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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Nov 26. 2018

서울 밤거리에서, 2Q18



광화문역에서 내려 정부청사와 서울지방경찰청 근처를 걸으면 왠지 모르게 항상 길을 잃었던 오사카 도심이 떠오른다. 예전 룸메이트였던 일본인 친구를 만나기로 한 혼마치 역 근처의 오피스 디스트릭트. 그리고 마침 내가 갔을 때 700엔에 피카소, 마티스, 워홀, 리히텐슈타인 등 압도적인 작품들을 볼 수 있었던 국립국제미술관으로 전시를 보러 가던, 한산했던 길의 둥글게 네모진 제각각의 빌딩.  


첫눈이 오기 전날 밤, 공기가 차갑다.

어느새 퇴근시간이 벌써 정말 어두워졌다.

회사 건물들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무리들은 횡단보도를 지나 여러 무리로 갈라지고 나는 그 한 무리에 섞여 들어간다.

아오마메라도 된 듯이 은밀하고 날렵하게 무리 속에 흡수되어 걷는다. 어떤 작전이라도 수행 중인 매력적인 여성 요원인 양 심취한다. 그러기엔 강렬한 빨간색 코트를 입고 있어 검은 무리 속에서 홀로 튄다.


Betty Who의 <Taste>라는 곡의 비트를 상상한다.

들숨 날숨 공기 반 소리 반. 정말 매력적이다.

The worse they are the better they taste

이 곡의 하이라이트인 멋있는 비음의 고음 부분이 떠오른다. 뇌쇄적이다.


횡단보도의 빨간 불이 바뀌기를 기다리며 무심코 우측을 본다.

고궁박물관과 그 반대편 건물 사이 도로 위에 정말 놀라울 정도로 커다랗고 노란 개나리색의 달이 꽉 차 있다.

파란 불이 되어 건너는 와중에도 너무 놀라워 보름달을 계속 쳐다본다. 달이 너무나 가까이 있다.


차가운 영하 무렵의 공기와 함께 거리의 담배 냄새가 훅 들어온다.

좀 전까지 읽던 1Q84 1권에서 덴고가 후타마타오 역에 도착해서 바뀐 공기 냄새를 인지한 것이 떠오른다.

길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일본의 전철역과 플랫폼, 가상의 공기를 상상한다.


"아가씨, 여기서 인사동은 어디로 가야 돼요? 걸어서 오래 걸려요?"

그러던 중 경상도 억양의 아주머니가 길을 묻는다. 오랜만에 듣는 경상도 말씨다.

"아 네 걸어서 좀 가셔야 되는데 저 쪽으로 쭉 걸으시다가 안국역쯤에서 저 쪽으로 내려가시면 될 거예요. 아마 2-30분 걸릴 거예요."


실내에 들어오니 볼이 따갑다. 기분 나쁘진 않고 노곤하다.


얼마 전 기사단장 1,2권을 마치고 1Q84를 읽기 시작했다. 기사단장 이야기로 하루키 소설을 처음 접했다. 하루키는 굉장한 스토리텔러이면서 섬세하고 구체적이나 지루하지 않은 묘사로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파악하게 해준다. 물론 "아름다운 눈이 휘둥그렇다."와 같이 번역도 좋은 것 같다.

최근 빠져 읽게 된 작가인 얀 마텔페르난두 페소아와도 공통적으로 관찰력이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 우리가 그냥 지나치는 행동과 감정이 글로 묘사되니 읽으며 공감하는 사람이 많은 작가인 것 같다.

 

침묵한 채 중립적인 아름다운 눈 깊숙이에서 덴고를 바라보고 있었다.
각각의 문장이 합당한 무게를 지녔고 거기서 자연스러운 리듬이 생겨났다.
워드 프로세서 화면으로 용지에 프린트한 것을 보는 것은 완전히 똑같은 문장이어도 눈에 들어오는 인상이 미묘하게 달라진다.
결국 자신이 배척당하는 소수가 아니라 배척하는 다수에 속한다는 것으로 다들 안심을 하는거지 ... 많은 사람들 쪽에 붙어 있으면 성가신 일은 별로 생각하지 않아도 돼.
뭔가가 작은 빈틈으로 들어와 그의 내면에 있는 공백을 채우려고 하는 것 같다 ... 그것은 후카에리가 만들어낸 공백이 아니다. 덴고의 내면에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거기에 특수한 빛을 들이대 새삼 비춰낸 것이다.
고급 부르고뉴가 그녀들의 피에 섞여 부드럽게 몸을 순환하고 주위 세계를 은은한 포도 빛깔로 물들인다.


-무라카미 하루키 <1Q84>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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