고서 시작하는데 이 정도면 그만하지 않는가, 할 때도 계속되고 지쳐서 포기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하도록 끝나지 않는다. 나도 중도에 포기하여 땀을 닦으며 사람들을 관찰한다. 30-40명 되는 사람이 삥 둘러앉아 하르 유르~ 하고 계속 반복해서 말하며 손은 뒤집었다 폈다를 반복하는데 사이비 종교의식 같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면 되게 웃길 것 같은데 자기들끼리는 진지하게 웃지도 않고 반복하는 것이다.
치앙마이에 와서 유료/무료 요가를 갔을 때마다 한 시간이 넘게 진행돼서 좀 길다고 느껴졌는데 오늘은 다행히 수업이 한 시간 정도로 끝나서 힘이 들지는 않고 딱 좋았다. 마지막에 사진을 찍고 싶은 사람들이 있으면 모여서 사진을 찍자고 해서 선생님 주위로 모여들어 다 같이 사진도 찍었다. 줌 요가로도 제공이 되지만 집에서 에어컨을 켜고 혼자서 하는 것보다 여럿이 하니까 집중도 잘된다. 여러 사람들의 기운도 느끼고 여행자들도 관찰하고 이 공간이 주는 에너지가 있다.
한국에서는 회사를 다닐 때도 아침 8시에 겨우 일어나서 가는데 치앙마이에 와서는 저녁이 되면 스르르 잠이 들고 아침에는 새소리에 깨어 씻고 요가를 가서 하루를 시작하니 개운하고 기분이 좋다. 생산적인 건강한 인간이 된 것 같다. 점심은 코코넛 워터에 팟타이를 먹었다. 오징어가 맛있어서 오징어 팟타이를 주문하려고 했는데 여기는 없네. 새우 팟타이가 흔하지만 여기 와서 먹어보니 새우는 좀 뻣뻣하고 오징어가 부드러우니 맛있다. 그래서 5바트 더 비싸지만 70바트를 내고 시푸드 팟타이를 시켰다. 1000바트짜리 큰돈만 있어서 주문을 받는 아저씨에게 거스름돈이 있냐고 물으니 있다고 하면서 어딘가에 가서 바꿔다 주었다. 와, 여기서 시킨 팟타이도 꽤 맛있다. 채소가 많이 들어 있고 간이 너무 세지도 않고 면의 식감도 좋아 만족스럽다.
팟타이를 먹고 있는데 내가 페이스북에 태국 전통 의상을 입고 찍은 사진을 올렸더니 토마스에게 여행하고 있냐고 잘 지내냐고 메시지가 왔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대화한 게 2012년이라니. 토마스는 사진을 보니 흑인이고 아, 기억났다 독일에 파견온 미국 군인이었다. 스톡홀름 호스텔에서 만났던 것 같은데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는데 맞냐고 물으며 근황을 간단하게 적어 답장을 했다. 그랬더니 곧 1분 30초짜리 음성 메시지 두 개가 왔는데, 웃으면서 어떻게 자기를 기억하지 못할 수 있냐고 자기는 어제일 처럼 생생하게 기억한다며 우리가 스톡홀름 호스텔에서 위아래층 침대를 같이 썼다고 말했다. 아 맞네 뭐. 그때 스톡홀름 호스텔 남녀 혼숙 도미토리가 런던 호스텔의 3배가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토마스가 같이 여행하자고 했었는데 그때는 내가 좀 I 성향이 더 강했어가지고 낯선 사람과 그것도 남성과 여행한다는 게 어색했다. 아무튼. 자기는 독일에 있다가 지금은 스위스에서 일하고 있다며 반갑다면서 어떻게 지냈냐고 치앙마이 생활을 어떠냐고 이것저것 물었다.
"나 아침 요가 왔다가 막 팟타이 먹으려던 참이야. 치앙마이 너무 좋아 슬로우 라이프도 좋고, 새가 깍깍거려서 잠 못 자는 거 빼고는 자연이 아름답고 뭐 물가 싸고 음식 맛있고 좋지! 서울보다 시원하고 공기도 좋고 다 좋아! 나 일단 다 먹고 나중에 연락할게!" 하고 팟타이 사진을 공유하면서 메시지를 보냈다.
이제 집에 가서 씻고 요가 매트도 한번 물로 쏴-하고 끼얹어서 베란다에 널어놓고 노트북과 아이패드를 배낭에 메고 나와 코워킹 스페이스로 향한다. 엄마가 놀러 와서 여행할 때 입는다고 사서 벗어놓고 간 감색 소프트코튼 나시 원피스를 입었다. 코워킹 스페이스는 한 30분 앉아 있으면 추워져서 꼭 바람막이를 챙겨가야 한다. 이곳은 3번째 방문인데 한국 학생증으로도 흔쾌히 학생 할인을 해주어서 기쁘다. 음료 한 잔은 무료인데 나는 커피를 못 마시니 non-coffee 리스트 중에서 오늘은 라임 허니 스파클링을 주문했다. 5시간 동안 해야 할 일을 집중해서 하고 이따 늦은 저녁에는 재즈바를 가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