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5) Museum of broken relationships
이웃 주민으로 외국인 예술가 언니와 친구가 되었는데 예술가적 기품과 히피스러움이 온몸을 타고 흐른다. 예술가 언니에게 구글 맵 링크를 보여주며, "여기 한 번 가봐 나는 진짜 좋았어!" 하고 말하는데, museum of broken relationships라는 이름 자체만 봐도 엄청나다고 말했다. 그 순간적으로 감수성 공감되어서 너무 기뻤다. 치앙마이에 n년 거주자도 모르는 hidden gem을 발견하여 잘 추천을 해준 것 같아 뿌듯했다.
이별 박물관이라고 해야 하나, 실연 박물관이라고 해야 하나.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와 태국 치앙마이 이 두 곳에만 있다고 해서 치앙마이에 있을 때 와본 게 뭔가 되게 특별한 경험을 한 것 같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가 너무 좋아서 한국에도 이런 박물관을 열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별과 관련된 물건과 이야기를 기부받아 전시하는데 전 세계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무슨 웨딩드레스, 작은 인형, 그림, 테니스공, 가방, 돌아가신 할머니의 추억이 가득한 소품 등 다양한데, 한국에서 온 이야기도 있어서 반갑다.
스토리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하나하나 멈춰 서며 그 스토리를 읽는 것이 너무 재밌고 영감을 가득 받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남녀 간의 뜨거웠던 사랑과 이별 이야기는 그 시간이 짧았건 길었건 짧은 글에서도 생생한 묘사를 통해 그 온도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고, 갓 태어난 손주를 잃은 이야기,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을 잃은 이야기 등 이야기를 전해 듣는 것이 관객인 나에게도 자신의 특별하고 소중한 이별 이야기를 공유해 준 그들에게도 의미가 있다. 평소라면 전혀 만나기 어려운 지구 반대편에 사는 사람들의 이별과 상실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데, 그런 이야기와 물건들만 모아 놓은 곳이라니. 관객은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게 되고 타인의 경험과 여러 생각이 융합되어 새로운 영감과 예술적 혼을 불어넣어준다.
식민지 시대 건물 같은, 하노이에서 미대 학생이 알려주어서 갔던 미술 전시가 열린 곳도 이런 건물 같은 곳이었다. 층고가 높고 나무 계단이 있는 이국적인 건물. 입구에 들어서자 영어를 잘하는 직원 두 명이 크게 환대를 해주고 이곳은 처음이냐며 설명을 해준다. 내가 왜 태국 중에서도 치앙마이냐고 물으니 선정 배경을 알려주며 로컬 감수성을 같이 담았다고 분명히 느끼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뭐라 뭐라 설명을 해줬는데 사실 또렷하게 기억은 안 나고 치앙마이 감수성도 그닥 느끼진 못했다. "기부품이 되게 많을 것 같은데 전시는 계속 바뀌나요?" 하고 질문했더니 작품은 1년? 주기로 교체가 된다고 했다.
끝나고 나오면서 그냥 우리 같은 사람도 물건을 기부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큐알 링크를 통해 들어가서 물건과 스토리를 함께 기부하면 된다고 했다. 나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물건은 한국에 있는데 어떻게 물건을 보내나요? 하고 너무나 당연한 질문을 한 걸 깨달았는데, 택배로 보내시면 된다고 했다. 택배비는 여기서 부담하는 건지 묻고 싶었는데, 뭐 설명글에 쓰여 있겠지 뭐, 추접스럽게? + 귀찮게 질문하지 말자, 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물건이 엄청나게 크고 무거운 것도 있던데 그 배송비도 다 부담했을까 싶었다.
마지막에는 신부님에게 고해성사하는 것처럼 한쪽 구석에 있는 약간 외지지만 개방이 된 거울의 방에 큰 방명록 같은 책자와 펜이 하나 놓여있다. 이미 한 권이 끝나갈 정도로 다녀간 방문객들이 자신의 스토리를 가득 적어 놓았다. 영어로, 태국어로, 가끔은 자신의 나라 언어로. 마지막 부분쯤을 펴 나도 나의 상실의 이야기를 영어로 적어 보았다. 글을 쓰면서 내 생각을 적어 보는 것은 정리가 되고 정화가 된다. 얼핏 넘기면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읽어 본다. 누군가도 우연히 내 글을 읽게 될 것이고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감정을 공유한 느낌이 든다. 재미있고 소중한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