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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Nov 21. 2018

북경 카페에서 흘러나온 노래

에어비앤비, 옥수수빵, 아날로그 감성


예기치 않게 그 노래가 흘러나왔다.


북경에서 머물던 에어비앤비 집주인은 방을 르네 마그리트와 고양이 그림으로 꾸며놓았고, 롹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또 영어를 비롯하여 서양문화에 익숙한 것 같았다. 방 불을 켜지 않아도 곳곳에 켤 수 있는 아기자기한 조명들, 어떤 쪽은 파란 불빛이 내려앉아 있어서 햇빛이 훤-히 들어오는 아침이 아니라면 얼핏 상당히 깨끗하고 쾌적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 집중을 해서 주변을 살펴보면 눅눅하고 으스스한 느낌을 주었다. 집에서 신발을 신고 다니는 지도 금방 알 수 있었다. 아파트 전체가 녹슨 허름한 아파트였지만 이렇게 좋은 위치에 이 정도 방 크기라면 정말 비쌀 것이 분명했다.


집주인이 에어비앤비 앱으로 열심히 설명해 준 길을 잔뜩 긴장한 채 찾아간 뒤 지하철역을 타고 여러 번 다녀보니 이제 그 근방에 대해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내 집처럼 오갈 수 있게 되었다. 좀 여유가 생겨 다른 쪽 횡단보도로 건너도 지하철역에 갈 수 있을 것 같다. 지하철역 다른 출구 앞에 보이는 베이커리 카페에서 아침을 간단하게 먹기로 한다.


노래는 그 카페에서 돌연 흘러나왔다.

너무 갑작스러웠다. 여러 추억이 겹쳐 이 설렘을 마구 표출하고 싶은데 그럴 길이 없었다.


재빨리 가방에서 작은 노트와 펜을 꺼내 카페 아르바이트생에게 다가갔다.손가락을 위로 들어 올리며 지금 흘러나오는 이 노래 제목이 뭐냐고 좀 써달라고 했다.

영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아쉬워하던 중 몇 발자국 떨어진 자리에 앉아있던 검은 긴 생머리의 여성이 다가와 중국어 발음이 섞여있지만 알아듣기 쉬운 영어로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30대 초반의 직장인처럼 보였다.


"아 네. 이 노래 좋아하던 노래여서 제목이 궁금해서 물었는데 영어를 못 알아듣는 것 같아요. 혹시 이 노래 아세요?"

"아!! 아 그랬군요. 아 알아요. 杨丞琳 노래예요."

중국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노트를 내밀며 써달라고 했다.


따라 할 수 없는 중국 필체였다.


"와. 정말 감사합니다! 집에 돌아가서도 들을 수 있게 되었어요!"

"아, 근데 어디에서 왔어요?"

"아 저는 한국에서 왔어요."


그 여성은 흔히 쓰는 Where are you from? 이 아니라 What is your nationality?라고 물었다. 왠지 모르게 중국 사람들은 내게 What is your nationality?라고 묻는 경우가 많다. 나는 보통 I'm from Seoul이라고 대답하는 편인데, 이렇게 질문하니 "I'm from Korea"라고 대답하게 된다.


여러 명이 나에게 그렇게 묻길래 처음엔 내가 중국어를 몰라 영어를 쓰고 있으니 나를 중국인인데 홍콩이나 싱가포르 사람으로 생각해서 국적을 묻는 건가? 뭐지? 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What do you study? 대신 What is your major(전공이 뭐니?)라고 묻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중국인들이 잘 쓰는 영어습관인가 싶기도 하다.


베이커리에서 먹었던 옥수수 샌드위치. 중국의 옥수수빵. 정말 맛있다!


크리미한 소스 위에 옥수수와 치즈가 올려져 있는 샌드위치가 정말 먹음직스러워서 집었는데, 생각대로 맛있어서 다행이었다. 상당히 조화로워 다음날 운 좋게 내가 북경에 있던 기간에 비엔날레가 열리던 중국미술관 근처 베이커리에서 다른 형태의 옥수수빵을 또 사 먹었다. 역시나 정말 맛있었다.


무슨 색 옷을 입었는지 모르겠지만 전체가 두루뭉술하게 검고 젊은 이미지로 기억되는 그 여성에게 베이징에서 사냐고 물었다. 관광객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검은 여성은 그렇다고 했다. 그리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친구와 카페에서 수다를 떨고 있는 이 여성은 뭐하는 사람일까? 토요일이어서 직장에 나가지 않았겠지. 평일 아침 아파트를 나와 우리나라처럼 너나할 것 없이 이어폰을 잔뜩 끼고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꽉 찬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직장으로 향하겠지. 지하철로 가는 길은 지금 이 근처 길처럼 가로수가 빽빽해 초록 초록한 길일까. 어느 회사로 갈까? 어떤 어떤 직업이 있을까? 회사 건물은 딱딱하고 바랜 회핑크색 벽일까. 아니야 선생님일 수도 있잖아.


추억의 MP3


사실 杨丞琳의 左边Zuo bian이라는 곡은 유학시절 중국인 친구 한웨이가 내 MP3에 담아준 중국노래 스무 곡 중 한 곡이다. 중국인은 어디에나 많을 것 같지만 내가 있던 그곳은 아시아인이 희귀해서 한웨이도 기숙사 전체 중국인 4명 중 한 명이었다.


여러 곡 중에 이 곡은 왠지 모르게 끌려서 자주 들었다. 어디서 들어본 옛날 노래 전개 같은 촌스러운 선율도 귀에 잘 감기고 애절한 감정도 느껴진다. 워 아이니 하는 고음의 간절한 클라이맥스도 있다. 이 곡을 들으면 낯선 곳에 혼자 와서 긴장하며 이곳 저곳 다니던 어린 내가 떠오른다. 새로운 곳을 이동하면서 귀에 꽂고 듣던 노래여서 낯설고 설렌 그 감정이 떠오른다.


이 곡을 떠올리며 그 당시 사진 속에서 추억의 mp3를 찾았다. 반가웠다. 추억의 빨간색 Yepp mp3. USB 기능도 있어서 편리하고 좋았는데.

아 저시절은 sky 핸드폰이 있었지! 그땐 스마트폰을 가진 사람이 얼마 없었는데.


가져갔지만 잘 쓰지 않았던 추억의 전자사전도 발견했다. 고등학교 때는 전자사전이 엄청나게 유용한 도구였는데. 단어와 발음과 예문을 찾아서 효과적으로 공부할 수 있게 해 주었지.


현지에서 전화용으로만 쓰려고 3만 원 주고 샀던 엄청난 아날로그 핸드폰, 내가 쓰던 바디로션의 진한 코코넛 버터향. 입지도 않을 거면서 혹시나 하고 잔뜩 가져간 옷과 물건들. 다시 가져올 수 있지도 않을 만큼 늘린 물건들로 가득한 방 사진을 보면서 정말 나이브했던, 지금보다 어렸던 나 자신을 발견한다. 이후 쌓은 여러 경험으로 이동할 때는 필요한 물건들만 간편하게 싸서 들고 다니며 돌아갈 짐을 대비하게 된 지금의 나는 어휴 저걸 다 어떡해. 하며 답답한 느낌이 든다.


杨丞琳-左边 클릭하여 유튜브에서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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